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제’ 상실한 방심위, 공정성 심의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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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방통심의위에 바란다’ 공개토론회, 거버넌스 논의는 제외?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가 2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통신 심의의 신뢰성 제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방송심의와 관련해선 ‘저품격 드라마 및 예능 프로그램의 심의 합리화 방안’과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 신뢰성 제고 방안’ 등 두 개의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방심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들을 수렴해 향후 정책 방향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한계를 미리부터 설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야 정치권에서 각각 6인과 3인을 추천하는 방심위 구성 등과 같은 거버넌스 문제에 대한 지적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사회를 맡은 이재진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부터 토론 시작 전에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 등의 심의 논란의 핵심에 위치한 거버넌스의 문제를 배제한다는 건 그 자체로 토론의 한계를 설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날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방송심의의 공정성과 일관성 등의 문제를 짚으며 거버넌스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애초 이 부분에 대해 한계를 설정한 토론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련의 지적들이 향후 3기 방심위가 정책 방향을 설정할 때 얼마만큼 반영될 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주최로 26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제3기 방통심의위원회에 바란다’ 공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방통심의위
“여권 추천 위원들 심의의견과 85% 일치하는 심의 결과, 어떻게 합의제로 볼 수 있나”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 신뢰성 제고 방안’ 섹션의 첫 토론자로 나선 박건식 한국PD연합회 수석 부회장(MBC PD)은 “현재의 방심위는 공정성 심의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방심위를 행정기구로 판단한 법원의 잇단 판결에도 방심위가 계속 공정성 심의를 담당할 수 있는, 이른바 면책사유의 핵심인 ‘합의제’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부회장은 합의제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방심위의 현실을 지난해 11월 한국방송학회 세미나에서 유승관 동명대 교수(방송영상학과)가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 수치로 표현했다. 유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기 방심위 당시 여권 추천 위원들의 심의의견은 심의 결과와 83% 일치한 반면, 야당 추천 위원들의 심의의견은 23% 일치하는 데 그쳤다.

반면 방심위의 전신인 구 방송위원회는 위원 구성 비율에 차이가 없었음에도 활동 마지막 해인 지난 2007년 처리한 안건 458개 중 3개(0.7%)를 제외하고 모두 전원 합의로 결론을 냈다. 박 부회장은 구 방송위와 방심위의 이 같은 차이를 비교하며 “합의제로 제대로 운영했다면 과연 1·2기 방심위 당시 여권추천 위원들의 심의의견과 심의결과가 평균 85%나 일치할 수 있겠나”라며 “이게 어떻게 합의제 기관인가”라고 지적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언론미디어학과)도 합의제 정신의 실종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미국의 규제기관인 FCC(연방통신위원회)도 3대 2 구조이지만 우리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는 방심위와 달리 무조건 거수로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1·2기 방심위의 문제로 자의적 심의를 꼽으며 “그때그때 달라요 심의”라고 명명했다. 이와 관련해 윤 교수는 TV조선 <뉴스쇼 판>에 정미홍 전 KBS아나운서가 출연해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인사들을 ‘종북’으로 규정한 데 대해 방심위가 ‘의견제시’라는 가장 낮은 수위의 행정제재를 내린 반면, JTBC <뉴스9>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보도에선 당사자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하는 등 일관성 없는 제재를 한 사례를 제시했다.

윤 교수는 “1·2기 방심위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중징계 하고 야당과 진보 인사에 대해 비판하면 별 문제없이 넘어갔다”며 “그간 방심위 운영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언제나 거수로 결정하는 다수의 횡포였고, 이처럼 전문성 없이 6대 3의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법원에서 심의를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권추천 위원들의 뜻에 따라 이뤄진 심의 결정들, 특히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이유로 방심위에서 행한 공정성 심의에 따른 중징계 결정에 대해 최근 법원은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방심위 심의의 신뢰성이 추락하는 상황으로, 이와 관련해 박건식 부회장은 “CBS <김미화의 여러분>,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 등에 대해 법원은 각각 해설·논평 프로그램이기에, 또 탐사보도이기에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이어 “앞으로 RTV <백년전쟁>과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CBS <김현정의 뉴스쇼> 박창신 신부 인터뷰, JTBC <뉴스9>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보도와 다이빙벨 보도, JTBC <뉴스큐브 6> 유우성씨 인터뷰 등도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조만간 소송에 돌입할 예정인데, 100% 방심위가 질 것”이라고 전망한 뒤 “공정성 심의에 대해 돌아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의결 정족수·재심 절차 등 개선, 6대 3 방심위 ‘한계’ 극복 대안 될까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합의제에 따라 방심위를 운영하기 위해 “과반수 출석,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돼있는 현재의 의결 규정을 재적위원 3분의 2 찬성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원심을 결정한 방심위가 재심을 그대로 맡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심을 위한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방심위 구성과 운영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의 개정보다 내부 규칙의 개정을 통해 거버넌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는 “방심위는 행정기구와 민간기구 중간쯤에 걸쳐 있는 기구로, 위상에 일관성이 없어서 신뢰가 떨어진다”며 “분야별 심의위원을 따로 두거나, 고정적으로 위원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배심원제처럼 사안별로 위원을 두는 방안 등으로 정무적·정파적인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재교 공정언론시민연대 대표는 합의제 기구로서 방심위가 제대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이 대표는 “합의가 만장일치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난상토론을 통해 상호 설득을 해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거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파적으로 구성된 여야 추천 위원 6대 3 구조의 한계 자체를 부정한 것이자, 방심위에서 진행한 그간의 공정성 심의 등의 결과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발언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대표는 이어 “방심위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오히려) 언론의 문제는 정파성에 따른 사실 왜곡과 기자들의 지나친 정의감에서 비롯한다”며 심의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에서 방심위 제재를 무효화하는 판결이 잇따르는 데 대해서도 “(심의 결정이) 사법 판결과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이) 승복을 안 한다”고 주장, 심의의 문제를 방송사업자들의 심의결정 불복의 문제로 돌렸다.

이 대표는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도 불공정하지만 참여정부 시절보다 더 불공정하진 않은데, 이는 참여정부 당시엔 노조와 사장이 다른 입장이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노조가 무서울 정도로 (사장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권이 바뀌어 노조와 사장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게 무서운 일인 만큼 (심의보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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