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준칙 제정’보다 언론인 자성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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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보도 원인과 대안은]‘공동취재단’ 현실 적용 어려워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과잉경쟁으로 불확실한 정보와 오보가 쏟아지면서 재난보도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언론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실효성 있는 재난보도준칙 제정과 공동취재단 구성 등이 악순환을 끊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사고 발생한 지난 16일부터 22일까지 문제가 된 보도를 보면 대부분 지나친 속보·취재경쟁이 원인이 됐다. 사고 초반 검증이 안 된 관계 부처의 주장과 의혹이 쏟아진 건 언론사들이 속보경쟁을 벌인 탓이 컸다. 또 전국민적인 관심이 높다는 점을 이용해 억지 기사로 ‘검색어 장사’를 한 언론도 적지 않았다.

진도 현장에 있는 일선 기자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제한된 정보, 접근이 어려운 현장 등이 사고 초반 오보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열악한 취재 여건과 대형 사고를 접한 기자들이 흥분해 저지른 실수로 눈감아주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시청자의 정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질문과 자막에 ‘기자와 언론의 자질과 소양까지 의심스럽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일부 언론의 선정적이고 신중치 못한 보도에 대해 비판이 커지자 한국기자협회는 ‘여객선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언론인의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이드라인에는 ‘생존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의 제한’ ‘자극적 영상이나, 선정적 어휘 사용 자제’ 등을 ‘철저한 검증보도’ 등이 담겼다. 기자협회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추진하다 보류했던 재난보도 준칙을 이른 시일 안에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난보도 준칙은 재난사고의 보도의 단일한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대부분 방송사가 개별적으로 방송·윤리강령에서 재난보도의 준칙을 정하고 있지만 방송사들이 합의를 통해 마련한 재난보도 준칙은 없다. 실제 취재진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와 혼란을 겪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국내 언론보다 차분한 보도를 보여줬던 NHK의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KBS <해외방송정보>(2011년 4월호) 에 따르면 NHK ‘신방송 가이드라인’은 어휘와 영상, 그래픽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정한 보도준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과장된 표현 금지’ ‘유족들이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픽은 하단 스크롤을 통해 고지한다’ 등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영국 재난방송주관사인 BBC도 ‘사건의 실상을 그대로 보도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원칙에 따라 신중한 재난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2년 발간한 ‘영국 BBC 제작 가이드라인 및 심의 사례’에 따르면 BBC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사고 초기 사상자 추정치가 출처별로 다를 경우 추청치 범위를 보도하거나 가장 권위 있는 출처를 택해서 따른다’, ‘부상자와 실종자의 개인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알 권리보다는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에 무게추를 둔 것이다.  

보도준칙 제정과 함께 무엇보다 대형 재난사고를 대하는 기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 인터넷매체 기자는 “피해자 가족들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취재 자체가 어려워서 현장에서 한마디가 나오면 바로 기사화되는 분위기”라며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에 앞서 사실 확인과 검증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둘 것인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 생긴다”며 “보도준칙 제정도 필요하지만 기자 개개인이 직업윤리에 비춰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보도의 문제가 과잉경쟁에서 나왔다는 진단에서 ‘공동취재단’ 구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2일 “이번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할 경우 특히 방송에서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적어도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보 중 피해 현황 통계, 수색과정 등 특별히 정확성이 요구되는 사안이나, 피해자나 그 가족, 생존자에 대한 취재만이라도 공동취재단의 운영이 절실하다”고 공동취재단 운영을 제안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월 제정한 ‘재난방송 및 민방위경보방송의 실시에 관한 기준’(재난방송 기준)에도 공동취재단의 구성 근거가 명시되어 있긴 하다. 재난방송 기준은 “주관방송사는 효율적인 재난방송 등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다른 방송사와 협의를 거쳐 공동취재단을 구성할 수 있고, 그 운영을 담당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 사이에서는 편집방향이 다른 방송사 기자들이 공동취재단으로 묶여 취재하는 건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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