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어야 보도한 언론, 이제는 죽어도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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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지형 친자본 쏠림 심각 …"삼성 등 광고통제에 진보언론 자유롭지 못해"

대기업의 광고통제 등으로 인해 언론의 친자본, 반노동 성향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노동현안을 다룬 보도에도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달 1일 노동절을 앞두고 29일 언론노조와 민주노총이 마련한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 토론회에선 노동계와 현업 언론인 모두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언론과 기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노동관련 보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공인노무사)는 “노동자가 죽어야 관심을 갖고 보도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노동자가 죽어도 보도를 외면하는 시절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부터 20일까지 KBS <뉴스 9>와 MBC <뉴스데스크>의 노동관련 보도는 각각 4건에 불과했다. 이 기간 노동계 현안으로 떠올랐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다룬 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삼성서비스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나 철도노조 조합원이 순환전보에 반발해 자살했다는 의혹도 누락됐다.

강 기자는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2월 9일 12개 일간지 사설과 KBS <뉴스9>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 “노동문제에서는 심각한 쏠림 현상이 드러나 민주적 여론 형성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12개 일간지 가운데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9개 신문은 철도노조 파업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친기업 성향을 드러냈고, <한국일보>는 노정대화를, <경향신문><한겨레>는 파업 배경이 된 철도 민영화 문제를 다뤘다. 이날 KBS <뉴스9>는 파업 피해를 불편을 부각하는 리포트를 5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리포트를 2건씩 내보낸 반면 노동의 입장을 전하는 보도는 1건에 그쳤다.

▲ 언론노조와 민주노총이 124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29일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한국언론의 노동보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파업을 벌였던 철도노조는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를 직접 겪었다. 백성곤 철도노조 교육선전실장은 “파업을 마친 뒤 파업의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왜곡한 보도를 조사하고 있는데 최종 집계가 아닌데도 파업이 진행된 20일 동안 <조선일보>가 43건, <동아일보> 45건, <문화일보> 48건이 문제가 있는 것을 나왔다”며 “이런 언론에 대해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지만 이미 보도로 철도노조가 입은 타격은 회복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홍명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교육선전위원은 최대 광고주인 삼성이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관리·통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위원은 “얼마 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사장들과 삼성의 노조 탄압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미담 기사가 몇시간만에 400여건이 쏟아졌다”며 “반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해선 악의적인 보도가 나오는데 최소한 기자라면 최소한 사실관계는 확인하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공정사회 파괴 노동인권 유린 삼성 바로잡기 운동본부’가 지난 4일과 13일 주요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게재하려다 거절당한 사례를 들어 진보언론도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향신문>은 ‘재용씨 노조 몰라요’라는 광고 문구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한겨레>는 갑자기 높은 광고비를 제시해 못 실었다”며 “ 삼성은 광고라는 무기로 언론을 길들이고, 언론은 삼성이 광고를 중단하면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자체 검열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는 “친자본언론이 압도적인 언론환경에서 조중동은 전투적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며 “이런 언론시장의 구도에서 민주적 여론 형성을 위해선 힘의 약세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진보언론이 내적 균형만 신경을 쓰는는 게 아니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진보언론의 분발을 촉구했다.

강진구 기자는 “언론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조직화된 노동자에게는 악의적으로, 개별 근로자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유린되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언론이 관심이 없는 건 국내 노동 기본권의 수준이 열악한 측면도 있다”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강 기자는 “공정보도는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MBC노조 파업 1심 재판부의 결정을 보더라도 노동보도에서 노사 양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하는 건 기자의 양심의 의무가 아니라 헌법상 언론의 자유에 근거를 둔 실정법상 의무”라며 “노동문제를 노사간의 이익과 권리 분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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