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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실패 ‘조선에서 왔소이다’

[나의 PD자서전 ②] 김민식 MBC PD 김민식 MBC PDl승인2014.08.05 04: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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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PD교육원 주최 ‘PD글쓰기 캠프’가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제천 ES리조트에서 진행됐습니다. 참석자들은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맛보며 PD 생활의 꿈과 추억을 글로 풀어 냈습니다. 개성있고 자유분방한 PD들답게 글의 내용도 재미있고 스타일도 다양했습니다. PD들의 땀과 눈물과 웃음이 배어있는 PD자서전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UFO, 내 인생 최고의 축복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은 궁극의 시트콤이 있었다. 이른바 시간 여행 시트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

내가 타임머신에 꽂힌 데에는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UFO를 봤다. 당시 우리 집 옥상에서 친구들과 놀던 나는, 환한 대낮에 하늘을 날아가는 세 개의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문득 멈춰 서서 한참 같은 자리에 떠 있다 갑자기 세 방향으로 흩어졌는데, 그 물체가 날아가는 속도나 모양 등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내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계인의 비행접시라고 보기엔 우주는 너무 넓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만 해도 그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8.6년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8.6년이 걸리는 거리, 약 81조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의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4년에서 4000년 사이란다.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직선거리가 이 정도라면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은 얼마나 광활하고 넓겠는가. 이 넓은 우주에서 누군가 지구를 찾아내어 그 먼 거리를 날아 찾아오기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그 UFO는 누가 보낸 것일까? 혹시 우리 자신이 보낸 게 아닐까? 이 지구에 사는 미래의 인류가 과거의 역사를 탐방하기 위해 보낸 탐사선이 UFO 아닐까? 우주여행을 하려면 빛의 속도,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야 겨우 태양계나 우리 은하를 벗어날까 말까 한다. 내가 만약 미래의 과학자로서 광속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든다면 저 텅 빈 광활한 우주를 헤매어 다른 생명체를 찾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우주선을 보낼 것 같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광속 이상으로 여행하면 시간을 거꾸로 가는 것도 가능하니까.

어려서 UFO를 목격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축복 중 하나다. UFO를 본 후, 인생이 아주 즐거워졌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몰입이 쉬웠다. 우주 전쟁이고, 시간 여행이고, 마법사고, 무엇이든 내게 다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UFO도 있는데, 세상에 뭐가 불가능하겠어? 그런 자세로 살다 보니 책 읽기가 즐거웠고, 온갖 상상과 공상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SF에 빠지게 됐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에 빠져 직접 번역까지 했다. 평생 500권의 책을 낸 아시모프, 경이로운 필력을 보면 그야말로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 아니었을까?

꿈★은 이루어진다(?)
- <논스톱>에서 타임머신으로 옮겨 타다

MBC에 입사하기 전, 외대 통역대학원을 다녔다. 국내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 실력으로 동시 통역사가 되려고 고군분투했다. 회화 테이프를 듣고 받아쓰고 대화를 달달 외우며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국제 콘퍼런스에 통역을 하러 갔는데, 연사가 갑자기 조크를 하면 그걸 어떻게 옮길까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제가요, 연사가 조크만 하면 실력이 달리거든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국 시트콤을 많이 보세요. <프렌즈>나 <사인펠드> 같은 시트콤을 자주 보면 생활 영어 표현도 늘고 미국식 유머 감각도 익힐 수 있을 거예요.”

교수님의 충고에 따라 시트콤을 열심히 봤는데, 봐도 그만 너무 많이 봤다. 시트콤에 중독되는 바람에, ‘이렇게 재미난 시트콤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그래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시트콤 피디로 전직했다. 1995년 여름, 한국형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나 가족 시트콤의 원조 <순풍 산부인과>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 ‘뉴논스톱’출연진 ⓒMBC  
▲ ‘뉴논스톱’출연진 ⓒMBC
<뉴 논스톱>에서 <논스톱 3>까지 2년 반 동안 청춘 시트콤을 만들며 30분짜리 에피소드 500편을 만들었다. 시트콤의 오랜 마니아로서 직접 <논스톱>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웠다. 문제는 그 즐거움이 끝이 나질 않는다는 거. 2000년 6월에 망해가는 시트콤 <논스톱>에 조연출로 합류하여 양동근 박경림의 투톱 코미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조인성 장나라 두 명의 슈퍼 루키를 투입해 단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봄에 평균 시청률 7,8%로 시작해서 겨울에 20%를 넘겼다.

