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문창극 보도, 중징계는 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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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만창일치 ‘권고’…공직자 검증에 공정성 시비 남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가 4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등의 발언이 담긴 교회 강연 영상을 보도한 KBS <뉴스9>(6월 11·13일 방송)에 대해 4시간 30분의 격론 끝에 전원 합의로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다.

앞서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가 5인 위원 중 여권 추천 위원 3인의 뜻에 따라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벌점 5점) 의견으로 해당 안건을 전체회의로 올린 터라, 이날 전체회의를 앞두고 방송계 안팎에선 중징계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로 이날 회의 과정에서 9인 위원 중 여권 추천 위원 6인은 ‘관계자 징계’(박효종 위원장·김성묵 부위원장·고대석·함귀용 위원)와 ‘주의’(벌점 1점, 윤석민·하남신 위원) 등 법정제재의 중징계 의견을 우선 제시했다. 반면 야권 추천 위원 3인은 ‘문제없음’ 의견이었다.

4시간 가까이 회의를 진행하고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박효종 위원장은 “합리적 불일치도 합의제 정신의 일종”이라며 중징계 의견인 여권 추천 위원들끼리 제재 수위를 조정해 합의를 볼 것을 종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야권 추천의 장낙인 상임위원이 반발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에 합의를 위해 여야 추천 위원 모두가 양보를 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30분 간 회의를 정회한 후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로 의견을 모았고, 퇴장했던 장낙인 상임위원 또한 뜻을 같이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의결 직후 방심위원들은 합의제 위원회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윤석민 위원) 등의 자평을 전하고 서로에게 공을 돌리며 박수로 회의를 끝맺었다. 방심위원들의 자평처럼 양측의 의견이 극단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수적 우위에 따른 표결이 아닌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건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고위공직 후보자의 역사관 등에 대한 검증 보도를 놓고 1시간 10분 분량의 발언 중 일부를 발췌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짜깁기 보도’ 등의 문제제기를 하며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1·2항과 제14조(객관성) 위반을 지적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또 각각의 위원이 중징계 혹은 문제없음을 주장했던 사유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외형적 합의를 위해 제재수위만 조정한 것이 진정한 합의인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제재 수위에 대한 외형적 합의가 아닌, 토론과 설득을 통한 합의의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날 심의 과정에선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제작진에게 “회사 입장에서 행정지도는 수용할 수 있나” 등의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 6월 11일 KBS <뉴스9> ⓒKBS
박효종, 합의제 강조하며 징계수위는 미리 결정…표결 강행하려다 野 위원들 반발 직면

이날 회의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은 <뉴스9>가 문 전 후보자의 교회강연 발언을 놓고 역사관을 검증하려 든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함귀용 위원은 지난 8월 27일 방송소위에 이어 이날 추가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제작진을 향해 “교회에서 이뤄진 신앙인의 간증 성격의 발언을 두고 사상을 검증하는 게 당연한 일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남신 위원도 “문 전 후보자가 교회라는 공간에서 신도들을 대상으로 신앙인의 입장에서 한 발언을 공직 후보자로서의 역사관 등을 검증하는 소재로 채택한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문 전 후보자가 대학 강연이나 일반 대중 집회에서, 혹은 언론인으로서 쓴 글에서 (교회강연 영상에서 보인) 역사관 등을 드러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6월 13일 SBS <8뉴스>는 문 전 후보자는 서울대 강의 당시 ‘친일파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건 잘못’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의 일련의 문제제기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용태영 KBS 보도국 주간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문 전 후보자의 역사관에 대해 부적절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고위공직자의 언행은 (장소가) 어디든 검증의 대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지냈을 당시 시절 ‘서울시 하나님 봉헌’ 발언 역시 서울시장이었기에 모든 언론으로부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 등의 반박을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KBS <뉴스9>에서 교회강연 내용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발췌해 보도한 것도 문제 삼았다. 함귀용 위원은 “KBS 보도 이후 교회강연 영상 전체를 보여 달라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KBS는 하지 않았다. 짜깁기가 아닌 정정당당한 보도라면 왜 그랬나”라고 따졌다. 용태영 주간은 “(교회강연 영상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나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문 전 후보자 역사관의 핵심으로 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발언을 선택해 방송한 만큼 왜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 당시 ‘친일 사관’ 논란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박효종 위원장은 “교회 강연 당시 청중들은 문 전 후보자가 친일이라고 항의하지 않았지만 KBS 보도를 본 다수의 시청자들은 문 전 후보자가 한국의 역사와 민족을 폄훼하고 친일사관을 갖고 있어 총리로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며 “이는 KBS가 편집권을 크게 오·남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KBS가 시청자들에게 문 후보자의 강연의 전체적인 맥락을 균형 있게 전달했다면 지금처럼 친일파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KBS 보도 때문에) 문 전 후보자는 조부가 독립운동가임에도, 또 존경받는 언론인이었음에도 (친일파로) 낙인찍혔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청와대에서 고위공직자로 내정했다면 이미 해당 인사의 역사관 등은 검증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면 이미 (문 전 후보자는) 삶의 궤적이나 역사관 등을 어느 정도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일련의 발언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사실상 무결하며 인사청문회 제도 역시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박 위원장은 KBS <뉴스9> 보도에 대해 일련의 문제를 제기하며 ‘관계자 징계’의 중징계 의견을 밝히면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읽어 항의를 받기도 했다. 토론을 통한 합의를 강조하면서도 위원장 본인은 사전에 징계 의견과 수위를 결정하고 오는 모순을 보인 탓이다.

