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심의, 정부 비판 입막음에 악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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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연합회 등 3기 방심위 과제 토론회…“검열 기관으로 전락”

광우병, 4대강, 천안함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소송,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 등….

이 사건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이나 방송 뉴스 등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정부의 정책이나 입장을 비판적으로 다뤘다는 게 공통점이다. 8일로 임기가 끝나는 2기 방심위에 대해 “방송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러한 심의 결과 때문이다.

7일 오후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김서중)와 방송심의제도개선TFT(위원장 박건식)가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방심위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았다.

학계, 방송현업, 시민단체 등을 대표해 참석한 토론자들은 방심위의 심의 과정을 보면 ‘정치 심의’, ‘표적 심의’, ‘비대칭적 규제’로 방송 심의 본래의 기능이 퇴색됐다고 데 이견이 없었다. 특히 방심위가 ‘언론 검열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제작 자율성이 위축됐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오늘날 방송 심의의 기능적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김서중)와 방송심의제도개선TFT(위원장 박건식)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PD저널
2기 방심위원을 지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2년 대선 이후로 정치의 흐름을 타는 심의 제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공정성 심의의 9조 2항(양적 균형성)은 자신의 의지 관철을 위해 보도가 필요 없는 권력자의 입장에 방송시간을 할애하라는 것은 비판의 날카로움을 거세했다”고 말했다.

일례로 방심위는 지난 2012년 3월 8일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우석훈 씨와 선대인 씨가 출연해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가 피해 상황을 설명한 것을 두고 ‘주의’를 의결했다. 당시 반론권 차원으로 출연한 서용규 농수산부 장관이 정부 정책을 홍보한 점에 대해선 ‘문제없음’을 의결했다. 같은 사안에 같은 규정을 적용했지만, 징계 수위가 갈린 셈이다. 이에 CBS는 방심위의 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에 따른 법정 제재 조치는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기도 했다.

특히 방심위가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내용에 대해선 편향적인 심의를 벌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KBS 옴부즈맨 프로그램 <시청자데스크>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가 부실했다는 점을 골자로 자사 프로그램을 비평한 것을 두고 방심위는 공정성 위반을 근거로 행정지도를 의결했다. 법원이 1심 무죄 판결을 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다룬 KBS <추적 60분>에 대해서는 심의규정 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를 들어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방심위는 또 지난해 12월 JTBC <뉴스 9>이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와 관련한 소식에서 “정부 조처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인사들의 의견만 방송했다”며 객관성 위반을 들어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의결했다. 또 <뉴스큐브 6>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 씨의 인터뷰를 내보내 동일하게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방송심의제도개선TF 위원장인 박건식 MBC PD협회장은 “방송 심의는 방송의 공정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상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 민주주의 토대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에 있어선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로 전락해 언론을 검열하는 ‘검열기관’으로서 행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평했다.

KBS <추적 60분>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편을 연출한 남진현 KBS PD도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15쪽 분량의 서면 답변을 보내와 530초 분량을 인용 보도했기 때문에 공정성 문제는 없었고, 국정원조차 문제를 제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그러나 방심위는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다룬 다른 프로그램들이 많은데도 굳이 11조를 적용해 ‘경고’ 조치를 내린 근거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은 방심위의 과도한 심의로 제작 자율성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자기 검열이 강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0년에 방영된 <추적 60분> ‘천안함’편으로 공정성 심의 위반에 따른 ‘경고’ 처분을 받고 행정 소송을 제기한 강윤기 KBS 기획제작국 PD는 “방심위의 징계는 저널리스트의 후속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사내 통제 수단이 되고 있다”며 “언론 통제와 사내 통제의 기제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합리성을 잃은 정치․편파 심의에 대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강 PD는 프로그램이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제기하는 민원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광조 CBS PD도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 방심위 심의 과정으로 미뤄볼 때 당시 정부의 안전 점검에 대한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면, 심의위에서 분명히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며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후적 책임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강화된 방심위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심위의 방송 검열과 통제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에 연결된 사안에 대해선 심의를 하지 않도록 강제 조항을 신설하거나 악용되는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또 방심위에서 상식 밖의 징계가 나올 경우, 제작진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 판례를 축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언론미디어학)는 “정부 정책에 재갈을 물리는 아이템에 적용되는 9조와 11조 조항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며 “언론의 공정성을 평가할 땐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누구나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성을 보장할 때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의 경우 (제작진이) 무조건 입을 닫으라는 게 아니라 국민이 공정한 판결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을 때만 인정되는 조항이다. 국민 위에 있는 정부는 방송심의규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방심위의 징계에 대해 방송사는 처분을 직접 받는 대상으로서 위법을 다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며 “행정소송에서 처분을 직접 받은 대상이 위법을 다툴 수 있도록 돼있지만, PD 입장에서 회사가 부당한 징계를 다투지 않을 때, 개인이 원고가 돼서라도 시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언론노조, 한국PD연합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6개 단체들이 모여 방송심의제도개선TF팀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방송심의제도개선TF팀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불공정한 심의규정과 방심위의 선임방식과 운영 등을 논하기 위해 구성됐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방심위 1기와 2기의 모습을 봤을 때 선임자가 누구를 뽑아야 정파적 이익을 가장 대변할까를 기준으로 위원을 뽑은 것 같다”며 “선임 기준부터 운영방식 까지 선한 상식에 기대지 않은 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며 TF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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