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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인문학 생중계]

16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된 ‘황금의 비극’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됐다.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에 참혹한 내전을 일으켜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것을 장악하는 사람이 나라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 소리어스 사무라 (다큐멘터리 <크라이 프리타운> 감독)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인구 600만 명에 면적 7만㎢. 한국보다 작은 이 나라에서 1990년대에 20만명이 죽었고, 25만의 여성이 유린됐고,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굳이 덧붙이자면 7000명의 어린이가 반군이 됐고, 4000명의 팔다리가 절단됐다.

▲ 다큐멘터리 <크라이 프리타운>의 첫 장면, 인터뷰를 하던 소년은 카메라 앞에서 반군에게 끌려가 총살당한다. http://youtu.be/9yWlRTKMNCM
우리가 1950년 6월 25일을 기억하듯,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1999년 1월 6일을 기억한다.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이 수도 프리타운을 공격한 날이다. ‘생물절멸작전’, 무시무시한 작전 이름처럼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소리어스 사무라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날의 참상을 기록했다. “시에라리온 국민의 90%가 본 적도 없는 다이아몬드, 이 때문에 그 날 프리타운이 슬프게 울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를 통해 이 나라의 비극을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만 없으면 지상천국이 될 수 있대요.” 꼬마 디아 반디는 학교에서 돌아오며 아버지에게 말한다. 반군이 마을을 습격하여 민간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투표하지 못하도록 손목을 절단한다. 살아남은 가족은 갈가리 찢어진다. 아버지는 광산으로, 어머니와 딸은 난민 수용소로 흩어지고, 아들 반디는 무장반군의 소년병이 된다. 아버지 솔로몬 반디(지몬 훈수)는 가족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는데, 다이어 밀수꾼 대니 아처(레너도 디카프리오)와 기자 매디 바우엔(제니퍼 코넬리)이 동행한다.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가 처음 발견된 건 1930년. 영국 식민지답게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 나라에서 다이아몬드는 재앙이었다. 정부와 반군 등 모든 정치세력이 다이아몬드 생산지를 점령하려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 런던과 앤트워프에 중심을 둔 보석 메이저들은 레바논 상인을 통해 밀반출한 다이아몬드를 인도에서 세탁한 뒤 미국 등지로 팔았다. 전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85%를 점유하던 드비어스(De Beers)는 이 나라의 다이아몬드를 헐값에 독점하려 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드비어스의 광고 문구는 소비자들에게 주술과 같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평범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반짝이는 돌덩어리는 가장 비싼 보석으로 변했고, 결국 사람의 피가 되어 아프리카 땅을 적셨다.

냉혈한 보석상들에게 피묻은 다이아몬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격과 공급량을 통제하려면 내전이 계속되는 게 나았다. 반군들이 파는 다이아가 훨씬 더 쌌으니, 전쟁이 끝나면 손해였다.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등 국제사회는 빈털터리 정부군을 지원했는데, 이는 양쪽 세력의 균형을 잡아줘서 전쟁을 연장하는 꼴이었다. 반군은 다이아를 밀수출한 돈으로 라이베리아를 비롯한 이웃나라를 통해 동유럽의 무기를 사 들였다. 정부군과 반군이 알아서 원수처럼 싸워주니 보석상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풀기였다. 

▲ 시에라리온 내전 중 7000명의 소년병이 있었다. 반군들은 어린이들이 싸우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가차없이 처형했다고 한다.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드러난 극단적인 잔인성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일반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반군이 서슴없이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상식 밖이었다. 어린이들을 잡아서 살인기계로 훈련시킨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륜 행위였다. 그들은 어린이들이 싸우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가차 없이 처형해 버렸다. 반군에 가담하지 않으면 죽든지 불구가 돼야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 아니, 어떤 이유로든 해서는 안 될 짓이다! - 손목을 잘라버린 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영화에 나온 대로 “투표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에라리온의 미래를 위해 손을 잡자”는 카바 대통령의 선거 구호를 비웃듯, 반군은 사람 손목을 담은 자루들을 대통령궁에 배달하기도 했다. 내전이 끝난 뒤 시에라리온을 취재한 그레그 캠벨은 반군에게 끌려갔던 한 어린이에게 물어보았다.

(기자) “왜 손을 자른 거지?” (어린이) “우린 명령이 있을 때만 손을 잘라요.” (기자) “그런 명령이 왜 내려지는 건데?” (어린이) “사람들한테 겁을 주려고요. 다이아몬드를 우리만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을 광산에서 몰아내려고요.”

