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유체이탈’ 화법 배운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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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청와대,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 논란 실종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부터 우왕좌왕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논란만 키워온 정부 공무원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6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하나 발표했다.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청와대의 안보·통일·국방의 컨트롤타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상황이 발생할 경우 국가안보실의 역할에 대해 관련 상황 정보가 들어오면 해당 수석실로 (해당 내용을)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안보실은 입수한 정보를 정무수석실에 전달하고 산하의 사회안전비서관실이 해양경찰청과 해양수산부 등 소관부처에서 올리는 정보를 취합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던 지난 16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장수 실장이 위기관리센터에서 사고와 구조 현황을 파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관련 상황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도 사고 직후 김 실장에게 보고를 받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특공대 투입”을 지시했다.

▲ <한겨레> 4월 24일 1면
김 실장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대해 동아·중앙일보 등 몇몇을 제외한 24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무책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책임 회피성 발언”(<국민일보> 10면), “억지 논리”(<세계일보> 8면), “모든 정부 부처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책임지는 자세로 근신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굳이 김 실장의 역할을 공개 부인한 것은 부적절”(<조선일보> 12면) 등의 비판이었다.

물론 김 실장과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재난 대처에 대한 주무를 청와대가 아닌 ‘안전행정부’(중앙재난안전대책부)가 총괄한다는 현 정부의 재난대응 체계에 기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무책임한 태도와 상황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한겨레> 1면)는 게 언론의 지적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현재까지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출 등의 잘못된 사실이 보고된 경로와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시점 등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들은 김 실장과 청와대가 왜 이런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는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고, 이런 의혹을 내놓고 있다. <경향신문> 2면 기사를 보자.

“안보실이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김 실장이) 구태여 강조하고 나선 것은 사고 초기부터 허술한 대응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싸잡아 비판판자 책임 라인에서 청와대를 배제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며 공직자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한 것에 비춰보면 대통령 턱밑에서부터 책임회피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4월 23일 JTBC <뉴스9> ⓒJTBC
지난 23일 방송에서 “청와대,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 입장 발표 논란과 관련해 네 개의 리포트를 배치한 JTBC <뉴스9>도 “(김 실장과 청와대의) 이런 입장은 사고 직후 국가보안실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며 “이 때문에 세월호 사태의 책임론이 청와대로 번지는 걸 막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JTBC <뉴스9>는 이어 <오류·정정·혼선…‘중심’ 없고 ‘대책’도 없는 재난본부>, <우후죽순 생긴 본부…통합해도 여런히 오락가락 대응>, <명예직 가까운 총리, 재난 대처 어려워…전문가 “청와대 관여해야”> 등의 리포트를 연속해서 전하며 “지금처럼 청와대가 한 발 물러서서 ‘우리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에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재난 대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밝힌 청와대와 김 실장을 향한 문제제기와 대안에 대한 논의가 언론을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정부의 단호한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지난 23일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 어디에서도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한 김 실장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은 전해지지 않았다.

▲ 4월 23일 MBC <뉴스데스크> ⓒMBC
대신 정부의 단호한 후속 대응만이 ‘홍보’됐을 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점검단이 사회 전 분야에 대해 종합 안전 점검에 나선다”는 소식(KBS 1TV <뉴스9>)과 지난 2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기존의 제도와 방식을 고쳐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며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 수습이 끝나는 대로 국가개조 수준의 대대적인 국가 시스템 혁신에 나설 것”이란 소식(MBC <뉴스데스크>) 등만 전한 것이다.

침몰한 배 안에 갇힌 사람을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의 최고 책임자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그리고 이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국민에게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고 자신을 제외한 정부 관료들과 공무원들에게만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사들과 유력지를 자처하는 일부 신문들은 선장과 선박회사, 전·현직 해수부 관료 등 모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도 그 대상에서 한 곳만은 집요하게 제외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울부짖음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언급하며 현장 기자들의 입을 통해 반성을 말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신을 책임선상에서 제외시키는 박 대통령의 화법을 두고 누리꾼들은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말한다. 내외부로부터 ‘정권의 방송장악’ 논란이 나올 때마다 반박하는 방송사들이지만, 이 화법만은 제대로 배운 듯 보인다. 알고보면 올 봄 트렌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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