<뉴 논스톱>을 만들던 시절, 연출로서 아쉬움이 많았다. 미국 청춘 시트콤 <프렌즈>의 광팬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더니 누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피디가 <프렌즈> 마니아라고 하는데 왜 정작 자신은 <프렌즈>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저질 시트콤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연출답게 나는 바로 답글을 달았다. “<프렌즈>는 시즌제 주간 시트콤이지요. <논스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일 시트콤이구요. <프렌즈>는 1년에 24편 만들고, 저는 1년에 200편 만듭니다. <프렌즈> PD더러 한국 와서 이 스케줄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정말이다. 난 당시 야외를 하루에 30개 씬을 찍었고, 스튜디오 녹화는 일주일에 단 하루였는데, 80개 씬을 새벽 2시까지 다 끝냈다. 시트콤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는 속성상 밤을 새우고 녹화를 하면 촬영장 분위기가 다운되어 대본의 재미를 살릴 수 없다. 난 지금 가끔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정말 미친 속도감으로 시트콤을 찍어댔다고 생각한다.

신인이던 출연자들이 떠서 드라마나 영화로 넘어가고, 나 역시 이제는 ‘스톱’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논스톱>이라는 제목 탓인지 도무지 프로그램이 끝날 기미가 없었다. 회사는 <논스톱>이라는 제목에 ‘뉴’를 빼고 ‘3’를 뒤에 붙여 계속 하라고 주문했다. 2년 반 동안 500편의 이야기를 만들자 아이디어 고갈이 심각했다.

회사 측에 양해를 얻어 <논스톱>에서 빠지고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옮겼다. 지금은 MBC <무한도전>의 독무대가 된 토요일 저녁 7시, 당시에는 KBS 2TV의 <스펀지>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들어갔다가 판판이 깨지고 물러나던 시절, 예능국에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버라이어티로 붙어질 바엔 아예 다른 카드를 내보자. 주간 시트콤을 이 시간에 방송해보자.

그 편성 계획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국장님께 달려갔다. “저를 써 주십시오. <논스톱> 때 매주 5편씩 연출하느라, 때로는 방송의 퀄리티에 대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12부작짜리 주간 시트콤을 연출할 기회를 주신다면 작품성이 뛰어난 프로그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논스톱>을 통해 시트콤 만드는 노하우를 얻었다고 자신했고, 이제 내 궁극의 시트콤을 만들 기회가 온 것이다. SF 시트콤을 바로 떠올렸다. MBC에 PD가 많지만 SF가 좋아 번역까지 해 본 이는 나밖에 없으니, SF를 소재로 시트콤을 만들어야겠다. 일일 시트콤을 연출한 내게 12부작 주간 시트콤은 매력적인 기회였다. 새로운 시간대와 새로운 포맷에 걸맞은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야기가 새로우면 된다.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타임머신, 추락하다

  ▲ 2004년 김민식 PD가 연출한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MBC  
▲ 2004년 김민식 PD가 연출한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MBC
조선 시대 양반과 상놈이 ‘타임 슬립’을 통해 21세기 서울에 떨어진다. 팽팽 놀고먹기만 했던 양반 선비는 할 줄 아는 게 쥐뿔도 없고, 양반 체면에 일을 하지도 않는다. 양반은 나날이 행색이 초라해져 거지꼴이 되어가고, 그 양반을 모시던 몸종은 현대에 와서 갑자기 귀하신 몸이 된다. 심심풀이 삼아 지푸라기로 짚신을 꼬면, 민속학자가 보고 “아니 400년 전 소실된 꽈배기 짚신 꼬기 기술의 전승자가 아직 있었다니, 인간문화재가 나타났다!” 난리를 친다. 나무를 하다 바위틈에서 조그만 애기 삼을 보았는데, 몇 년 더 키워 어머니 몸보신이나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숨겨놓았다. 타임 슬립으로 현대에 와서 그 자리에 가보니 400년 묵은 산삼이 되어 삼식이를 떼부자로 만든다. 이렇게 양반과 종놈은 현대에 와서 신분이 바뀌어 간다.

