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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볼 때 나는 눈썹을 가장 먼저 본다. 사람들은 보통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난 그 사람의 눈썹을 보면 그 마음에 진심이 담겨있는지, 과장된 것은 아닌지, 뭔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지 신기하게도 느낌이 딱 온다. 물론 이 느낌은 절대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편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나도 예전엔 눈을 보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동자의 떨림은 워낙 미세하기도 하고 때론 매혹적인 모양새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기에 -특히 쌍꺼풀이 없으면서도 길고 깊은 눈매를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오류의 확률이 더 높아진다- 나는 언제부턴가 눈동자 위에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 눈썹의 형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화가 났을 때, 비밀이 있을 때, 놀랐을 때, 눈썹은 눈동자가 감추고 있는 속내를 슬며시 드러내면서 ‘내 마음을 읽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 손철주 ‘사람 보는 눈’ ⓒ현암사
하지만 이런 나름의 노하우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여전히 사람을 잘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아직도 혼란스럽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솔직히 정말 어렵다. 나는 진짜 모르겠다. 그래서 연애할 때도 헛 똑똑이라는 얘기를 많이도 들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나에게 제목만으로 확 꽂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해박한 식견과 유쾌한 입담, 풍성한 해석과 문체로 많은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미술평론가 손철주 선생의 <사람 보는 눈> 이라는 책이다. <사람 보는 눈>! 이 얼마나 얄미울 정도로 매력적인 제목이란 말인가! ‘겉만 따지는 시대, 사람 보는 눈이 있는가?’ 라는 출판사의 그럴싸한 홍보 문구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절로 손이 갈만한 책이다. 특히 나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람 보는 눈이 없음을 개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을 테고.

이 책은 우리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을 요목조목 살펴보면서 옛 사람의 생김새와 매무새, 차림새와 모양새 등을 풀어놓은 낯선 즐거움이 가득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거죽(생김새)과 꾸민 티(매무새)에 인물의 풍상과 속내까지 배게 그리는 초상화의 힘, 즉 ‘본질을 잡아내는 사람 보는 눈’의 탁월함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눈썹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바쁘게 만드는 건 역시 손철주 선생의 빼어난 문장들이다. 나긋나긋 여자의 속삭임처럼 간지럽다가도 어느 틈엔가 능청스러우면서도 구성진 그의 글 마당이 책을 읽는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살가우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절묘한 그의 군더더기 없는 단문은 늘 흥겹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중얼거리게 되는 그의 문장들을 통해 살아난 70 여명의 옛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람 보는 눈이 좀 없으면 어떤가. 때론 좀 슬쩍 그들의 과장된 이야기에 속아주기도 하고 때론 그들의 거짓 이야기에 눈물 지어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별로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 송윤경 방송작가·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
책 사이에 껴오는 출판사에서 만든 보도자료는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는데 이 책은 보도자료에 적힌 글조차 찰지고 맛깔나다. 이것도 저자의 힘인가? 아무튼 보도자료에 밑줄을 그어 본 적이 없는데 이 구절은 그냥 넘기기 아쉬워 이곳에 적어본다.

이 책은 요즘처럼 ‘내남없이 엉덩이 가볍고, 입살 세고, 들고나기 바쁘고, 도무지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게 생겨먹은 번다한 시절’에서 발을 빼 쉬어갈 만한 ‘대나무 화로가 놓인 방’과도 같은 편안한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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