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흠집내기’ 보도 사악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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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실종된 아이는 5살이라고 했다. 복스럽게 생긴 사내아이는 사진에서 웃고 있었다. 이미 백일이 지났지만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젊은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부산의 한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아이의 집에는 온기가 없었다. 아이의 방에 그대로 남겨진 빨강 파랑 색종이와 작은 책상이 어머니의 눈물샘이 되고 있었다. 길거리를 헤매다 돌아온 어머니는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다시 아이 방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실종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 촬영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다시 전단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방송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송을 내보낸 후 1년여 만에 우연히 젊은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30대 초반의 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한 환자로 변해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부는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은 보이지 않았고, 넋이 나간 듯 어머니는 여전히 거리를 헤매며 전국을 다녔다. 자식 잃은 부모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해 온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시립동부병원 입원실에서 단식 중단을 선언하고 침대에 누워있다. ⓒ노컷뉴스
자식과 생이별한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가슴에 묻은 아이’의 사진을 안고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어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조차 숙연하게 만든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죽였을 때 부모의 자괴감과 상실감,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정부의 잘못이든, 선장의 잘못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이를 잃은 가정은 이미 가정이 아니다. 사라진 아이와 함께 웃음과 미래, 희망이 함께 사라졌다. 살아있는 부모의 여생은 이제 눈물과 한탄, 생지옥의 시작이다. 말처럼 쉽게 잊히지도 않으며 다시 시작 되지도 않는다.

아이를 잃어 허탈과 울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부 언론에 대해 성토하는 희한한 자리가 있었다. 최근 수백명 아이들의 죽음 속에 담긴 진실을 알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간절한 외침이 일부 언론들에 의해 ‘떼쓰기’ 내지는 정치적 행위로 매도됐다. 또한 40일 넘게 ‘단식’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세월호 유가족을 둘러싼 루머는 사실 확인 없이 신문과 TV를 통해 보도됐다.

언론·시민단체는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죽음을 각오한 아빠의 마음을 폄훼하고 세월호 민심을 왜곡하는 언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연 것은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40일 넘게 단식을 벌여온 고 김유민 양 아버지 김영오 씨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등 악의적인 보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고 이창현 단원고 학생 아버지 이남석 씨가 지난 9월 29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는 언론에 대해“제대로 된 언론이 되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PD저널
<조선일보>는 지난 8월 25일자 신문에서 ‘유민 외가 “저 사람 지금 이러는 거 이해 안돼”’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싫어 김 씨의 단식과 특별법 제정 요구에 흠집내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같은 날 <동아일보>는 ‘유민 아빠 '아빠의 자격' 논란’이라는 기사에서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사실무근의 루머를 보도하면서 김 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단식 농성을 폄하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죽음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은 산 자의 예의다. 더구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 따위 보도로 진정성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을 때는 보도 하지 않는 것이 저널리즘의 원칙이다.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다. 미디어가 여기에 앞장 서지 못하고 거꾸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확산시킬 때 사이비보다 더 사악한 정치집단이 된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남의 이야기라고 함부로 보도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다. 언론이 앞장서서 생명의 존중을 부르짖어야 한다.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했을 때 유가족은 불가피하게 최후수단인 법적 대응을 고려해봐야 한다.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돼야 한다는 것은 헌법 정신이다. 언론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도할 때 얼마나 공익성과 공공성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반론권 보장 등 취재성실의 의무를 다했는가 등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밟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적극적 대응만이 내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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