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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왜성, 그 숨은 역사를 찾아)
방송( 4월9일 밤 11시5분)

|contsmark0|이 땅에 왜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 땅에 왜성(倭城)이 있다. 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쌓은 성으로 주로 동남해안 일대에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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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0여 개가 넘는 왜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만 28개가 넘는다.울산의 서생포 왜성은 그 넓이만 3만평이 넘는 한국최대의 왜성이다.중심부의 성축이 너무나 완연하게 남아있어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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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왜성에는 지금도 일본인들이 자주 찾아온다. 이 땅의 왜성은 과연 그들만의 문화재일까?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중에 사명대사와 왜장 가등청정간에 강화회의가 열린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울산 도심 속의 학성공원은 울산왜성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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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3대첩을 능가하는 대규모 혈전이 이곳에서 벌어졌다.14일간의 공방 끝에 피,아간 전사자수만 만사천명을 넘었다. 우리 조, 명연합군은 비록 성을 함락하진 못했지만 왜군의 퇴각을 재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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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시의 웅천 왜성은 전쟁 중에 스페인 신부 세스뻬데스가 찾아와 일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그는 조선민중들에게 직접 포교활동을 펴기 위해 왔으나 그 뜻을 이루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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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남긴 편지글이 지금도 로마의 예수회본부에 남아있다.전쟁의 참상과 전황, 그리고 우리 수군의 할약상 등을 자세히 묘사한 그의 편지는 임진왜란을 서양인의 눈으로 보고 남긴 유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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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에서는 임란7년 전쟁을 종식하는 마지막 대전투가 벌어졌다. 순천왜성이 함락위기를 맞자, 사천, 남해의 왜군들이 지원을 나서게 되고 이를 눈치 챈 이순신 장군이 노량바다에서 이들을 요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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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왜군을 대파했지만 이순신장군은 전사하고 만다.왜성의 역사는 이렇듯 치열했던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왜성을 대했을 때, 그것은 진정한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다.일본 큐슈의 구마모토시 중심가에는 울산마을을 뜻하는 ‘울산마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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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집단거주지였다. 그리고 거기 지금도 ‘서생(西生)’이란 성씨를 지닌 이들이 살고있다. 10여년 전, 조상의 뿌리를 찾아 울산의 서생포를 직접 방문한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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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성의 역사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다.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엇보다 이 땅에 왜성이 있음을 알리고 또 왜성의 역사가 치열했던 우리의 역사였음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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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울산 mbc tv 제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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