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기] 사건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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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노희경 작가가 미니시리즈 데뷔작으로 에이즈 환자 이야기를 쓰고자 했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그 기획은 이후 <아직은 사랑할 시간>이라는 단막극으로 완성되었다) 첫째로 작가의 관심은 소외된 소수를 향하고 있다는 것, 둘째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일반적인 트렌드를 따르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 같은 의지는 유행에 민감한데다 획일화의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한국 드라마계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는 데뷔작 KBS <거짓말> 이후 그러한 작가적 포지션을 끝끝내 지켜왔다. 그녀가 동성애(KBS <슬픈 유혹>), 존엄사(KBS <고독>) 등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한 작가와 드라마는 일찍이 만난 기억이 없다.

▲ SBS <괜찮아 사랑이야> ⓒSBS

허나 이러한 노선은 때로 드라마투르기보다 이슈에 대한 자의식이 더욱 도드라지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노희경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 더욱 심화되는 추세인데, 대사의 적지 않은 분량이 작가가 직접화법으로 자의식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SBS<괜찮아, 사랑이야>는 선언적인 제목 그대로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정상이라 매도되곤 하는 마음의 병에 대해 괜찮다며, 그게 뭐 어때서라며 항변하는 메시지들이 직설적으로 노출된다.

주요 인물들이 정신과 의사에, 작가에, 제각각의 정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니 직설적으로 관념을 토로하는 대사들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의 영화 <아들의 방>도 <괜찮아, 사랑이야>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마음의 병에 관한 최고 전문가라 할 정신과 의사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닥친 정신증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

극중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정신과 의사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지식대로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과거 자신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환자의 격렬한 반응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반복된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를 그저 대조적으로 제시할 뿐이지만, 관객들은 그 행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시청자들의 깨달음을 위해 필요한 여백마저 메시지로 채워진다. 예컨대 관계 기피증이 있는 정신과 의사 해수(공효진)에 대한 동민(성동일)의 타박처럼 말이다. “환자가 의지가 있어야 병을 고치지. 그래도 저도 의사라고 환자들한테 ‘의지를 가지세요.’ 어쩌고…” 주요 인물들의 입을 빌린 작가의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암이다. 다리가 잘린 환자다. 그런 환자들이나 장애인들은 동정이나 위로를 받는데 정신증 환자들은 사람들이 죄다 이상하게 봐. 꼭 못 볼 벌레 보듯이. 큰 스트레스 연타 세 방이면 너나 할 거 없이 다 걸릴 수 있는 게 정신증인데.”

‘사건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라’는 말은 드라마 작법의 황금언이다. 직접화법으로 메시지를 설파하는 것은 드라마투르기의 금기 중 하나라는 의미다. 어쩌면 작가는 아직 우리 사회에 좀 더 직설적인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대의에는 수긍한다고 해도 논설은 드라마의 몫이 아니다. 설혹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이런 방식이 아니면 주제의식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염려가 들더라도 말이다. 

* 글쓴이 조민준 씨는 <드라마틱>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방송작가로 일합니다. 웃자고 만든 드라마에 죽자고 덤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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