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기사에서만 보호하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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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미디어] 경향의 동성애 차별금지 반대 광고, 어떻게 봐야 하나

25일자 <경향신문> 15면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전면 광고가 실렸다. “박원순 시장님, 서울시민 대다수는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포함되는 것을 절대 반대합니다.”

내용인즉슨, 서울인권헌장 제정을 위해 위촉된 시민위원회의 전문위원 30인이 서울인권헌장 제정 방향을 위한 회의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 △성소수자,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엄격히 다뤄지는 서울시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안전 보장 등의 내용을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부분에 포함시키려 하는데 이는 “동성애 합법화” 내용이며, 이런 내용들을 논의한 전문위원의 대다수가 “동성애 적극 지지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광고는 이를 반대하기 위한 기자회견과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사실과 함께 기자회견 등의 일시와 장소를 알리는 동시에 성적 지향 등에 따른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이유들을 적고 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경우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대다수 국민의 표현과 양심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제한될 우려가 있으며, 동성애를 옹호·조장·확산시킬 수 있다는 내용들이다.

▲ 9월 25일 <경향신문> 15면
<경향신문>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와 동성애 혐오의 ‘의견’을 담은 광고를 게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18일자 신문 15면에 기독교단체인 한국교회언론회의 전면광고를 게재했는데, 해당 광고에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동성애자는 치료를 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광고는 <경향신문>뿐 아니라 <한겨레>(2013년 6월 7일자 신문)에도 실렸다.

두 신문에 실린 광고는 많은 논란을 불렀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성소수자 차별을 합리화하려는 시도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마저 일어나고 있다며 “당혹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고, 진보신당(현 노동당) 성정치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해당 광고를 게재한 데 대해 두 신문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비판의 배경엔 ‘실망’이 있다. 당시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성명에는 “그동안 꾸준히 성소수자에 대해 올바른 목소리를 위해 노력해온 그들(<경향신문>과 <한겨레>)이 이제 와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고작 광고료로 거래하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는 내용이 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무지개행동’도 “배신감”이라는 표현까지 꺼내들며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동성애 혐오 내용을 담은 광고를 게재한 데 대한 실망을 표시했다.

기사와 광고의 불일치를 둘러싼 논란과 이에 따른 고민은 사실 언론, 특히 진보성향 언론들에 있어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신문시장의 쇠퇴에 따른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인식, 혹은 자신감도 크다. 기사 논조와 어긋나는 광고를 안 실을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현실을 감안해 광고를 실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기사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광고와 관련해 기자와 통화한 <경향신문> 광고국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상업 언론의 주 수입원은 광고이고, 우리는 그저 광고주의 의사를 존중해 광고를 게재할 뿐”이며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너무 자극적이거나 상식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 그리고 법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선 (광고주에게) 부탁을 한다”면서도 “광고에 대해선 편집국에서 뭐라 할 수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인 만큼 우리(광고)를 중심에 놓고 (신문을) 보지 말라”고 말했다.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원칙만으로 충분할까

기사 논조와 광고의 불일치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5월 11일 언론인 백병규씨가 <미디어오늘>에 게재한 칼럼을 보자. 해당 칼럼엔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서 같은 해 4월 벌어졌던 광고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동성결혼법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르몽드>는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전면 의견광고를 실었다. <르몽드>가 이런 광고를 실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트리오’(<르몽드>에 투자한 좌파 재력가 3인) 가운데 한 명인 피에르 베르제는 격분했다. ‘그런 광고를 받으려는 자는 <르몽드>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직견탄을 날렸다. (이에 <르몽드>의 사장 겸 편집국장인) 나탈리 루게레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르몽드>는 지면에서 ‘동성결혼’ 이슈를 충분하게, 또 심도 있게 다뤘으며 편집 지면과 광고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주주들의 ‘뚜렷한 개성(좌파 성향의 정치적 입장)’도 존중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은 한다’고 밝혔다. ‘나는 신문의 독립성과 고품격의 콘텐츠, 그리고 기자들의 웰빙을 모두 책임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르몽드>의 사례까지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광고가 기사 논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경향신문> 등의 주장은 적어도 성소수자 인권 관련한 부분에 있어선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신문 등 언론의 최대 광고주 가운데 한 곳이 삼성과 관련해선 이런 주장과 맞지 않는 사례들이 그간 존재했고 해당 언론사 기자들의 문제제기도 있었던 만큼, 일단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부분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기사 논조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만으로 정말 충분한 것일까. <경향신문>은 지난해 5월 15일자 신문 31면 사설에서 “인간이 남녀, 이성, 동성으로 구분되기 전에 누구나 인간으로서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길 바란다”며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때문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이 ‘사설’이라는 한 매체의 목소리를 직접 담은 공간을 통해 동성애 차별 금지는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인권,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는 상황에 따라-이 경우엔 기사가 아닌 광고에선-보장의 범위가 축소될 수 있는 걸까. 미디어 비평 전문지의 한 기자도 “해당 언론사에서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정책에 대해 정부 등 이익집단에서 홍보 광고를 집행했을 때 이를 게재하는 것과 차별 등과 관련된 ‘인권’의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장은 “<경향신문>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일련의 문제제기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독자들이 광고와 관련해 <경향신문>에서 기대한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부분들에 대해 편집국과 광고국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논의를 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고려할 때 합의된 입장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터다. 하지만 논의 과정 속 이 말을 한 번쯤은 떠올려보길 바란다. 지난해 <경향신문>과 <한겨레>에서 동성애 혐오 의견 광고를 게재했을 당시 강은하 진보신당연대회의 성정치위원회 대의원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인권을 광고료 따위로 거래해도 당신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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