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 똑같은 ‘거짓 방송’에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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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중징계…‘서프라이즈’는 행정지도

유명 축구선수의 이름을 인터뷰이 이름으로 표기한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8월 9일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가 2일 법정제재인 ‘주의’(벌점 1점) 처분을 하기로 결정했다.

방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로마와 바티칸 시국의 유적지와 문화유산 등을 취재하며 바티칸 관계자, 시민 등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방송하는 과정에서 실제 이름 대신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잔루이지 부폰 등 유명 축구선수의 이름으로 고지한 것은 방송심의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처분을 결정했다.

그러나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대한 방심위의 중징계 처분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방심위가 지난 9월 24일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 당시 영화 <아이언맨>의 주연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관련해 거짓 내용을 방송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8월 24일 방송)에 대해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기 때문이다.

앞서 <서프라이즈>는 지난 3월 2일 방송 당시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우 히스레저의 사인이 약물오용에 따른 사고사임에도 자살이라고 전해 방심위로부터 행정지도성 조치인 ‘의견제시’ 처분을 받은 일도 있다. 같은 유형의, 그것도 반복해서 잘못을 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행정지도성 조치에 그친 방심위가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대해 중징계를 한 것을 두고 방심위 내부에서조차 ‘형평성’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 KBS 1TV <걸어서 세계속으로> 8월 9일 방송 ⓒKBS

똑같은 거짓 방송, 오락 프로그램이니 괜찮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9인의 방심위원 모두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대해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다만 제재 수위를 놓고 ‘주의’(김성묵 부위원장·장낙인 상임위원·고대석·박신서·윤석민·윤훈열·하남신 위원)와 ‘경고’(벌점 2점, 박효종 위원장·함귀용 위원)로 나뉘었을 뿐이다.

함귀용 위원(변호사)은 “방송을 보면 제작자가 시청자를 속이기 위해 고의로 장난을 쳤음을 알 수 있다”며 “다만 KBS에서 즉각 사과를 하고 해당 외주제작사를 프로그램에서 퇴출했기 때문에 수위를 낮춰 ‘경고’ 의견”이라고 말했다. 박효종 위원장도 “KBS가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방송에서가 아닌 홈페이지에서 사과를 한 만큼 (부족하다고 생각해) ‘경고’ 의견”이라고 말했다.

반면 KBS 기자 출신의 김성묵 부위원장은 “사안이 심각한 건 맞지만 KBS가 완벽하게 신속한 조치를 했다”며 “외주제작사를 퇴출하고 담당 CP의 보직을 박탈해 심의실로 이동시켰으며 사과문도 즉각 발표하는 등 잘못을 인정하고 강한 조치를 한 만큼 ‘주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앞서 9월 17일 방송소위 당시 ‘경고’ 의견을 제시했던 MBC PD 출신의 박신서 위원은 “외주제작사에서 만든 방송이라 하더라도 감수의 책임은 KBS에 있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경고’ 의견이었지만, 너무 높은 수위의 제재를 받으면 해당 외주제작사가 거의 망할 지경이라고 해서 수위를 다른 위원들의 의견을 들은 뒤 수위 조정을 하겠다”고 밝힌 뒤, 다수 위원들이 ‘주의’ 의견을 제시하자 당초 의견에서 후퇴, ‘주의’ 의견을 냈다.

반면 지난 9월 24일 <서프라이즈>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을 당시 5인의 방송소위 위원 가운데 4인 위원(김성묵 부위원장, 고대석·박신서·함귀용 위원)은 ‘권고’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박신서 위원은 “과거 (이 프로그램에) 페이크(거짓)를 넣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고르도록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경우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 코너는 없어졌다”며 거짓 방송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박 위원은 해당 방송이 논란이 된 후 제작진에서 게재한 사과문에 대해서도 “보통 외주사에서 사과문이 이렇게 나오지 않는데”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앞서 (헐리우드 배우) 히스레저의 사인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송했다. 사안이 중한 만큼 ‘주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해당 방송이 논란이 된 직후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서프라이즈>는 큰 틀에서 사실에 기초한 제작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재연을 바탕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의 특성상 세세한 내용까지 100%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MBC 측에서 서면으로 제출한 의견진술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성묵 부위원장은 “관계자 징계로 가면 외주 제작사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하며 ‘권고’ 의견을 냈고, MBC 기자 출신의 고대석 위원도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 식의 황당한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색할 필요가 있냐”며 ‘권고’ 처분을 주장했다. 함귀용 위원 또한 “보도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믿어나 말거나’ 식의 프로그램 아니냐”며 ‘권고’ 의견을 밝혔다. 일련의 의견들이 제시되자 박 위원은 “그럼 저도 권고”라며 제재 수위를 법정제재에서 행정지도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 프로그램을 보지도 않을 텐데”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재연을 통해 믿기지 않지만 실제 벌어진 일들을 전하는 정보 성격이 가미된 오락 프로그램으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교양과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장르의 차이가 존재할 뿐 객관성 위반은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KBS의 경우 홈페이지 사과문 게재는 물론 해당 방송을 제작한 외주제작사 퇴출, 담당 CP 보직해임 및 전보조치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음에도 오히려 제재 수위가 높은 상황과 비교해 방심위 논의 과정에서조차 ‘형평성’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실제로 장낙인 상임위원(전북대 초빙교수)은 지난 9월 24일 방송소위 당시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이라도 어떤 인물에 대해 얘기할 때, 설혹 그가 (<서프라이즈>를 시청할 가능성이 낮은) 외국 배우라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라며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바티칸 관계자와 시민들을 인터뷰 하고선 축구선수 이름붙인 것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장 상임위원은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재연 프로그램이기에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으니 계속 이렇게 하겠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한 뒤 “문제가 많은 사과문이고 의견진술 내용도 마찬가지인 만큼 관계자 징계(벌점 4점) 의견”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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