종놈 삼식이는 21세기 서울이 바로 천국이다. 신분의 차별도 없고, 능력에 따라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이런 사회. 이건 어려서 꿈꾸던 율도국이 아니던가. 양반 윤덕형에게 서울은 지옥이다.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무심히 역사책을 뒤지다 자신의 노름 친구인 봉림대군이 왕으로 즉위한 사실을 알게 된다. 형인 소현세자의 급사로 봉림대군이 왕이 된다니!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겠다. 21세기에 와서 읽은 역사책을 토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왕의 책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어야겠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방법이 있다면,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방법도 있으렷다? 여기서 안 박사가 등장한다. 안 박사는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실험을 진행하다 그만 잘못되어 자신이 과거로 가는 대신 과거의 두 사람을 현재로 불러오고 말았다. 윤도령을 위해 과거로 돌려보내려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주의 힘에는 평형을 이루려는 작용이 있어, 둘이 과거에서 왔다면, 돌아가는 것도 둘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종놈 삼식이는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양반 상놈 없이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을 두고 왜 조선시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그런 삼식이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아, 21세기 서울은 돈이 양반이고 사람은 죄다 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종놈이구나. 여기도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조선으로 돌아가려는데…… 과연 안 박사는 두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안 박사는 어쩌다 타임머신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위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돌아가신다. 의사의 꿈을 버리고,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어머니 살아생전 과거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중환자실에서 어느 의사에게 하신 말씀이 어린 마음에 사무치게 남았다.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안박사의 꿈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타임머신이 제대로 작동해, 20년 전 과거로 날아가는 안박사. 의사 가운 하나 걸쳐 입고 새로 온 인턴인양 어머니의 병실에 들어가는데 막 문을 열고나오는 어린 시절 자신과 스쳐지나간다.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에게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건넨다.

“방금 나간 아이가 아들인가 보죠?”
“네,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잘 커서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무심한 듯 이어지는 안 박사의 말.

“어머니, 제가요, 관상을 좀 보거든요. 제 눈에는 저 아이의 미래가 눈에 선하게 보여요. 아마 중학교에 가면 과학영재 대회에 나가 장관상을 받을 거예요. 고등학교에 가면 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고, 스무 살이 되면 웜 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이라는 걸 연구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재미난 친구들도 만나죠. 윤도령과 삼식이라고.”

안 박사는 관상을 핑계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줘서.”

이렇게 죽이는 엔딩 장면은 끝내 방송을 타지 못했다. 12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방송 4회 만에 조기종영 결정이 내려져서 7회에 방송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실패는 오로지 내 탓이다. 나의 욕심과 열의가 너무 지나친 탓이었다. 제작을 준비하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다들 PD가 직접 만든 기획에 대해 부담을 표했다. 작가란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로 대본을 써야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법인데, 연출이 만든 스토리 원안에 살을 붙이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경륜 있는 연출이라면, 내가 말한 기획안을 듣고 작가가 난색을 표했을 때 감을 잡았을 것이다. “아, 이 이야기가 아직은 대중들에게 매력이 없구나.” 그러나 나는 당시 한 번의 성공 경험밖에 없는 즉, 실패가 예상된 연출이었다. 기성 작가를 포기하고, 방송 기회만 준다면 무엇이든 써보겠다는 신인 작가를 찾아 일을 시작했다. 작가의 경험이 부족하면 어때, 여차하면 내가 쓰면 되지 뭐, 하고 들어갔는데 완전 판단미스였다. 일주일에 2일 촬영 준비하고, 4일 찍고, 하루 편집하면 시간 다 간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대본을 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출이 직접 대본을 쓰다 보니 뭔가 이야기에 허점이 있어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무모한 자신감과 오만은 필패로 가는 최단 코스다.

고백하자면, 난 내가 빠지면 <논스톱>도 끝날 줄 알았다. 아니더라. <논스톱 4>, <논스톱 5>, 끝도 없이 잘만 되더라.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논스톱>의 성공은 내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청춘 시트콤을 만드는 MBC 예능국의 시스템의 힘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30대 초반의 나는 아직 어려 그걸 몰랐다. 그 무지의 결과는 내 인생 최대 참담한 실패작, <조선에서 왔소이다>로 이어졌다.