▲ 반군은 왜 죄없는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을까? 반군에게 끌려갔던 한 어린이는 말했다. “사람들한테 겁을 주려고요. 광산에서 몰아내려고요.”
결국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겠다는 욕심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악마에 가까운 잔인성이다. 반군들이 다이아몬드에 도취한 나머지 혁명의 대의를 팽개친 건 분명해 보인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 세계 최강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한 말이다 - 악에 받친 흑백논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어 승기를 잡으려는 사악한 심리전의 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정부군과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혁명연합전선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총살하거나 손목을 잘랐다.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이었다.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또는 ‘분쟁 다이아몬드’(Conflict Diamonds)’라는 이름은 영국의 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의 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여론이 악화되고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2000년 남아공의 킴벌리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다이아몬드의 원산지와 수출상 이름을 표기하자는 킴벌리 프로세스는 2003년부터 실행됐고 7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전쟁 범죄와 관계없다고 인증된 다이아몬드만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끝났고, 혁명연합전선(RUF) 지도자 포데이 산코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사면됐고, 항의 시위자들에게 발포하여 20여명을 더 죽인 뒤 2003년 프리타운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반군을 뒤에서 지원한 라이베리아의 독재자 찰스 테일러도 전범으로 50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재판을 받았고, 영국의 감옥에 수감됐다. 두 나라는 공교롭게도 다이아몬드 메이저들의 본거지였다. ‘피의 다이아몬드’로 가장 큰 이득을 챙긴 보석상들은 멀쩡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들의 공로는 아무리 찬양해도 지나치치 않을 것이다. 이들의 보도는 ‘피의 다이아몬드’가 시에라리온이란 작은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전세계가 얽힌 거대한 지하경제의 문제임을 일깨워주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는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이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여 불매운동의 촉매제가 됐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반쪽의 성공에 그친 게 아닌가 싶다. 가장 악랄한 범죄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자적이다.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 그 과정을 감시하는 건 여전히 곤란한 일이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기자 매디 바우엔 역을 맡았던 제니퍼 코넬리는 영화 홍보 자리에 다이아 귀고리를 하고 나왔다. 귀고리의 출처를 묻자 제니퍼는 “불가리 제품이라서 ‘피의 다이아몬드’와 관계가 없다”고 대답했다. 영화에 출연한 뒤 ‘도덕적인 소비자’가 되기로 한 그의 결심은 아름답다. 그러나 제니퍼는 너무 순진했던 게 아닐까? 그의 귀고리가 ‘피의 다이아몬드’와 관계가 없다는 말이 맞는지 검증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빛나는 유혹을 인간이 좀체 뿌리치지 못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주술, 살인자들의 우아한 미소…. 내전은 끝났지만 인간의 탐욕은 끝나지 않았다. ‘피의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만의 비극이 아니다. 물신 숭배는 세계 각처에서 더욱 위세를 떨치고 있다. 얼마나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탐욕과 살육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 책 <다이아몬드 잔혹사> ⓒ작가정신
[참고한 책]
그레그 캠벨 <다이아몬드 잔혹사>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2004)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그레그 캠벨은 UN의 취재허가를 받아 2001년부터 수차례 시에라리온 현지를 취재, 이 책을 펴냈다. 탐사저널리즘의 기념비라 할 만한 기록으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토대가 됐다.

캠벨은 자기 스토리 뿐 아니라, 혁명연합전선과 오사마 빈 라덴의 커넥션을 추적한 워싱턴 포스트의 더글라스 파라(Douglas Farah) 기자의 취재담도 전한다. 파라 기자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혁명연합전선을 취재할 때 ‘아주 간단한 방법’을 썼다. “자기가 추측한 사실들을 얘기해 주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척 해서” 상대방의 입을 열게 만든 것. 그는 언론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취재원에게 겁을 주어 불가능한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이와 비견할 만한 우리나라의 탐사보도는 황우석 신화의 철벽을 무너뜨린 <PD수첩> 정도일 것이다. 한학수 PD가 쓴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2006)는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의 감동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언론 자유가 위축된 요즘, PD들이 그레그 캠벨과 한학수 PD의 책을 기억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MBC의 국제시사프로그램 <W>도 2005년 ‘시에라리온 소년병’(박정남 PD)과 ‘다이아몬드 잔혹사’(정회욱 PD)를 방송한 바 있다. 세계의 빈곤과 기아, 분쟁과 생태파괴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어 호평을 받은 이 프로그램은, 2010년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릴 무렵 MBC 경영진의 결정으로 폐지됐다. 한국이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주역으로 발돋움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시사프로그램 <W>가 사라져 버린 건 코미디에 가까운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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