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송 공공성’ 알맹이 빠진 방통위의 정책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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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이후 방송의 공공성이 황폐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당연히 방송통신 정책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최대 과제는 방송의 공공성 복원을 통해 방송의 존립 근거를 확립해주는 것이다. 방통위가 지난 8월 4일 발표한 비전과 주요정책과제는 3기 방통위가 그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 판단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방통위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에서 막말방송 등 공공성 미흡 사례가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KBS 길환영 사장이 물러나고 조대현 사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겪은 혼란에 대한 반성이 없다. 방송 공공성을 주장하다 해직되고 재판에서 승소한 방송인들을 거부하는 무늬만 ‘공영방송’ MBC에 대한 고민도 없다. 6년째 해직의 고통을 겪고 있는 YTN 해직언론인들의 문제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어디 방송 공공성이 무너진 것이 이것뿐이랴.

방송의 독립성 보장, 즉 집권 세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진단도 대안도 없다. 이사, 사장 선임이 법률적 문제라서 방통위의 영역이 아닐까? 방통위는 방송 관련 정부 입법의 주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 개정 제안 또는 독립성 보장 방안에 대한 연구와 정책 제안 등등을 방통위 이외의 어느 부처가 주도할 것인가?

▲ 과천 정부청사 방송통신위원회. ⓒ노컷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방송 관련 공약은 참 빈약했지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만은 약속했다. 이명박 시절 끊임없었던 ‘방송 장악’ 논란에 대해 다른 행보를 보이겠다는 일종의 제스처였다.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을 의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 진통을 겪으면서 새누리당이 동의해 여야가 운영했던 ‘방송공정성특위’는 바로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편성위원회 설치 문제에 부딪혀 1년여의 활동이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박근혜 정부의 방송 담당 부처인 방통위가 고민해야 하지 않나?

백번 양보해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고민은 법 개정 사항이라서 비전과 정책 과제에 포함할 수 없었다고 이해하도록 해보자. 그렇다면 방통위 3기가 방송의 공적 책임을 제고하기 위해 제안한 정책 과제는 뭘까? 공정성 관련 방송 심의 결과의 반영 배점을 높이고 공정성 평가 지표를 개발하여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심의에서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가 매우 ‘정치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이의 해결 없는 배점 강화는 공적 책임 강화가 아니라 권력 종속 강화를 야기할 것이다. 방통위는 이에 관련하여 방심위와 협의하여 제재 처분 절차를 개선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심의가 편파적인데 제재 처분 절차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이미 수사가 잘못되고 있는데 재판 절차만 손보겠다는 논리다.

공영방송의 황폐화와 더불어 우리 방송을 붕괴시키고 있는 요인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문제다. 최초 승인 심사의 문제, 각종 차별적 규제를 통한 특혜의 문제, 정치적 편파성의 문제, 막말의 편파성과 품위의 문제 등 그야말로 종편에 대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승인 심사 조건의 사후 점검, 재승인 심사 백서 공개, 의무편성과 방송발전기금 유예 특혜에 대한 검토 수준이 정책 과제라 한다. 직접 영업을 허용했고, 지금도 사실상 직접 영업에 가까운 방송광고판매제도,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와 같은 광고 제도가 현 방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오히려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정책으로 제시할 뿐이다.

방통위의 정책 과제는 공공성 ‘원상 복귀’에 관한 인식도 미흡하고 대안도 부족하다. 물론 방통위가 제안하고 고민하고 있는 많은 정책 과제들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골간이 썩은 건물의 겉 단장만 잘한다면 그 집이 온전하겠나. 방송의 본질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언론’으로서 기능이 최우선이다.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들을 허가 승인하는 이유다. 허가·승인 주무기관의 책임을 숙고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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