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백년전쟁’과 시민방송 존재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8월 시민방송 RTV가 방송한 <백년전쟁>에 대해 법원이 “퍼블릭 액서스 채널이라고 해서 심의기준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며 중징계를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인용했다. <백년전쟁>은 고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서 여러모로 할 말이 많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시청자 참여 채널에 대한 심의가 있을 것으로 보여 먼저 이 문제를 짚어볼까 한다.

시청자 참여채널의 존재이유는 방송 제도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독점적 요소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은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독점력을 갖는다. 케이블TV는 케이블 나름대로 네트워크 효과에서 오는 지역적인 독점이 발생한다. 이렇게되면 일반시민의 목소리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시청자 참여채널이 처음 태동한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에는 공정성 심의(fairness review) 등을 통해 공적책무를 부과했다면 케이블방송에는 시청자 참여 채널(public, educational and government channels 또는 PEG채널)을 통해 공적 책무를 부과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연방통신위원회는 1969년부터 케이블TV가 다채널방송이기 때문에 이중의 몇 개를 이용해 주민들이 “지역주민들의 자기표현(community self-expression)”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의 두 차례 규칙 제정을 통해 가입자가 3500명이 넘는 지역의 케이블사업자는 최소한 4개의 채널을 만들어 시청자들이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선착순 및 비차별 원칙에 따라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주도록 했다. 이것이 시청자참여채널의 법적 시작이었다.

1979년 대법원이 행정규칙으로는 이와 같은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시했으나 (FCC v. Midwest Video Corp., 440 U.S. 689 (1979)) 연방의회는 1984년에 관련법을 통과시켜 (47 USC § 531(a)) 지자체들이 시청자 참여채널의 설치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요구할 권한을 법제화했다. 케이블TV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이해서는 SO가 집집마다 선을 연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그 지역 지자체가 관리하는 도관이나 전봇대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이용권에 대한 지자체와의 계약이 불가피하고 이때 지자체가 계약조건으로 시청자참여채널의 개설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청자 참여채널에 대해서는 SO들이 일체의 제재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미국FCC(연방통신위원회)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할이 없어 SO가 시청자 참여채널 내용을 제재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즉 방송사업자의 독점력 때문에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방송에 반영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시청자 참여채널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청자참여채널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자 참여채널의 의미는 다음 판결에서 더욱 명백해졌다. 연방의회는 1992년 법을 통해서 SO들이 시청자참여채널에 대해 “명백히 불쾌한(patently offensive)” 내용을 배제하기 위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대법원은 시청자 참여채널은 그 자체가 “지역사회가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프로그램을 장려하고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a system aimed at encouraging and securing programming that the community considers valuable)”이라면서 여기에 SO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위헌판정했다(Denver Area Educational Telecommunications Consortium, Inc. v. F.C.C., 518 U.S. 727 (1996)).

같은 판결에서 상업임대채널에 대해서는 SO가 비슷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판정했다. 결국 시청자참여채널의 특성에 기초하여 “불쾌한 내용” 규제가 위헌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시청자참여채널의 다양성은 우선시되는 가치다.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TV는 바로 이와 같은 시청자 참여 채널이다. RTV는 제한적으로 자체제작을 하고 있지만 존재이유는 시민이 제작하는 콘텐츠를 편성하는 방송이다. 그렇다면 일반방송사들에 부과하는 공적 책임을 RTV에 부과해서는 안 된다. RTV는 일반방송사의 권한남용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 PP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직접적인 제재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시청자 참여 채널에도 다른 PP와 똑같은 규제를 하려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공정성심의를 시청자 참여 채널에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시청자 참여 채널의 존재이유를 탈각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