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끼리 하는 우스개 중에 ‘기자정신의 반대말은 제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기자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의 뒤틀린 현장을 취재하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주로 기자들이 술 마시는 핑계로 이용한다. 비슷한 말로 ‘기자정신의 반대말은 맨정신’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최근 MBC <뉴스데스크>에서 제정신인 상태에서 썼다고 볼 수 없는 뉴스를 보았다. ‘언론사 파업 공정성 내걸면 합법? 논란 부른 판결’이라는 제목의 이 뉴스는 공정방송을 내걸고 파업을 한 MBC 노조원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결한 서울남부지방법원의 1심 판결을 비난했다.
잠시 기자의 리포팅을 감상해 보자. “오늘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언론사 종사자들에겐 ‘공정성’이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례가 없는 해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자는 “현재의 판례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비해서 근로조건의 문제를 약간 과도하게 해석한, 확장 해석한 문제가 있어서...”라며 한 변호사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언론사 노조는 공정성을 걸고 언제든지 파업할 수 있다며 판결을 비난했다.
이 리포팅의 화룡점정은 이 부분이다. 기자는 “언론노조 MBC본부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할머니들이 파업하는 것을 시민들이 돕자 ‘외부세력 물러나라’고 했던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가 불온세력의 간섭으로 매도됐다.
이번에는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기자들 이야기다. 얼마 전 한 차장검사가 여기자들에게 “뽀뽀 한 번 할까?” 희롱하고 실제로 손에 뽀뽀하면서 추행했다. 이 차장검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벼운 경고만 듣고 지청장으로 영전했다. ‘초등학생 손에 뽀뽀만 해도 추행’이라는 판례가 나오는 상황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다.
남자 기자들의 손도 무사하지 못하다. 얼마 전 한 MBC 기자는 트위터에 “제 손을 보고 싶어하는 분을 위해 살짝 보여드립니다”라는 글을 쓰고 자신의 손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자사 뉴스를 비판한 것에 대해 간부들이 ‘손을 봐주겠다’라고 엄포를 놓자 이에 항의한 것이다. 이 기자는 아낌없이 손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맨정신에 볼 수 없는 풍경이 즐비하다. 앵커 출신인 이윤성 전 한나라당 의원이 MBN 주말뉴스 앵커로 복귀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이윤성 전 의원의 앵커 기용은 다름 아닌 앞으로 종합편성채널 기자들은 자기가 취재하는 정치인이 공천을 못 받고 선거에 떨어지면 다시 데스크나 정치부 상관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취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양상은 박근혜 정부의 모럴해저드를 닮았다. 박근혜 정부에는 정부부처에 있다가 퇴직 후 낙하산으로 산하기관 혹은 민간기업으로 갔다가 다시 장관으로 복귀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간 전직 간부들이 언제든지 장관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 눈치를 보고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아니라 ‘필가근필가원’이 되었다. 풀어서 말하자면 전반전에 심판이었던 사람이 후반전에 선수로 뛰거나 전반전에 선수였던 사람이 후반전에 심판으로 뛰는데 아무도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정신이나 맨정신으로는 기자를 하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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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당혹, 민망, 경악스럽고 아찔한 언론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