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품으로 전락한 ‘꽃보다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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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꽃보다~’ 시리즈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가 유통업계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같은 기간에는 팔리지 않던 스페인 완전일주 상품이 ‘완판’되는 등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 이탈리아 중심의 유럽여행 판도를 바꿔놓고 있으며, 쇼핑과 검색에서 '스페인'이라는 키워드를 급부상시키는 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쟁 속 폐허로만 기억되던 크로아티아, 중국 변방의 외딴섬 정도로만 취급되었던 대만을 선망의 그것으로 탈바꿈시킨 마법이 또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꽃보다’ 시리즈의 성공은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해온 문화 상품의 근간인 젊음과 아름다움을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 소재의 희소성과 대안적 가치라는 두 개의 축을 세련되게 조율해낸 결과다. 특히 사회적 배제의 상징인 나이듦을 희화화하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예능의 소재로 재구성해낸 능력에 경의를 표할 만 하다. 그로 인해 말초적인 감각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져주고 있고, 이는 유사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지 못했던 이유와 맞물려 그들만의 미덕으로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 tvN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 포스터 ⓒtvN
그런데 이러한 찬사에 앞서 깊은 우려를 가지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직업병인가. ‘꽃보다’시리즈의 파급효과에 대해 기뻐하기만 해도 좋을까. 우려는 이러하다. ‘꽃보다 시리즈’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여행 광고를 연상시킨다. 유튜브에서 흔히 만나는 스토리가 있는 마케팅 광고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 스타가 있고 이슈가 있으니 더욱 큰 파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드러내면서 점차 프로그램의 공익성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꽃보다’ 시리즈는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한 부수적 효과를 더 우선적으로 고려한 기획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이 찾아가는 여행지는 유독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곳이며, 이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모기업의 여행사와 홈쇼핑은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를 누리고 있을 것이며, 이는 프로그램 광고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윤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 안에서 소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면밀히 다뤄지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흐름은 방송 프로그램이 국익과 이윤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현 정부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때문에 이를 위한 규제완화의 흐름만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 2, 제 3의 꽃보다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이며, 방송 프로그램의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이 오직 상품으로서 평가되고 기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만이 환호의 대상이 되는 상업적인 방송환경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이미 방송제작시스템 안에서는 간접광고 등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에 대한 홀대가 익숙한 일이다. 돈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제작비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편성에서도 권한을 가지기 어렵다.

▲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물론 공공성과 공익성을 기반으로 한 방송법의 정신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마케팅을 위해 복무하는 프로그램,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시장을 움직이게 하고 상업자본의 이윤 창출에 부응하는 방송환경이 본격화되는 상황을 제어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 공공영역의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학자 리프킨은 경쟁이 격화되는 자본주의 환경에서는 가치나 도덕, 운동조차 상품화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상업화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균형추로서 공익적 프로그램의 설 자리를 조속히 마련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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