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침묵하는 시사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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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통제·내부 검열의 내재화 우려 목소리

지난 3월 28일 오후 3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시작되는 서울고등법원 앞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이날 변호인단의 거센 반발에도 검찰 측이 공소장 변경 신청을 요구한 터라 재판을 받으러 온 유우성 씨의 표정을 포착하는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검찰은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 사실은 유지하되 조작 의혹이 제기된 유우성 씨의 간첩혐의 입증 증거 3건에 대해 철회하고 재북 화교로 중국 국적을 가진 유우성 씨가 탈북자로 신분을 속이고 받은 정부 지원금 7700만원에 대한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 측 의견을 받아들였고 결심공판은 오는 11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이날 취재 인파 속에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의 카메라는 찾을 수 없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며 ‘국기를 흔든 사건’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외면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PD들이 제작하는 시사·탐사보도 프로그램 가운데 유일하게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2013년 9월 7일)이 1심 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추적했다. 그러나 이후 후속 방송은 나오지 않고 있고, MBC <PD수첩>이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아직 관련 아이템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지상파 시사·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이번 사건을 다루는 게 어려운 것은 아이템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내부 통제가 작동된 지 오래되다 보니 제작진 스스로도 자기검열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별도로 국정원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도 발목을 잡는 요소라는 하소연도 있다. 한 방송사 PD는 “수사가 진행 중인 건이기도 하고, 국정원이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등 방송을 만드는 과정 상 쉽지 않은 부분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추적 60분>이 후속 방송을 하기 어려운 데에는 지난해 10월 보도본부에서 TV본부로 이관되며 이전보다 아이템 선정을 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도 있다는 지적이다. KBS의 한 기자는 “보도본부 내에 <추적 60분>이 있을 때는 PD들의 주제 선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PD조직(TV본부)으로 옮겨가며 선·후배 관계 때문에 아이템 선정이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4대강, 천안함, 국정원 사태 등 민감한 정부 정책이나 사안을 다룬 제작진이 불이익을 받거나 심의 과정에서 징계를 받으면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성립되었다. 한 방송사 PD는 “지난 정권, 이번 정권 상관없이 정권에 민감한 아이템을 다루는 데 윗선에서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다. 그리고 심의 등 제재를 받는 걸 보면 다른 PD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편이 불방 파문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방송됐는가 하면, 해당 방송이 나간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과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법정제재인 ‘경고’(벌점 2점)를 받았다. 제작진은 이에 부당함을 느끼고 행정심판을 제기하기로 했지만 KBS 경영진의 철회지시로 행정심판은 제기조차 못하게 됐다.

그러나 증거조작이라는 표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인권 유린 문제와 국정원의 탈북자 사후관리 문제 그리고 추가 간첩 조작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사 프로그램이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질책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스타파>에서는 “‘화교남매간첩 무죄’, 합신센터에선 무슨 일이?”(2013년 8월 23일), “‘합신센터’는 간첩제조공장?”(2014년 3월 18일) 등 합신센터의 문제점을 지적해오고 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한예종 교수)는 “저널리즘의 장 자체가 와해되고 역량이 위축된 상태에서 간첩 사건이자 국가 정보기관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취재하기 불편해하고 편성하지 않으려 하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며 “양심 있는 방송사라면 자신들이 방송에 대한 불이익을 떠맡으면서 내부 언론인들이 취재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려는 비정상성이 내재화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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