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외도를 둘러싼 몇 가지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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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 이지용 통신원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0일 터져 나온 연예주간지 <클로저>(Closer)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외도 보도로 프랑스 사회에선 사랑과 배신, 질투와 복수, 음모론까지 등장하는 수퍼울트라 끝장 드라마 한 편이 진행 중이다.

집권 이후 내놓은 성과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을 받으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도를 기록하던, 아니 여론으로부터 아예 무시 당하던 이 평범한 대통령이 스쿠터 헬멧으로 위장하고 애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진 한 장으로 한 순간에 여론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올랑드 대통령 입장에서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표정 관리가 힘든 상황이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부고를 빼놓고는 어떤 소식으로든 여론의 중심이 되는 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란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물론 그 소식이라는 것이 불륜이라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어차피 올랑드 대통령은 한 번도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는 법적으로는 미혼의 남성이다.

프랑스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올랑드 대통령과 여배우 줄리 가에트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 관해 이야기기 돌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올랑드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의 공식 업무 수행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이 아니다라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공인의 사생활 보호 윤리(?)와 저널리즘 수칙에 충실했던 까닭이다. 

▲ 프랑스의 연예 주간지 <클로저>가 1월 10일 ‘대통령의 비밀스런 사랑’이란 제목 아래 헬멧을 쓴 올랑드 대통령의 사진을 실었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마자랭의 사진을 찍어 파파라치 업계에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세바스티앙 발레리아(Sebatian Valelia)는 <클로저>의 의뢰를 받고 여배우의 아파트 맞은편 건물 복도에 숨어서 찍은 사진 몇 장을 3만 유로에 넘기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올랑드 대통령이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으로 미테랑의 도움과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항상 자신의 정치적 스승을 미테랑이라고 이야기한 사실을 볼 때 두 대통령 모두가 같은 파파라치에게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찍힌 것도 드라마틱한 부분이다. 

기사가 나간 뒤 <클로저>는 55만부가 팔렸다. 이는 평소 판매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클로저>가 해당 사진이 게재된 잡지 판매로 얻은 순이익만 30만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특종으로 ‘붕가파티’와 미성년 성매매 사건으로 유명한(?)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소유한 대형 출판기업 몬다도리(Mondadori) 그룹 산하의 연예전문지 <클로저>는 CNN, <뉴욕 타임즈> 등과 같은 세계 유명 언론들의 1면을 장식하며 엄청난 홍보효과 얻었다.

일각에서 저급한 황색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클로저>의 입장에서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 어차피 연예·가십 전문지의 본분에 충실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올랑드 대통령이나 상대 여배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로 고소를 한다 해도 그 또한 기사감이 될 터이니 이래저래 밑질 것 없는 장사인 셈이다.

<클로저> 보도 이후 나오는 음로론도 있다. 내용인즉슨, 대통령 경호실과 경찰에서 현재도 요직을 맡고 있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올랑드 대통령의 외도가 발각나도록 방치하고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대통령의 새해 첫 기자회견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클로저> 보도가 나올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의 주요일간지 <르 몽드>(Le Monde)와 <르 푸앙>(Le Point),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 등의 유력 시사주간지들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찍혀버린 대통령의 ‘특별한 외출’ 사진은 대통령 경호시스템이 ‘상식적으로’ 작용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경호팀과 경찰 내부에서 대통령의 사적인 일정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문이다.

탐사보도 전문지인 <르 카나르 앙셰네>(Le canard enchaine)는 “<클로저> 보도 직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이니 연예전문지를 사보라’고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정계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여전히 그를 프랑스의 ‘수퍼캅’이라고 믿고 따르는 경찰라인들, 그리고 <클로저>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클로저>의 보도가 어떻게 가능했고 왜 하필이면 그날 터져 나왔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또 외도설을 통해 올랑드 정권 집권 2기 청사진 발표의 김을 빼고자 한 특정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프랑스= 이지용 통신원·KBNe / Channel Korea 대표
6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올해 첫 기자회견에서 “프랑스에 퍼스트레이디가 존재하냐”는 곤란한 질문을 받고 당황한 나머지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커밍아웃(?)까지 해버린 올랑드 대통령. 

그런데 프랑스의 여론은 현 동거녀와 새 애인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그를 위해 산적한 경제·경제 사회 문제를 잠시나마 잊어주는, 참으로 관대한 ‘프랑스식 똘레랑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 결과 집권 이후 하락만 거듭해온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하는 이변까지 보이고 있고, 프랑스 사회는 우리가 보기엔 분명 막장인 드라마를 한 인간의 사랑 영화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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