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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괜찮아 사랑이야’, 그리고 해피엔딩이 던지는 메시지

#. 지난 11일 방영된 SBS <괜찮아, 사랑이야> 최종회의 한 씬. 정신증 치료를 받고 있는 장재열(조인성)이 라디오 게스트로 다시 나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냐’고, ‘무슨 일은 없냐’고 안부를 물으면서도 정작 그동안 자신에게는 한 번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고. 그리고 장재열은 말한다. 타인을 위한 ‘굿나잇’이 아닌 그림자 속에 숨은 자신을 향해 “굿나잇, 장재열.”

#. 최종회의 또 다른 씬. 해피엔딩을 맞이한 장재열과 지해수(공효진). 그리고 쉐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들은 하얀 셔츠를 입고 심리 치료의 일환인 토마토 던지기를 한다. 겉은 화려하고 걱정없어 보여도 어딘가 온전치 못한 그들은 서로에게 토마토를 마구 던지면서 그 순간만큼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러다 그들은 카메라를 흘긋 바라보고선 또 다시 사정없이 토마토를 던진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뒤꽁무니를 내빼지 말라는 듯이.

▲ SBS <괜찮아, 사랑이야> ⓒSBS

<괜찮아, 사랑이야>가 막을 내렸다. 노희경 작가는 국내 드라마에선 보기 드물게 정신질환을 전면적으로 앞세워 마음의 병을 짊어진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그려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장재열은 스키조(정신분열) 환자, 지해수는 성적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박수광(이광수)은 틱 장애의 일종인 투렛증후군을 앓았다. 노 작가가 언론 인터뷰에서 새 드라마를 집필할 때마다 ‘쓰다’라고 하기보다 ‘공부하다’라는 표현을 쓰듯이 이번 <괜찮아, 사랑이야>는 노 작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을 법하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노 작가의 정신증에 대한 접근은 기존과 달랐다. 그간 드라마 속에서 ‘정신증’은 갈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차용돼왔다. 그러나 노 작가는 등장인물이 지닌 정신질환을 도구화하거나 극단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오히려 등장인물의 경험적 맥락을 촘촘히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 인물들이 정신질환을 앓을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을 확보하면서 정신증에 대한 편견을 완화시킨 것이다. 예컨대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날리던 재열은 자신의 어머니(차화연)의 범행 목격에 따른 상처와 죄책감으로 또 다른 자아인 강우(도경수)를 만들어냈고, 엄마의 불륜에 원망을 쌓아온 해수는 불안증을 얻게 됐다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에 설득력을 높였다.

특히 노 작가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의 병에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무겁지 않게 스토리에 녹여냈다.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 열풍까지 불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현재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 치료를 받는 것조차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안부를 묻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노 작가의 시도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지녔을 법한 정신질환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데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노 작가는 또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에만 기대지 않고, ‘사랑의 연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예컨대 속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해맑은 여주인공이 냉철한 남주인공과 만나 그의 상처를 치유해 완전한 사랑을 이뤄냈다는 로맨스 판타지를 반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 작가는 상처받은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보편적 사랑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평소 티격태격하다가도 속을 터놓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를 주요 공간으로 삼은 것도, 질긴 인연의 가족과 ‘거리두기’와 ‘다가가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 점도 노 작가가 연인의 사랑에 국한하지 않고 사랑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데 방점을 찍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SBS <괜찮아, 사랑이야> ⓒSBS

이러한 흐름은 노 작가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 작가는 <굿바이 솔로>(2006)에선 민호(천정명)-수희(윤소이)-지안(김남길)의 삼각관계를 그리면서도 미영 할머니, 영숙, 호철 등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삶에 깃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주요하게 다뤘다. <그들이 사는 세상>(2008)에서도 준영(송혜교)과 지오(현빈)의 감정선을 기반으로 하되 쉼 없이 돌아가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몸을 부대끼고 사는 동료와의 우정과 갈등에 주목하는 등 노 작가 특유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괜찮아, 사랑이야>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노 작가는 결국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판타지로 점철된 드라마 속 인물이든,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모두 한 개인이지만 가족, 동료, 친구 등 옆 사람과 버팀목이 돼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해피엔딩은 ‘정신질환’이 있던 재열과 해수가 ‘왕자와 공주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류의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닌 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를 묻는 프롤로그인 셈이다. 최종회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재열과 해수는 스스로 상처를 보듬기 시작했고, 카메라를 향해 토마토를 던졌다. 재열과 해수, 그리고 노 작가가 시청자에게 던진 무언의 메시지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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