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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겨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일이 있다. 지난 8월 독일 취재 중 겪은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다. 평소 내가 흠모(?)해마지 않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두고두고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지난 8월 말 취재차 독일의 튀빙겐을 방문했다. 인구 8만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그 포스(force)는 방문객을 단번에 압도했다. 13세기 도시가 건설될 때 구획된 도로와 물길 그리고 이전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과 성곽을 보면 시간이라는 건축자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튀빙겐 사람들의 역사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이 2만 4000명이나 되는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 도시지만 결코 무질서하거나 경박하지 않았다.

우리 취재진 3명은 비싼 물가를 고려해 튀빙겐 외곽의 작은 호텔에 묵었다. 지상 2층, 반 지하 1층 건물로 방이 모두 11개가 있는 아담한 건물이었다. 잊지 못할(?) 그 사건은 1층 입구 오른편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벌어졌다.

마른 빵이 넘어가지 않아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옆자리의 60대가 기분 나쁜 투로 뭐라고 투덜거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러자 건너 편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40대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너 먹는 태도가 그게 뭐냐'면서 타박을 한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모멸감과 분노로 음식이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곧장 통역을 대동하고 카운터의 아주머니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녀는 ‘미친 사람들’이라며 우리에게 대신 사과했다. 나치의 악몽으로 인해 인종주의를 철저히 배척하는 독일인들이어서 그녀의 사과가 진심이었겠지만 유학생이 많은 튀빙겐에서 그들의 과민반응은 뜻밖이었다.

▲ 독일 네카강변의 중세도시 튀빙겐. ⓒ오기현
▲ 취재차 독일을 방문한 오기현 PD 일행이 묵었던 튀빙겐 외곽의 호텔. ⓒ오기현
독일생활 20년이 넘는 현지 코디네이터는 자신은 이런 경험을 당한 적이 거의 없으나, 세 가지 정도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튀빙겐은 국제도시여서 인종차별이 적지만, 투숙객은 외지인이므로 차별의식이 있을 수 있다. 둘째 외국 말은 누구에게나 시끄럽게 들린다. 셋째, 우리가 투숙한 호텔이 변두리의 싸구려 호텔이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무시당할 소지를 제공했다(우리가 가난하게 보여 그들에게 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는 등이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식당에서 매우 조심하며 식사를 했다. 그런데 코디가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독일 사람들은 식사 중에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음식이 입에 있을 때는 말을 하지 않으며, 부부나 부자간에도 거의 귀속 말로 얘기하듯 속삭였다. 식사시간에 즐겁게 떠드는 것은 적어도 독일인의 식사 모습은 아니었다. 공공장소에서 지나칠 정도로 남을 의식하는 태도는 그 다음 행선지였던 일본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독일인 스스로도 자신들이 좀 지나치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문화가 다른 곳에 가면 누구나 불편하다. 그건 현지인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처럼 교류가 많은 시대에는 어느 특정집단의 문화만을 준거체제로 다른 집단에게 강요하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발생한다. 모든 문화는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다문화시대의 윤리이다.

▲ 오기현 SBS PD
불현듯 남북관계가 떠오른다. 분단 후 두 세대나 지난 세월이어서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개인주의에 익숙한 남한과 집단주의에 익숙한 북한, 수평적 위계관계를 지향하는 남한과 수직적 위계관계가 몸에 벤 북한,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새해 들어 분위기가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남이나 북이나 상대방의 태도가 못마땅하다며 비난성명으로 결말이 나는 상황에 이미 익숙하다. 좀 기분 나쁘더라도 독일아저씨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 민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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