야권 추천의 윤훈열 위원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회의에서 그대로 낭독하는 게 토론을 통한 결정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이런 식으로 정치 논리, 진영 논리에 따라 방심위가 운영될 경우 저야말로 (방송계 안팎에서 제기하는) 방심위 무용론과 해체론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야 6대 3 ‘자판기 심의’ 피했지만 공직 후보자 검증에 공정성·객관성 지적 타당성 논란 여전

장낙인 상임위원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교회강연 영상을 KBS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도하거나 직접적으로 ‘친일 사관’ 등의 비판을 전한 타 방송의 보도들에 대해 방심위가 문제없음 혹은 행정지도성 조치를 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중 잣대’ 심의를 지적했다.

장 위원은 “앞서 (문 전 후보자의 역사관 논란 등과 관련해) 19개의 심의 결과를 도출했는데 ‘문제없음’이 7개, 행정지도성 조치인 ‘의견제시’와 ‘권고’ 조치가 각각 3개와 9개였다”며 “KBS 보도가 가장 앞섰다는 이유로 관계자 징계 등의 중징계 의견이 나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 형평성 논란을 제기했다.

장 상임위원은 또 “KBS 보도 이후 유사한 보도를 했던 다른 매체들은 해당 보도보다 교회강연 영상을 살펴볼 기회가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 내용에 있어 차이는 크지 않았다”며 “유독 KBS에만 중징계를 내릴 경우 2기 방심위가 ‘이중잣대’ 심의 논란으로 해체론에 직면했던 것과 같은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상임위원은 KBS <뉴스9>의 해당 보도가 한국기자협회와 한국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클럽 등에서 기자상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기자상을 휩쓴 KBS 보도에 대해 만약 법정제재를 한다면 우리(방심위) 혹은 해당 보도에 상을 준 협회나 기관 중 한쪽이 희화화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더 이상 심의에 참여할 의미가 없다”며 퇴장했다.

장 상임위원의 퇴장에도 박효종 위원장은 “아무리 신중한 심의라 하더라도 시간의 제약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며 “합리적 불일치도 합의제 정신의 일종”이라고 주장한 뒤, 중징계 의견인 여권 추천 위원 6인끼리 제재 수위를 조정해 다수결로 결론을 내자고 종용했다.

하지만 남은 야권 추천 위원 2인이 “이런 식이라면 참여가 불가하다”며 퇴장을 압박하고 방심위 해체론까지 언급하자 여권 추천의 함귀용 위원은 “KBS 기자들은 회사 입장에서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 정도라면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각각의 양보를 통한 합의를 제안했다. 이에 야권 추천 위원들이 “양심상 KBS 보도엔 문제가 없지만 행정지도로 결론이 난다면 합의할 용의가 있다”(윤훈열 위원), “합의제 정신의 공동체라는 입장에서 양보할 용의가 있다”(박신서 위원)고 밝히면서 나머지 여권 추천 위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30분 가까이 회의를 정회한 뒤 이 시간 동안 의견을 조율, 위원 만장일치에 따른 ‘권고’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던 방송소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권 추천의 김성묵 부위원장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판단도 중요하지만 합의제 정신이 우선되는 것도 방심위를 위한 다는 점에서, 또 (갈등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전체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들도 “한국 사회가 갈등과 분열의 상황 속 조정의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결정으로) 방심위의 앞날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함귀용 위원), “(타협에 대한) 아쉬움 보단 합의의 전통을 만드는 기쁨이 훨씬 크다”(윤석민 위원) 등의 자평을 하며 박수로 회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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