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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고 목불인견이다. 무식한 내가 한자를 좀 써보자면 그렇다. 탈북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국정원과 검찰이 벌인 증거조작이 밝혀지는 과정이 점입가경이고 이에 대한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대응은 목불인견이다. 공약을 안 지키는 정치인이 “어제는 어제의 논리가 있고, 오늘은 오늘의 논리가 있다”라고 변명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들의 변명을 요약하면 “어제는 어제의 거짓말이 있고, 오늘은 오늘의 거짓말이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밝혀진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 개요는 이렇다. 처음, 국정원은 합동신문센터에서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여동생 유가려 씨에게 가혹행위를 하면서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고 1심 재판에서 지자 국정원(혹은 검찰은) 중국 공문서를 위조해 증거로 내밀었다가 들켰다. 이후 조작에 가담했던 국정원 조력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제3의 증인까지 진술이 조작됐다고 밝히자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증거 조작과 진술 조작은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국정원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 사건의 결정적 기점은 국정원과 검찰이 내민 중국 공문서가 위조된 사실이 밝혀진 시점이었다(사실 1심에서 국정원이 패소했을 때가 결정적 시점이 되어야 했다). 국가기관이 개인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외교문제가 될 수 있는 수준의 증거조작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유우성 사건’은 한국판 ‘드뤼프스 사건’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정부 비판적인 언론이 열심히 성토하긴 했지만 보수언론은 물타기를 시도했다.

이 증거조작 사건 물타기를 위해 보수언론이 내민 카드가 바로 ‘휴민트 붕괴 우려’ 프레임이다. 이번 사건을 파고들면 어렵게 구축해 놓은 대북 정보 인적 수집망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가당착이다. 증거조작을 수사하자는 것은 휴민트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휴민트 보호를 위해 더 필요한 일이다. 한국 정부를 돕다가 언제 간첩으로 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우리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하겠나?

첫 번째 결정적 시점이 보수언론의 물타기로 흐지부지 될 무렵 두 번째 결정적 시점을 맞게 된다. 바로 국정원 협력자가 자신의 진술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원을 개혁해달라는 부탁과 국정원에 협조했는데 왜 죄인 취급하느냐고 국정원을 원망하는 내용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황은 급반전된다.

조작된 증거를 제외하고는 국정원과 검찰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진술인데 ‘진술서가 대필 조작이다’라고 밝히고 심지어 진술서를 조작하는 동안 한국 검찰에서 온 사람들이 현장에서 지켜보기까지 했다고 하니 막장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그를 믿었던 죄밖에 없다고 하고 검찰은 국정원의 말을 믿었던 죄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물타기를 해주는 조력자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거 조작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자 사태는 급반전된다. 검찰은 당일 바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다. 여당 중진인 이재오 의원마저 국정원장의 사퇴를 요구한다. 얼핏 일사불란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꼬리자르기다. 대통령은 특검에 대해 선긋기를 하고 남재준 사태카드를 여당이 방어하는 것은 꼬리를 어디까지 자를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남재준이라는 꼬리까지 자르게 된다면 지방선거라는 몸통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
다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내 무시하다가 이 사건이 지방선거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처럼 보이자 꼬리자르기에 나섰다. 1심 재판 결과도, 증거 조작도 무시되었다가 증인의 자살 시도로 여론이 불리하게 형성되자 그때서야 행동에 나섰다. 아마 정권 친화적인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정권에 장악된 지상파 방송사에 의해 물타기가 성공했다면 이런 국가적 범죄에 끝까지 침묵했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지각도 보통 지각이 아니다. 결석에 가까운 지각이다.

이런 대통령의 지각에 대해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을 세심히 지켜본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남긴 감상평이다. “최고 권력의 결심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정권, 그렇게 증거가 쏟아져도 수사 아닌 조사라더니 대통령 한 마디에 꽁지에 불이 난듯 압수수색했네요. 언론도 똑같습니다. 청와대 기류가 바뀐다싶으니 조중동문도 비난대열에 본격 합류하고 MBC까지 보도하기 시작.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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