내가 없어도 <논스톱>은 멈추기 않았고, 나 혼자 올라탄 타임머신은 추락해 버렸다. 연출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조선에서 왔소이다> 실패가 준 선물

정말 괴로웠다. 한동안 바깥출입을 못할 지경이었다. 나름 <뉴 논스톱>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도 받고 잘 나가는 PD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이리도 재능 없는 연출이었다니……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송창의 선배가 불렀다. 홍대 나와서 술 한 잔 하자고. 술자리에서 송 선배가 대뜸 이런다.

“민식아, 쪽팔려 죽겠지? 근데 난 말이다. 이번에 네가 쫄딱 망한 게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완전 운 좋은 거지. 축하할 일이야, 이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발딱 쳐들었다.

“아, 선배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후배는 지금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송 선배가 잔에 술을 채워주셨다.

“민식아, 네가 지금 몇 살이니?”
“서른일곱인데요.”
“캬아~ 망하기 참 좋은 나이다.”
“???”

“네가 말이야, 이번 작품도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넌 아주 기고만장해 지겠지? 막 신이 나서 달려. 그러다 나이 40 넘어 어느 날 한번 망하잖아? 당연히 망하겠지. 야구에서도 공 10개 중 3개만 쳐도 3할 타자라고 칭송받는데 말이야. PD 중에 시청률 한 번도 안 망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없잖아? 누구나 망해. 그런데 너무 나이 들어서 처음 망하잖아? 그럼 재기가 불가능해. 왜? 이미 스타일이 굳어버렸거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나이가 돼. 주위를 둘러봐라. 사업하다 30대에 망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하는데 50 다 되어 망한 사람들은 그냥 폐인으로 살다 간단다. 기왕에 망할 거라면 30대 후반, 아직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때 망해야지. 그런 점에서 넌 아주 운이 좋은 거라니까?”

단언컨대 나는 그 시절, 시트콤 대가의 애정 어린 충고가 절대 순순히 들리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 말씀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돌아보니, 시련을 겪고 있는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송창의 선배님께는 정말 감사드린다.

<조선에서 왔소이다> 조기종영이 내게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 있다. 바로 스노보드라는 취미다. 당시 난 10년 넘게 스키만 탔다. 스키를 타면 최상급 코스에 올라가 멋진 자세로 타고 내려오는데, 굳이 보드를 새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초보자 코스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비굴한 자세로 보드를 배우기는 싫었다. 이 나이에 초보자가 뭐야.

조기종영을 겪은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현재 내가 잘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새롭게 즐기려면 기초에서부터 배우는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지. 갑작스런 종영 후, 시간이 남아돌아 겨울 내내 스노보드를 배우며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 늙어서 살짝 위험한 레포츠를 배우면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딴 생각이 들지 않고 고민이 사라진다. 참 좋다. ^^요즘은 해마다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 스키와 보드를 번갈아 타며 겨울을 보내는데, 이게 다 <조선에서 왔소이다> 조기 종영 덕분이다.

훗날 나이 마흔에 드라마국으로 이직하게 된 것도 시트콤 조기종영 덕분이다. 드라마국 피디 사내 공모에 지원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드라마 갔다가 망하면 어떡할래?” 망한다고 죽는 건 아니더라. 조기종영도 당해봤는데 뭐가 무서워. 만약 연속 흥행을 이어가는 시트콤계의 스타 피디였다면 드라마로 옮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 하는 것 놔두고 굳이 새로 시작할 이유가 없으니. 하지만 망해보니 알겠더라, 어차피 망할 거라면 새로운 거라도 도전해보자. 서툴러서 망했다는 핑계라도 있을 테니.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망한 후 깨달았다. PD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도 직접 대본을 쓰지 않는 한 좋은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는 없다. 좋은 작가일수록 남이 만든 이야기를 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니 좋은 작가의 좋은 대본을 찾는 것이 좋은 연출의 첫 걸음이다.

드라마 연출로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산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그것만 들여다보며 산다. <조선에서 왔소이다> 이후에도 바뀌지 않은 건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기왕에 망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망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리고……… 망해도 죽지는 않으니까. ^^


 


김민식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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