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간첩이라 말한 유우성, 법은 무죄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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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2심 무죄 판결에도 단신 처리…지상파도 뉴스 후반

지난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제417호 대법정.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34)는 손을 꼭 쥐고 일어선 채로 판결문을 들었다. 선고에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며 앉으라는 판사의 권유에도 그는 앉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다시 두 손을 맞잡았다 차려 자세로 있다가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게 약 1시간 30분이 흐른 뒤 재판부는 유 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우성 씨의 간첩, 특수 잠입 및 탈출, 회합·통신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여권법과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사기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 3170원을 선고했다.

무죄 선고에 재판장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엔 환호의 빛이 어렸지만 유 씨는 오히려 담담한 모습이었다. 두번째 무죄 선고였던 탓일까. 수많은 취재진을 헤치고 법원을 빠져나온 유 씨의 얼굴엔 그제야 희색이 돌았다. 지인이 건넨 축하의 꽃 한송이를 받아들면서 유 씨는 취재진 앞에서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동안 자신과 가족 모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물론 대법원 확정심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그에게 2심 무죄 판결은 희망의 빛줄기였다. 

이번 사건은 ‘해바라기 언론’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증거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보수언론과 지상파 방송에서는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보도했고, 유 씨와 그의 가족에게 벌어진 인권 유린은 극히 일부 언론에서만 보도됐다. 법의 판단이 나오기 전부터 그를 간첩이라 몰아세운 언론도 있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인 유우성 씨가 지난 3월 28일 오후 항소심 결심공판을 갖기 위해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노컷뉴스
■무죄 판결마저 축소보도?= 2심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 씨의 변호인단은 법원을 나오며 이번 판결에 대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변호인단 중 천낙붕 변호사는 “합동신문센터의 구금행태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불법구금’이라는 점을 세밀하게 짚었다”며 “합동신문센터의 허위자백에 의해 간첩이 또다시 만들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에서 유우성 씨의 여동생 가려 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불법 구금된 점, 그리고 합신센터에서 “오빠(유우성)가 간첩”이라고 한 진술이 국정원의 강압에 의한 허위진술이었다고 인정한 점, 검찰 측의 증거가 부실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짚어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는 모두 12면에서 단신으로 처리하며 재판부의 선고 내용에 담긴 의미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지난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을 때에도 <조선일보>는 11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12면에서 단신으로 처리한 것과 비슷한 태도다. <조선일보>는 재판부의 발언을 지적하는가 하면 검찰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오히려 23면 사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흔들리는 대공수사력”에서 “검찰은 대공수사가 무력화하지 않도록 선진 수사기법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깎을 뼈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국정원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신뢰도, 안보도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상파 메인뉴스인 KBS <뉴스9>는 32번째, MBC <뉴스데스크>는 29번째 SBS <8뉴스>는 15번째 리포트에서 해당 소식을 전했지만, 해당 판결이 갖는 의미를 짚어내기 보다는 사실 전달에 그쳤다. 다만 MBC 역시 재판부의 일부 발언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이라는 국기를 뒤흔든 사태에 대한 법원의 지적과 판단이 있었음에도 보수신문과 지상파 언론은 이번 판결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전달한 것이다. 반면 <한겨레>는 1면 처리 후 10면과 17면을 통해 무죄 판결의 의미를 짚었으며, <경향신문>도 1면에서 무죄 소식을 전한 후 14면에서 관련 기사 4개를 실었다.

