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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세월호 특별법, 7·30재보궐 선거로 뜨거운 2014년 여름. 한 때는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으나 이젠 예전만큼 주목 받지 못하는 MBC 해직언론인들을 만나러 서울 마포의 한 식당을 찾아갔다. 어쩌다 보니 연출을 맡게 된 해직언론인 다큐멘터리 촬영차였다. 자리엔 <뉴스타파> 앵커로 맹활약중인 최승호 PD를 비롯해 박성제 기자, 이용마 기자, 정영하 전 언론노조MBC본부장 그리고 현 MBC본부 집행부들이 참여했다.

중국집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해직언론인들. 식사를 하고 왔다고 말했는데도 음식을 따로 덜어 나와 조연출에게 건네는 모습이 평범한 아저씨들에 다름 아니었다. 오고가는 대화도 특별한 건 없었다. 어느덧 너무나 익숙해진 해직 언론인 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주고받는, 말 그대로 너무나 ‘소소한’ 자리였다.

물론 그 날 모인 이유는 있었다. 해직된 지 2년. 그리고 법원으로부터의 복직 명령. 이야기는 해직생활에 대한 각자의 소감에서 자연스럽게 다음주 MBC에 출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출근을 한다면 과연 어느 부서로 출근을 해야 할 것인지, 무엇보다 그렇게 출근을 했을 경우 MBC 사측에서 막을 것인지 말 것인지로 이어졌다.

▲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해고된 언론인들이 법원으로부터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 지난 7일 서울 성암로 MBC 신사옥으로 출근을 시도했지만 출입문 봉쇄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성제 전 기자, MBC노조 이용마 전 홍보국장,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이상호 전 기자. ⓒ전국언론노조
그러고 보니 복직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해직자들은 돌아갈 부서가 없었다. 언론인이라고 해봤자 결국 방송국의 직원이기에 ‘출근’을 한다는 건 자기가 속한 부서(의 자기 책상)를 찾아가는 행위다. 이 기본적인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해직자들은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야 할지, 아니면 경영진을 찾아가야 할지, 아니면 노조 사무실로 우선 가야할지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그래도 대화 속에 수줍은 설렘이 묻어났다. 젊음을 바쳤던 방송국에 찾아간다는 것, 100%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전혀 모르지도 않기에. 설렘을 감추려는 듯 언론인 특유의 논리적 따지기로 어디를 먼저 찾아가야할지 갑론을박을 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 ‘언론 중독자’들이 ‘MBC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이들의 이야기에 과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까’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줄까’ ‘지금 당장 통쾌한 목소리를 내어주는 언론이 고픈 사람들에게 해직 언론인이란 존재가 과연 절박한 것으로 와 닿을까’ ‘혹시 그렇지 않아도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이 시점에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식사 후 맥주를 하러 가는 자리엔 끼지 않았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있으니 편하게 대화를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런 자리일수록 더 악착같이 촬영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 다음 주부터 시작된 해직자들의 출근은 어느 부서를 찾을 지 고민할 필요 없이 정문에서부터 막혔다. 사측은 이들에게 임시출입증을 발급했고 노조 사무실 출입만 허락했다. 이들을 일산 모처에 격리 수용(?)할 방안을 사측에서 알아보고 있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들려온다고 한다.

그나마 이러한 내용은 언론관련 소식을 주로 다루는 매체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소송은 그처럼 주요 이슈에서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 이는 MBC만이 아니라 YTN도 마찬가지다. 일부 해직언론인들이 대안 언론에 몸담으며 그 명맥을 이어가곤 있지만 ‘해직’이란 그들의 정신이 인정받을 뿐, 현실에서 그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거란 기대를 하는 이는 거의 없어 보인다.

▲ 김진혁 한예종 영상원 교수.
그날 중국집에서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음식을 건네던 MBC 해직언론인들이 며칠 후 MBC 앞에서 피켓을 든 채로 서 있는 굳은 표정의 사진을 본다. 한숨을 깊게 내 쉬어 보며 중얼 거려 본다. 그래 누군가는 이걸 기록해야 하겠지, 기록이 다큐멘터리지….

* 글쓴이 김진혁 PD는 EBS에서 <지식채널e>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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