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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인문학 생중계]데카르트의 박제가 내게 말해 준 것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폴 발레리는 데카르트가 이 말을 할 때 책상을 쾅 내리쳤다고 해석했다. 믿음을 강요하는 중세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의 자존심을 외쳤다는 것이다. 데카르트(1596~1650)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권위를 의심했고, 전통 · 관습 · 상식 · 통념을 의심했고, 개인의 주관적 편견과 선입견을 의심했다. 인간의 다섯 감각은 물론, 2+3=5라는 수학적 진리마저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실한 기초 위에 다시 세우고자 했다. 모든 지식을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고,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쌓아 나가고, 모두 열거한 뒤 빠뜨린 건 없는지 검토했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점처럼 확고한 철학의 출발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뒤 남는 단 하나의 진리는 “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문장은 ‘철학의 제1원리’로 인정됐고,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되었다.

▲ 데카르트는 군인이자 여행가로 유럽을 떠돌며 살았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네덜란드에 오래 머물렀고, 스웨덴에서 크리스티나 여왕의 가정교사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당시 학계는 주로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프랑스말로 썼다.
데카르트의 사고는 개인의 이성이 존중되는 계몽의 시대를 열었고, 불합리한 구제도(Ancien Régime)를 급진적으로 타파하려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길잡이가 됐다. 23살 때인 1619년 도나우 강변의 울름에서 쓴 <방법서설>은 18년 뒤인 1637년 익명으로 출판됐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게 1633년이었으니, 몸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던 시대였다.

모든 학문을 수학처럼 확실한 기초 위에 세우겠다는 데카르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른바 ‘철학자’들은 그가 시범을 보인 ‘생각의 모험’을 이어갔다. 가령, 헤겔은 데카르트처럼 모든 지식을 의심한 뒤 ‘순수존재’에 도달했다. 존재는 존재이되 ‘냉텅’인 존재…. 헤겔의 추론에 따르면 이 ‘순수존재’는 내용이 없으므로 무(無)와 같고, ‘순수존재’와 무의 절대적 모순(=절대적 동일성)에서 사유의 운동이 시작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헤겔의 주장이 넌센스라고 했다. “모든 것을 회의했다”는 헤겔에 대해 키에르케고르는 “실제로 그가 모든 것을 회의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미완의 저서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De Omnibus Dubitandum Est)에서 그는 젊고 순박한 철학도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회의하게 만들어, 이 일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결국 절망임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르는 “회의(懷疑)는 생각의 절망(絶望)이고, 절망은 인격의 회의”라고 요약했다. 그는 회의보다 경이(驚異)에서 출발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소박한 자세가 더 아름답다고 보았다. 데카르트의 제1원리도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로 두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했다.

▲ 데카르트는 봉건적 도그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위대했다.
데카르트의 사상은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었지만, 낡은 시대의 틀에 갇혀 있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사악한 정령’(Malin Génie)이 우리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이 정령은 우리에게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환상, 3+2=5라는 환상”을 불어넣었는지도 몰랐다. 존재할 리 없는 정령을 퇴치하기 위해 그는 “신이 진리를 보증한다”는 해묵은 논법을 도입했다. “신은 무한하고,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이다. 신은 완전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 생각하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다.”

데카르트의 논증은 21세기의 우리가 볼 때 어처구니없는 오류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신이 있다고 전제한 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전형적인 순환논법에 빠졌다. 교회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쇼를 한 거라면 이해해 줄 만 하지만, “모든 것을 회의했다”는 말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게 분명하다. 그는 꿈 얘기를 하며 ‘방법론적 회의’를 계속한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꿈을 꾼다고 생각하는 꿈을 꾼 것인가?” 이러한 의심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장자(莊子)의 꿈은 비유일 뿐, 정상적인 사람은 꿈과 현실을 구별할 줄 안다.

그는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 컵에 젓가락을 넣으면 휘어진 것처럼 보이고, 수평선은 곡선이지만 직선으로 보이고, 지구가 태양을 돌지만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감각이 우리를 속인 게 아니라, 감각에 비친 그림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일 뿐이다. 감각을 의심하는 것은 넌센스다. 당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게 의심스러운가? 정강이를 걷어차면 무척 아플 텐데, 그래도 몸의 존재를 부인하겠는가?

