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에도 대통령만 바라본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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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MBC ‘뉴스데스크’ 세월호 100일째 날 첫 보도는 “내수 활성화”

세월호 참사 100일째였던 지난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연 튀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매일 오프닝을 세월호 소식으로 전했던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가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고, KBS와 SBS도 첫 소식을 포함한 열 개 안팎의 리포트를 통해 세월호 침몰 이후 100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치유되지 않은 아픔과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짚었지만, MBC는 대통령을 먼저 바라봤다.

내수 활성화에 41조원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 발표와 함께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며 규제 철폐를 강조한 내용을 첫 소식으로 전한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첫 리포트에 이어 <정부, 쌓아둔 기업 돈 풀게 한다 “임금·배당 높이면 세금 감면”>,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대출·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의 리포트도 연달아 배치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에 관한 세 개의 리포트에 이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망과 관련한 소식을 여섯 개의 리포트로 전했는데 유 전 회장이 은신했던 별장의 구조와 유류품을 둘러싼 의혹, 부실 수사에 따른 검·경 책임론과 이에 대한 여야의 비판 등이었다.

▲ 7월 24일 MBC <뉴스데스크> 첫 번째 리포트 ⓒMBC
열 번째 리포트에서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침몰 100일 관련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 100일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들은 해당 리포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1분 22초 분량의 리포트에선 여전히 남은 10인의 실종자와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눈물만 조명했을 뿐이다. 왜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는지, 왜 해경은 탈출하지 못한 승객들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왜 시신 수습은 더디기만 한지, 100일 동안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언론으로서의 질문은커녕,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생떼 같은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단식과 노숙을 하면서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관련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어진 22초 분량의 단신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행사> 리포트에서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피해 가족 200여명은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안산분향소에서 서울광장까지 1박 2일 도보행진을 했다”고 전한 한 문장이 전부였다. 뒤이어 배치한 리포트도 세월호 참사 이후 경기 침체 상황에 놓인 진도의 모습과 여객선 안전 개선 여부에 대한 점검에 대한 내용일 뿐,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 등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날에 MBC <뉴스데스크>가 보인 ‘남다른’ 보도 행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였던 이날 박 대통령은 일절 관련 언급을 하지 않고 경제 활성화 행보에만 집중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도록 10명의 실종자들이 여전히 차디찬 바닷속에 있고,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단식을 벌이고 도보 순례에 나섰지만,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날의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발생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던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에 명운을 걸겠다”고 강조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역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무려 다섯 차례나 공개 석상에서 유 전 회장 검거를 독촉하면서 분노를 표시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 7월 24일 MBC <뉴스데스크> 11번째 리포트. 22초 분량의 이 리포트에서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1박 2일 도보행진을 했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MBC
박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두고 나오는 정치적 해석이 있다. 25일자 <경향신문> 12면 기사를 보자. “박 대통령 등 여권 주류가 ‘경제활성화’ 아젠다를 전면에 부각시켜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 무능이 잊히는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야권에서 제기된다. 여권에서 ‘일상복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 사망 사실을 모른 채 다섯 차례나 유 전 회장 검거를 공개 독려한 대통령의 머쓱한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각자도생’에 급급하며 정치를 남의 일처럼 외면하다가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침몰한 세월호 속에서 목숨을 잃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괴로워했지만, 현재까지도 아무런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이 오래전 철학자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한 건 아닐까.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의, 즉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는 게 대통령까지 앞장서 말했던, 우리 사회의 합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00일째 날, 가족을 잃은 이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곡기를 끊고 광장에 섰고, 서울광장에서만 3만 명(경찰 추산 7000명)의 시민들이 유족들과 함께 4월 16일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정치의 핵심에 위치한 대통령은 참사 100일째 날 세월호를 잊은 듯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한 언론은 세월호를 망각한 듯 보였던 대통령의 모습을 그저 바라봤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정치를 잊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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