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철의 스마트TV] ‘변호인’과 우리 시대의 야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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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관람객이 지난 주말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흥행 기록 사상 개봉 32일 만의 최단 기간에 이룬 성과라고 한다. 주변에는 두세 번씩 봤다는 이들도 꽤 있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건 공안전문 수사관 차동영이 상징하는 정치권력의 ‘서슬 푸름’ 이었다.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와 토론,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 그러한 사회적 움직임 자체를 북한과의 내통 또는 사주로 연결해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야만성. 30년 전 과거의 묘사가 어제 일 같지 않고 바로 오늘,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사회에서,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흐름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변호인’의 공안몰이와 다르지 않게 보였다.

▲ 영화 ‘변호인’포스터.
세습체제에 비판적인 정적을 즉결 재판과 처형으로 제거하는 북의 행태, 정권에 비판적인 정당과 인물을 북한과 내통하고 동조하는 ‘종북’으로 몰아가는 남의 행태. 그 둘은 분명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사회적 유전자를 비교했을 때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 두 쌍둥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설정한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해 비판세력의 싹을 잘라 버리거나 매장하려 한다.

하나는 정치범 수용소와 처형을 동원하고, 다른 하나는 국가보안법과 종북의 붉은 낙인을 사용한다. 장단점을 따지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논의와 공론의 장은 아예 없고, 상대를 부정하고 제거하려는 조폭 세계의 생존 본능, 1차원적 저급함이 난무한다.

문제는 정치권력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쌍둥이 유전자의 복제판이 사회 각 분야 곳곳에서 자기 증식하면서 어둠의 힘을 발휘한다. 코레일 노조 파업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4000명의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건물을 에워싸고 진입한다. 노조 지도부가 알카에다 같은 테러 집단이라도 된단 말인가? 정권의 이익에 반하면 불법 파업이고, 도움이 되면 국정원의 댓글 달기 같은 정치개입도 불법이 아닌 것처럼 넘어간다.

방송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KBS와 MBC, 한국의 두 공영방송 내부 권력의 작동 방식은 정치권의 복사판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에게는 자신을 임명해 준 ‘정치권력의 권위와 이익의 보호’가 최고 가치가 된다.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 임기 내내 압력에 시달리고, 심지어 임기와 그 후가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권력의 이익 실현은 경영자에게 아주 저급한 생존의 조건이 되 버린다.

KBS에서는 권력의 어딘가에 줄은 댄 낙하산 MC를 막으려던 PD들이 타부서로 쫓겨나고 국장과 본부장까지 잘려나갔다. 지난 정권하의 MBC에서는 사장의 비상식적인 전횡에 저항하는 파업 참가자가 수 십 명씩 징계받고 해고됐다. 공영방송의 사장에게 권력의 이익은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이다.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보직 해임과 해고와 같은 방식으로 처단한다.

영화 ‘변호인’이 다룬 공안몰이의 구타와 고문은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북한 내부의 반대자들도 장성택의 처형을 보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야만의 체제는 구성원들의 생존을 권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 그 둘의 경계선 위에 올려놓고 위협한다. 따라오면 삶을, 돌아서면 죽음을. 요즘 방송계서 벌어지는 일은 구타와 고문, 처형과는 다르지만 생계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그 작용 방식이 유사하다. 능력의 전문성과 임무 수행의 성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따라 명줄이 오가는 야만의 시대.

▲ 손현철 KBS PD
며칠 전 MBC 노조원들에 대한 해고와 징계 처분이 무효라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야만성에 대한 경고등이 하나 켜진 셈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조항이 반갑고도 짠하게 들리는, 하 수상(殊常)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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