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의 어쿠스틱에 플러그를 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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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PD의 영화음악 오딧세이] 영화 ‘비긴 어게인’

올 여름 극장가는 이른바 빅(BIG) 4의 대결이 화제였다. <군도>, <명량>, <해적>, <해무> 등 4편을 일컫는 말인데, 여름 내내 대부분의 개봉관을 네 작품이 독식했다. 이런 틈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랑받은 영화가 있었다. 영화 <원스>로 음악 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존 카니 감독의 신작 <비긴 어게인>.

그의 전작인 <원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음악 영화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가수의 꿈을 키우던 한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방황하던 중 인생 막장에 다다른 퇴물 프로듀서를 만난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둘은 함께 음악을 해보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다시 찾는다.

스토리만 보면 음악영화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한참 동안 눈과 귀에 즐거움이 남는다. 참 좋은 영화를 봤구나 싶다.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를 반짝이게 만든 가장 큰 공은 사건을 절묘하게 배치한 구성의 힘, 그리고 스토리에 딱 맞게 만들어진 음악이다. 먼저 노래를 작곡해놓고 그에 맞춰 시나리오를 썼나 싶을 정도로 영상과 음악의 궁합이 딱딱 맞다.

 

▲ 영화 <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존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영화 <원스>의 음악은 어쿠스틱이다. 전기 없이 통기타와 피아노로 소박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스>의 담담한 톤과 억제되어 있는 감정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는 영화의 톤이 두 세 계단은 높아진다. 캐릭터도 많고, 사건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남녀 주인공 두 명의 자취방을 오가던 <원스>에 비하면 무대도 수십 배 확장되었다. 심지어 관객들로 꽉 찬 대규모 공연장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감독이 선택한 방법이 ‘전기’다. 첫 장면에서는 마치 이 영화가 <원스>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선언이라도 하듯 여주인공이 통기타 하나만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악기 구성이 점점 화려해진다. 일렉트릭 기타를 등장시키고 드럼에 베이스에 현악 반주까지 추가된다.

이런 악기 편성은 스토리가 아닌 음악만 놓고 볼 때 이 영화에서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옥상 위 공연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결국 화끈한 록음악까지 등장한다. 음악이 어찌나 빵빵한지 건너편 아파트 주민 한 명이 창문을 열고 조용히 좀 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 <원스>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평은 두 갈래로 갈리는 듯하다. 헐리우드의 장르 영화처럼 변질되어 버렸다며 아쉬워하는 평도 있고, 반대로 대중적으로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며 반가워하는 평도 있다. 양쪽의 의견 모두 타당하다. 어느 쪽이든 음악이 영화에 딱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비긴 어게인>에 <원스>같은 어쿠스틱 음악이 내내 깔렸다면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 같았을 거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아직 존 카니 감독의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참 부럽다. 나는 이미 사탕을 다 먹어버린 아이니까. 부디 은은한 맛의 첫 번째 사탕부터 까먹고 달달한 두 번째 사랑을 드시기를.

이재익 SBS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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