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씨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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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설명회-이 괴물을 어찌할까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습니다.”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前)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울먹이며 힘겹게 내뱉은 말 속에는 그간의 억울함과 답답함, 고통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13년 1월 10일 체포된 지 430일 만인 오늘(15일), 유 씨는 국민들 앞에서 ‘간첩’이 아니라고 조용히 울부짖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참여연대, 민주당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진보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15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설명회-이 괴물을 어찌할까’에서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어떻게 조작됐는지, 그리고 왜 간첩조작이 일어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간첩혐의를 입증하겠다며 내놓은 증거가 조작됐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지난 5일 국정원 협력자 김 모 씨가 검찰의 소환조사 과정에서 “문서를 위조했고 국정원도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뒤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국정원의 증거 조작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 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이 괴물을 어찌할까'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에서 피고인 유우성(34) 씨가 참석해 있다.ⓒ노컷뉴스

▲ 유우성 씨(가운데)가 그간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주민 민변 사무처장, 최승호 <뉴스타파> PD, 유우성 씨, 민변 장경욱 변호사, 민변 양승봉 변호사. ⓒPD저널

“언론이 사실 쓰면 한 사람 살리고 왜곡하면 한 사람 죽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불리는 유우성 씨 사건은 지난해 1월 21일 <동아일보>의 단독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유 씨의 간첩혐의가 사실인 듯한 보도가 쏟아졌다. 증거 조작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는 조작이 아니라며 국정원을 감싸 안으며 물타기 보도를 내보냈다.

유우성 씨는 이 같은 언론보도에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씨는 “지난번 기자 선생님에게 ‘선생님들(기자들)이 사실을 쓰게 되면 한 사람을 살리고 왜곡하면 한 사람을 죽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사실 하나만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언론은) 계속 소설을 쓰고 왜곡하세요. 저는 사실 하나만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몇 차례나 눈시울을 붉히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 씨는 거듭 진상이 규명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유 씨는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며 “하루 빨리 재판이 끝나서 가족을 만나고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 씨의 이야기에 시민들은 “힘내라”, “진실은 밝혀진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4월부터 이번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유우성 씨가 국정원의 ‘간첩 만들기’에 걸려든 희생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 PD는 “유 씨를 왜 잡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국정원이라는 기관 자체가 간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고 엄중한 진실”이라며 “당대의 간첩조작이 명백하게 밝혀지는 첫 번째 사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조작 당사자와 책임자 모두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PD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법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며 “부디 대통령께서 이번 사건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국정원과 검찰이라는 괴물을 개혁해야 겠다는 진정성을 가지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사건은 1심 재판에서부터 이미 조작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결정적 증거라며 내놓은 유 씨의 동생 가려 씨의 진술과 사진 증거 등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며 유 씨는 지난해 8월 22일 무죄 판결을 받게 됐다. 1심 판결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 이례적인 사건이자 간첩 혐의 탈북자 중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2심 재판에서도 조작을 시도했다. 핵심 증거로 제출된 유 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출입국기록) 등 3개의 문건 역시 중국 측의 확인 결과 ‘위조’로 드러나며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은 물론 위조에 연루된 국정원 관계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 설명회가 벌어진 한 켠에서는 시민들이 이번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 사건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PD저널

 

▲ 추운 날씨에도 유우성 씨의 이야기와 이번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청계광장을 찾아 설명회를 듣고 있다. ⓒPD저널
“국정원·검찰, 형사처벌 해야”…“국정원 수사권 폐지 필요”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증거조작 사건에 연관된 국정원과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은 물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국가보안법 존립의 타당성 여부를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민 변호사는 “조직적인 범죄가 이뤄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단순 사문서 위조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상의 날조죄로 처벌해야 한다”며 “증거조작은 빙산의 일각이다. 간첩조작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의 근본적 문제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권을 같이 갖고 있는 것”이라며 “국정원의 수사권을 더 이상 인정하면 안 된다”며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께 변호를 맡고 있는 양승봉 변호사는 “이 사건 전까지는 국정원이 무서울 틈도 없고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는데 이번 사건을 맡으며 국정원이 두려운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렇게 명백한 사건에 대해 반드시 원인과 경위를 밝혀서 자정 능력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경욱 변호사 역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며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국사회에 어떤 근본적인 공포가 생겼고 양심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민변 소속 변호사인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역시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장 소장은 “국정원이 괴물이 된 가장 큰 이유가 ‘수사권’이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야 수사권을 없앨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퇴진하던지, 수사권을 없애지 않고서는 퇴진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 수사권이 없어질 수 있다”며 “수사권을 국정원으로부터 반드시 뺏어내자”고 주장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이번 사건은 대공수사국의 수사권을 폐지하지 않으면 문건도 위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수사권을 폐지하지 않으면 국정원의 불법과 탈법으로 제 2, 제 3의 유우성 씨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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