■판결 전부터 ‘간첩몰이’= 이처럼 유우성 씨에 대한 무죄 판결에는 인색한 언론, 특히 보수신문은 유 씨에게 ‘간첩’의 낙인을 찍는 데는 앞장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유 씨는 “지난번 기자 선생님에게 ‘선생님들(기자들)이 사실을 쓰게 되면 한 사람을 살리고 왜곡하면 한 사람을 죽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며 언론의 왜곡된 혹은 간첩으로 단정짓는 듯한 보도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함을 밝힌 바 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지난해 1월 21일 <동아일보> 1면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북에 넘긴 정황” 단독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보수언론에서는 마치 유 씨의 간첩혐의가 사실인 듯한 보도를 하거나 증거조작 혐의로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단독보도를 한 날부터 나흘 동안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2013년 1월 22일), “정부, 탈북자 검증시스템 뜯어고친다”(2013년 1월 23일) 등 유 씨 및 탈북자 관련 기사를 10개 넘게 쏟아내는 등 이번 사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지난해 4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과 유우성 씨 여동생 가려 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에서 “오빠(유우성)가 간첩”이라고 한 진술이 국정원의 협박에 의한 거짓 진술이었다고 폭로하자 소극적인 태도로 나왔다. 조선·중앙·동아는 해당 소식을 4월 29일자에서 10면 이하에 단신으로 처리했다. 지상파 방송사 역시 KBS와 SBS는 단신으로 처리했으며 MBC는 해당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다.

■증거조작의혹에는 침묵 혹은 물타기= 유 씨의 간첩 의혹이 사실인 것 마냥 보도했던 보수언론은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 의혹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물타기를 시도했다.

지난 2월 14일 유 씨의 변호를 맡은 민변이 국정원이 유 씨에 대한 핵심증거로 내놓은 3가지 공문서가 위조됐다는 주한중국대사관의 확인 내용 언론에 공개하며 ‘증거조작’ 논란이 시작됐다.

이에 지상파 메인뉴스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거나 침묵했다. KBS <뉴스9>는 날씨와 스포츠를 제외한 29개 보도 중 19번째, SBS는 14개 보도 중 10번째로 보도했고, MBC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위조가 아닐 수 있다며 이를 감싸기 급급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증거조작 논란이 시작된 이후 지난 2월 18일부터 지난 4월 18일까지 조작 사건과 관련해 ‘휴민트’에 대한 사설과 기사를 내보낸 것만 12개이다.

국정원을 감싸거나 국정원에 불리한 보도는 피해오던 보수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관련해 지난 3월 10일 유감을 표명한 이후인 지난 3월 11일부터 국정원 협력자 김모 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14일까지 국정원의 책임을 묻는 식의 보도를 조선·중앙·동아가 기사와 사설, 칼럼을 각각 19개, 20개, 21개씩 총 60개를 쏟아냈다.

증거 위조 의혹이 불거진 2월 14일에는 조용하던 지상파도 3월 10일만큼은 바쁘게 소식을 전했다. KBS <뉴스9>는 박 대통령의 유감표명은 6번째, 관련 소식은 7~8번째로 전했고 MBC는 톱뉴스와 2번째에서 관련 소식을 보도한 후 3번째에서는 박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SBS도 1, 2, 4번째에서 증거조작 관련 뉴스를, 3번째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했다.

▲ <한겨레> 2014년 4월 26일 10면.

■간첩조작 반복되지 않아야= 이처럼 언론은 일찌감치 유우성 씨의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며 ‘간첩’으로 몰았지만 법의 판단은 유 씨가 간첩이 아니라고 재차 판결했다.

민변은 “간첩조작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시작은 바로 합동신문센터였다. 본 판결은 앞으로 합신센터에서의 허위자백에 의한 간첩조작이 없어지길 기대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지난해 4월부터 이번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우성 씨 사건 2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유가려 씨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 구금을 인정했다. 앞으로 합동신문센터에서 허위 자백한 다른 많은 피해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는지, 검찰이 이시원, 이문성 검사를 비롯한 검찰 수사라인을 어떻게 징계하는지 지켜봐야 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원을 빠져나온 유우성 씨는 “재판이 거듭될수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변호인과 언론인들이 억대의 소송을 당하는 것을 보며 너무 무서웠다”며 “내 사건을 계기로 조작된 간첩 사건이 이 시점에서 끝이 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 저희 가족처럼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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