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와 심의규정 11조, 그리고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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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의자인 유우성씨를 인터뷰한 JTBC 시사토크 프로그램 <뉴스 큐브 6>(2월 18일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 여권 추천 위원들이 중징계를 밀어붙였다. <뉴스 큐브 6>이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과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제14조(객관성)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여권 추천 방심위원들이 특히 문제 삼은 위반 조항은 제11조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를 출연시켜 자기 변소를 하게 함으로써 향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고, 사법권의 독립성도 훼손했다는 것이다.

<뉴스 큐브 6>의 방송심의규정 제11조 위반을 가장 심각하게 질타한 이는 검사 출신인 박만 위원장이었는데,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언론이 재판을 비판할 순 있지만, 법관의 전속적 권한에 속하는 증거에 대한 사실인정과 유·무죄 판단을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사실인정 문제를 모두 건드리고 있다.”

KBS 기자 출신의 권혁부 부위원장도 거들었다. “국가가 공소권을 행사에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수사당국에서 제출한 증거가 비록 위조였다 하더라도 이 사람(유우성씨)을 간첩으로 보는 건 그 증거 하나 때문이 아닌데 <뉴스 큐브 6>은 마치 전부 무죄인양 방송했다.”

언론은 판관이 아니다. 때문에 박 위원장과 권 부위원장의 말마따나 <뉴스 큐브 6>이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했다면 이는 문제일 터다. 그런데 이 방송은 검찰이 유우성씨의 간첩 협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법부에 제출한 증거가 위조됐다는 의혹을 다뤘다. 중국 정부가 유우성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 JTBC <뉴스 큐브 6> 2월 18일 방송 ⓒJTBC
방통심의위, 방송심의규정 제11조 앞세워 유죄추정 강요?

검찰은 공소장에서 유우성씨가 2006년 5~6월 북한에 다녀온 뒤 2012년 7월까지 간첩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유우성씨 출입경 기록에 따르면, 유씨는 2006년 5월 27일 중국으로 나왔다 같은 날 다시 북한에 들어간 뒤 그해 6월 10일 중국으로 나왔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에서 발급받은 전혀 다른 내용의 출입경 기록을 내놨고, 이에 검찰은 삼합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서)의 정황설명서와 허룽시 공안국이 선양에 있는 한국총영사관에서 보낸 사실 확인서 등을 반박 자료로 제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검찰에서 제시한 세 개의 문서 모두가 위조된 것이라고 통보했다.

유우성씨가 <뉴스 큐브 6>에 출연해 밝힌 내용도 간첩 혐의 내용과 입북 경위, 출입경 기록 확인서 위조 등에 대한 입장이다. 유씨는 이날 방송에서 “어머니 장례식에 4박 5일 동안 갔다 온 것 빼곤 북한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검찰은 한 달 넘게 위조문서가 아닐 가능성을 고집하다, 지난 3월 27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36건 중 20건을 철회했고, 이 안엔 중국 정부에서 위조라고 밝힌 세 개의 문서도 포함돼 있었다.

물론 <뉴스 큐브 6>의 유우성씨 인터뷰는 검찰에서 위조 증거를 철회하기 전에 방송됐다. 그러나 검찰이 한 달 넘게 위조문서가 아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도 증거에 문제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은 연이어 나왔다. 증거의 증명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즉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언론이 -비록 피의자이긴 하나- 국가 권력 앞에 약자인 당사자의 입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성을 찾은 배경이다.

이는 야당 추천 방심위원이자 법학자인 박경신 위원이 방송심의규정 제11조를 무조건 적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BBC 등 외국의 방송에서도 재판 중인 사건을 보도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여론재판에서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이에 의해 임명된 검사들이 확신을 갖고 피고인을 기소한 만큼, 많은 이들이 (피고인에 대해) 의혹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방송까지 유죄인 것처럼 불리한 증거를 보도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훼손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조항을 만든 것이다.”

즉,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제한하는 규정의 근본엔 만에 하나일지라도 유죄 추정에 대한 염려가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송들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MBC PD협회장인 박건식 P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방송 강령이나 제작 가이드라인에서 재판 중인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마련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나 공적기관의 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도나 논평은 신중을 기한다.” (KBS 방송 강령)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정당한 법적 조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한다.” (MBC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을 보도할 때는 시·청취자가 사건의 정황을 판단하는 과정에 부당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중을 기한다.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일지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을 끌고 있는 사안이거나 사회 정의의 실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판단한 사건에 한해서는 심층 취재를 할 수 있다.” (SBS 방송 강령)

‘정당한 법적 조치’와 ‘사회 정의 실현’과 관련한 내용이면 재판 중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저널리즘이 활동한 공간을 분명히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우성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스스로 증거 조작을 인정하고 관련 수사에 나섰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조 증거를 철회했다.

물론, 검찰은 위조를 인정한 핵심 물증은 철회했지만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 유지는 강행하고 있다. 권혁부 부위원장이 “증거가 위조됐다 하더라도 그것(위조된 증거)만으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보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배경이다. 그러나 방심위에서 유우성씨가 간첩인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없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방심위 또한 판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 큐브 9>에 대한 중징계를 밀어붙이면서 검찰과 같은 주장을 내세워선 안 된다는 얘기다.

중세 시대, 마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증거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몸에 문신이나 흉터가 있으면, 조사나 취조를 당해도 울지 않으면 마녀였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언론은 사회 정의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면 마녀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대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방심위가 언론의 이런 역할을 부정한다면? 어쩌면 언론개혁시민연대가 4일 발표한 논평에 적혀 있는 표현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방심위야말로 민주 사회의 ‘암 덩어리’이자 ‘쳐부숴야 할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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