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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7일 오전 9시 5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 박인식 부장판사가 언론노조 MBC본부 노조원 44명에 대한 해고·징계 무효 확인 소송 선고에 앞서 판결 배경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판결이유를 먼저 읽겠다고 했다. 대체 어떤 결과이기에 이유를 먼저 말하려는 것일까. 노트북을 들고 앉아 있던 타사 기자들의 손도 바빠졌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묘한 긴장감으로 법정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판결 이유의 첫 문장은 “일반적인 기업에 있어서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에 한해서만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이 공판장 내 스피커로 울려 퍼지자 조용했던 공간은 더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MBC 파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불법’인 것일까. 하지만 이어진 판결 이유는 ‘그러나’로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접속부사 ‘그러나’.

“그러나 일반 기업과 달리 방송사 등 언론 매체는 민주적 기본질서 유지 및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한 공정 방송의 의무가 있다.”

놀랄만한 반전으로 이어진 판결 이유는 2년 전 아주 추웠던 겨울에 시작해 그해 가장 뜨겁던 여름의 한 가운데 끝난 170일 파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아주 간결한 법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 지난 17일 MBC노조원에 대한 징계 무효소송에서 승소한 해직 언론인들이 선고 이후 기자들에게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지웅 전 MBC노조 사무처장, 정영하 전 MBC노조위원장, 박성호 전 MBC기자회장, 최승호 PD. ⓒMBC PD협회
재판부는 이어서 공정방송의 근거를 헌법에서 찾았다. 재판부는 “헌법 및 방송법 등의 관련법에 의한 인정 원칙’에 의해 방송 노동자는 공정방송을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 뒤 “‘회사 경영진이 단체 협약에 명시된 공정방송협의회를 개최하지 않고, 인사 원칙에 반한 프로그램 제작진 임의 교체 등 방송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적 규정을 위반했기에 ‘파업이 정당하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모든 법적 판단의 뿌리는 헌법이어야 한다. 그래서 법원이 판결문을 통해 헌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날 아침, 310호 법정 안 판사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 헌법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낯선 감동으로 다가왔다.

판결 이유 낭독과 선고는 약 10여 분 간 이어졌다. MBC 노조의 파업은 정당했다는 판사의 말이 끝날 때 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원고 모 선배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혼자 허리를 숙여 손으로 눈을 감춘 채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법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느라 마음이 바빴다.

▲ 서정문 MBC PD
1심 재판부는 판결의 근거를 헌법에 두었다.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이어질 긴 여정에서 ‘헌법’이라는 말이 어떻게 재가공 되고 어떤 식으로 사용될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MBC 노조의 파업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였다는 법원 최초의 판단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헌법의 아름다움을 좀 더 곱씹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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