데카르트는 올바른 사유를 위해 모든 감각을 끊으려 했고, 당연한 귀결로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원론에 빠졌다. 그의 이원론은 신(神)에서 비롯된 ‘영혼’과 기계에 불과한 ‘육체’로 인간을 두 동강 냈다. 사람의 몸은 기계에 불과하며, 이 기계는 심장의 불을 연료 삼아 움직인다. 연료에 해당하는 피가 온몸을 순환하는 데는 8분 정도 걸린다. 영혼과 육체는 이질적인 존재인데, 뇌 아래에 있는 송과선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영혼과 육체를 나눠버린 사람이 어떻게 형이상학과 해부학을 섞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매우 빈약한 논증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겐 정신이 있는 반면 다른 동물에겐 정신이 없다고 보았다. 이는 황당한 오류였다. 그는 다른 동물들이 거울에 비친 자기를 인식할 줄 모른다고 했지만, 침팬지와 돌고래는 그럴 능력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쾌락과 고통, 기쁨과 공포 등 최소한의 감정을 느낄 줄 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강아지가 아프거나 배고플 때 내는 낑낑 소리도 기계의 소음으로 간주했다. 이 강아지가 죽는다면 기계가 정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 이외의 동물을 모두 기계로 간주, 아무 거리낌 없이 잔인한 해부를 일삼았다. 만년에는 숱한 동물을 해부해서 영생의 비밀을 찾으려 했다니, ‘정신없는 동물’은 해부 당하는 쪽이 아니라 데카르트가 아니었나 싶을 지경이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삶과 괴리되어 있었다. ‘방법론적 회의’에 몰두할 동안에도 살아야 하니 잠정적으로 세상의 윤리를 인정하며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철학의 제1원리’를 발견한 뒤에도 그의 행동 패턴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삶은 철저히 인습에 파묻혀 있었다. 애초에 그의 철학은 실제 삶과 아무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에 대해 “으리으리한 사상의 대궐을 지어놓고 자신은 대궐 옆의 개집에서 산다”고 비꼬았는데, 이 말은 데카르트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했다”고 썼지만, 이 세상엔 여전히 회의할 게 수두룩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로 모든 걸 다시 회의해야 할 운명일까. 이른바 ‘합리주의’의 태두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자기 주장도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머리말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할 자유를 강조했다.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인교사로 일한 만년의 데카르트.
“이 시론은 본받을 만한 것도 있지만 본받지 않는 게 더 좋을, 다른 이야기도 들어 있는 하나의 우화다. 내가 걸어온 오솔길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내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철학의 제1원리’는 세상 사람들 수만큼 다양한 ‘존재의 제1원리’가 되었다. “나는 OO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란 말은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며, 실제로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나는 폭로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장 주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알베르 카뮈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장 보드리야르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제레미 리프킨

“나는 OO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상의 60억 명 인간은 모두 자기 존재 이유를 주장하는 게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식가라면 “나는 먹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독서광이라면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몽상가라면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등등…. 데카르트는 자기 이야기를 진솔한 우화로 표현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위대했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제1원리’ 위에 ‘학문의 나무’를 심고자 했는데, 그 기둥은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여러 학설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전통 학문의 체계보다 한 개인이 잘 디자인한 엄밀한 지식의 체계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꿈은 정당했지만, 형이상학은 ‘학문의 나무’를 지탱하기엔 너무 허약한 기둥이었다.

▲ 데카르트가 창안한 x축, y축의 그래프
한 철학자의 형이상학은 어차피 한 번의 모험으로 끝난다. 추상적 언어로 읊은 난해한 시(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지식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객관적인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서 이뤄지는 과학의 성과는 형이상학처럼 잘 무너지지 않는다. 갈릴레이와 함께 태동한 과학 혁명 앞에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철학이 과학의 토대라는 데카르트의 생각은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됐지만, 과학 혁명의 진전을 거스른 최초의 반혁명이기도 했다. 과학은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신학의 품에서 해방된 후 곧장 철학의 품마저 떠나버렸다. 과학이 보기에 철학은 아무 쓸데없이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철지난 사변에 불과했다.”
- 김은주 <생각하는 나의 발견 - 방법서설>, 아이세움, p.75

철학자 데카르트는 자.기.머.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름이 ‘존재’한다. 그의 철학은 오래전에 박제가 됐지만, 그가 개척한 수학의 새로운 방법론은 현대 우주론에서 여전히 유용하다고 한다. 데카르트가 고안한 x축과 y축의 좌표계는 쓸모 있는 업적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 책 <생각하는 나의 발견 - 방법서설> ⓒ아이세움
[참고한 책]
김은주 <생각하는 나의 발견 - 방법서설>, 아이세움, 2007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부터 한국 방송의 상층부를 장악한 영혼 없는 자들까지…. 불의와 독재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기계 부품들이 권력 주변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도그마가 지배하던 시절, 데카르트는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가지려면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학 시절, 데카르트는 오류투성이로 보였고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어려웠다. 철학사에서 한결같이 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부르는 게 거슬렸다. 철학사를 쓴 사람들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른바 ‘철학자’들 중에는 기존 철학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까? 데카르트를 읽고, 이해하고, 정리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감히 그를 비판할 깜냥이 되진 않지만, 머릿속에 박혀있는 ‘데카르트 바이러스’를 어떻게든 파악하고 배설해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30년 만에 다시 만난 데카르트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PD생활 내내 입버릇처럼 스스로 던진 “네 머리로 생각하라”는 말을 데카르트가 이미 400년 전에 강조했음을 발견했다. 모든 책은 자신의 거울일 뿐일까? 내가 발견한 것은 데카르트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었다.

<생각하는 나의 발견 - 방법서설>은 데카르트의 사유 실험을 차근차근 해설하면서 균형 있는 평가를 곁들인 훌륭한 해설서다. 이 책은 쓴 김은주 선생은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속 편하다는 자각으로 뒤늦게 철학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5년 동안 국어 교사로 근무한 경력에 걸맞게 글이 깔끔하고 단정해서 읽기 편하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잘 번역된 저서도 드물고 이렇다 할 입문서도 없어서 애를 먹었는데, 요즘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철학에 다가설 수 있으니 참 공부하기 좋은 세상이다. 바이러스처럼 심란했던 데카르트, 그 까다로운 세계로 나이 든 철학도를 이끌어 주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 글쓴이 이채훈 PD는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방송대상, 통일언론상을 수상했다.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인문학과 클래식으로 이 시대 PD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PD로서 공부하자! 시청자 눈높이에서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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