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역사학자의 ‘대명사’ 교학사 교과서 지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 이사장, 이인호는 누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일 공영방송 KBS의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 이사로 임명된 데 이어 5일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 이 교수의 편향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KBS 안팎에서 후보 추천 철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 교수의 역사관이 KBS 방송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다.

원로 여성 역사학자이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핀란드와 러시아 주재 대사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이인호 교수가 KBS 이사로 추천, 이사장이 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된 부분은 이 이사장의 역사인식이다.

이 이사장은 이명박 전 정부 시절인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만든 친일·독재 미화 논란의 ‘대안교과서’의 감수를 맡은 바 있다. 교과서포럼은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성향 역사학자들의 모임으로, 대안교과서를 통해 5·16 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 지난해 9월 11일 이인호 KBS 이사장은 당시 자신이 소속된 보수성향의 학자 23명으로 구성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진보 사학자들이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언론매체를 동원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만 근거 없는 왜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이사장은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맡고 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해 친일·독재 미화와 무더기 오류가 드러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한 단체다. 이들은 일부 교과서가 미군의 양민학살만을 부각시키면서 건국은 무시하고 분단만 부정적으로 서술했다며 ‘좌편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사장의 이 같은 태도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11일 이 교수는 자신이 소속된 보수성향의 학자 23명으로 구성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진보 사학자들이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언론매체를 동원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만 근거 없는 왜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언론을 달구고 있는 이 이사장 조부의 친일행적 역시 논쟁거리다.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 씨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파 중 한 명으로 조선의 젊은이에게 일왕을 위해 싸우다 죽으라고 했으며, 군수 자재 헌납운동 등 친일행위를 전개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 교수가 ‘친일’ 비판에 있어서도 편향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08년 5월 12일자 <동아일보> ‘이인호 칼럼’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과연 그분들이 그처럼 갈망하던 독립을 되찾아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많은 사람을 다시 ‘친일파’로 못 박으며 나라를 갈라놓는 듯한 일을 좋게 보실까”라며 “망국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집안의 일시적 몰락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우리 외조부를 떠올려 보면 그분은 결코 이 일을 칭찬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이 이사장은 민족비하 발언 논란으로 낙마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의 발언에 대해 “감동 받았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지난 6월 19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의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 발언에 대해 “난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문 후보자의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며 문 전 후보를 적극 옹호하는가 하면 “강연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문 후보자를 반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문창극 전 후보는 해당 발언이 문제가 돼 사퇴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1일 논평을 내고 “이인호 씨는 민주정부와 독재정권을 드나들며 양지만을 두루 밟은 인물로, 최근에는 몸소 친일·독재 미화의 선봉에 서 역사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KBS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도 이 같은 이 이사장의 역사관이 뉴스와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KBS가 자칫 ‘이념 논쟁’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해서다.

▲ 2008년 5월 12일자 <동아일보> ‘이인호 칼럼’.
KBS의 한 PD는 “이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문제는 이 교수의 극우적 성향의 역사관은 방송에서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PD도 “이병순 전 사장 이후 광복절, 3·1절 특집마저도 꺼려하는 분위기가 내부에 있다. 게다가 내년은 현대사의 전환기적 시점이기도 한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수교 50주년인데 관련 프로그램을 제대로 제작해 방송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더군다나 국정교과서 개정 움직임까지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 교수가 보도 등에 정부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알게 모르게 압력을 가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KBS PD협회·경영협회·기자협회·방송기술인협회 등 4대 직능협회는 지난 1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 교수가 KBS에서 보도한 문창극 특종을 쏘아붙이더니 기어이 이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발을 들이려 하고 있다”며 “KBS에 대한 그의 생각, 흩뿌렸던 말과 글만 보더라도 왜 그의 임명에 반대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의 이사 내정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1일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내정 철회를 촉구하며 “이 교수는 친일한 사람 상당수가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애국자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친일파의 후예가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이 된다면 KBS는 현재보다 더한 거짓뉴스와 극우 이념에 편향되어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방송을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