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브랜드 포기?…희망 어디서 찾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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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협회, ‘시사교양PD 생각을 묻다’ 좌담회

봄은 성큼 다가왔지만, 여전히 MBC 시사교양 PD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한 겨울이다. 몇 해 전부터 MBC 시사교양 부문은 축소되는 모양새다. 시사교양국은 분리됐고, 프로그램들은 잇따라 폐지됐다. MBC PD협회는 이른바 ‘좋은 시절’을 누려보지 못한 시사교양 PD 3명을 만나 현재 MBC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 PD는 과거의 MBC를 궁금해 했고, 다른 PD는 잘 나가던 MBC를 그리워했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터뷰에 참여한 PD들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Q. 얼마 전 새 사장이 선임됐고, 본부장부터 국장, 부장 등 관리자들의 인사가 이뤄졌다. 인사 평가를 한다면?

A : 새 사장이 왔다고 해서 (회사) 체제가 새로운 방향으로 꾸려지기보다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인사에 대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말의 여지마저도 닫힌 느낌이다. 멈춰있는 상태도 아니고 오히려 뒤로 후퇴하는 기분이랄까.

B : 예상한 인사였다.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라고 생각한다. 선배로, PD로, 관리자로 인정하기 힘들었던 분들 아닌가. 회사 관리자는 정치적인 상황을 떠나 회사의 미래, 먹을거리도 생각해야 하고, PD들 개개인의 경력관리도 해줘야 하고, 발전적인 비전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적합한 인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보직자들 개개인에 대해서 의문이 들고, 수긍할 수 없다.

C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런 것들이 되지 않는 분위기, 열패감이 너무 오래됐다. 또 그것이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와 맞물려 더욱 심해지는 느낌을 받다보니, 제작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 MBC ⓒMBC

Q. 최근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시청률뿐 아니라 화제성에서도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무엇이 원인일까.

B : ‘이슈 메이킹’을 못하기 때문이다. MBC는 뉴스가 주축인 회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뉴스보다 한 발 더 나가 ‘이슈 메이킹’을 했던 곳은 시사교양국이었다.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사에 비해 이슈를 선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시사 프로그램이 고급스럽다, 신뢰도가 있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MBC는) 그런 것들을 포기했다.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무너졌고 시사 프로그램도 유명무실해졌다. 교양 프로그램도 이제는 다 비슷해서 우리가 하는 것들을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한다. 소비자고발 프로그램, 맛집 소개, 휴먼다큐, 매거진 장르…. 어디서나 다 하는 프로그램들을 우리도 하고 있으니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A: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PD들이 제작현장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잠재력 있는 사람들은 다 여기 있는데 활용을 하지 않고, (제작을) 못하게 하니까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Q. <PD수첩>의 경우 권력 비판적이거나 민감한 소재가 많이 줄었다. 이유를 찾는다면.

A : 본의 아니게 이 직군의 많은 PD들이 낙인찍힌 느낌이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줬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과거의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B : MBC의 브랜드를 포기한 것 같다. MBC라는 브랜드는 재미있는 예능, 작품성 있는 드라마, 통통 튀는 젊은 색채와 감각이 핵심이었다. 또 하나의 주축은 고급스러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언론사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분야를 탐사보도하는 곳이 MBC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했다. 경영진은 눈에 띄는 시청률로만, 단기적으로 경영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시청률이 광고 수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이 10%가 나온다고 광고가 다 팔리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이 있는 층이 보고, 화제성이 있고,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을 고려해서 광고가 팔리는데 지금은 작은 수치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C: 작년부턴가 사내 엘리베이터에 시청률표가 붙었다. 경영진의 마인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시청률이 5% 나오다가 6%가 나온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히 MBC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PD수첩>이나 다른 교양 프로그램들을 시청률 같은 숫자의 영역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너희는 아웃”이라는 상황은 시사교양 PD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Q. 시사교양 PD로서 현재 시사교양 부문을 평가한다면?

B :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시사교양 부문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느낌이다. 프로그램 초기에는 시청률을 이유로, 시청률이 오르니까 화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시사교양 부문이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것을 꺼린다. 스스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 예산도 없다. 시작하는 것을 막는 느낌, 시작한 것도 자르는 느낌이다.

C: 한 때 동경하고 만들고 싶었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사라졌다. <W>라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MBC가 대중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PD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점도 그렇고. 지금은 인사이동 시기인데 PD들이 어느 프로그램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기 힘든 현실이 먼저 보인다.

A : 최근에도 멀쩡히 잘 만들던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 없이 없어졌다. 화제성이 약하다는 이유였다. 교양제작국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최대한 자존심을 지키며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만, 경영진이 시사교양 부문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 편성을 할당하는 것, 편성하고서 믿어주지 않는 것 등에서 PD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 지난 2010년 폐지된 MBC <김혜수의 W> ⓒMBC

Q. 시사교양 PD들 중 주니어 그룹으로서, 흔히 말하는 ‘좋은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입사 당시와 비교해본다면 어떻게 달라졌는가?

A: 처음에 들어왔을 때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지시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부당한 점이 있으면 지적할 줄 아는 선배들이 존경스러웠다. 과거에는 ‘아이템에 성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MBC 시사교양국이 매력적이었고, 시청자도 더욱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명하복이 일상화된 회사원 같다. 상명하복이 무조건 나쁘다기보다 합리적이지 못한 기준 없는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초반에는 말이 안 된다고 항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사라져버린 분위기다.

C : 선배들이 ‘옛날에 좋았는데’라고 하면 그 좋은 때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신입사원 연수 때만해도 선배들에게 ‘지구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입사 초반에 봤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말에도 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일찍 퇴근해도 되는데 자발적으로 남아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였다. 원래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머물고 싶지 않은 사무실이 됐다.

B : 예전에는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누구도 터치하지 않았다. 또한 ‘작가주의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개개인의 색깔을 인정했고, 모난 돌들이 있더라도 억지로 깎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 깎아서 똑같이 만들고 개인들의 역량을 자율적으로 발휘할 공간을 주지 않는다. 위에서 시키는 것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어 버린다. 위에서는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게 안 되면 개인의 무능력이라고 치환해버리는 현실이다. 콘텐츠 회사인데 콘텐츠 만드는 사람을 공장 일꾼으로 취급하는 게 가장 불만이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에게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 “이거 되겠어?”라고 압박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

Q. 만약 타 방송사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A :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MBC만한 회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희미해지긴 했지만 MBC라는 브랜드 파워, MBC 사람들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도 이 회사에 남아서 조금씩이라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C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하게 낭만적인 직장이 없어졌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하다. PD라는 직업이 좋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과 몸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B: 타사로 간 예능 부문의 사람들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좋은 조건이 있어도 안 떠날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MBC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회사 사람들이 MBC에 대한 애정이 깊다. 회사 사정이 열악해져도 ‘이런 것 할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다.’는 자부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Q.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A:역시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보여 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기회조차 안 주는 게 문제다. ‘교양제작국이 미니어처가 됐다’고 한 선배가 얘기했듯이 갈수록 위축되는 느낌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어떻게 능력을 발휘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B :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헌신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C : 경영진들의 제작 자율성의 침해는 큰 문제다. 제작 자율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 이 기사는 MBC PD협회(http://mbcpds.tistory.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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