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PD들, 우울증에 난독증까지 심적 고통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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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MBC 해고무효소송 2심 공판 …현직 PD의 법정 증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 28일 오후 2시 50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305호 법정에서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외 43명 해고 및 징계무효확인 2심의 첫 번째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날은 YTN 해직 언론인 6명 중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은 다음날이기도 하다.

원고(노조)측 증인으로 채택된 김환균 PD, 그리고 참관을 위해 온 언론노조 MBC본부의 이성주 위원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오동운 현 사무처장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공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로 해고 970일이 된 강지웅 전 사무처장은 지난 1월 법원으로부터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사측의 항소로 2심까지 오게 됐다. 그래서일까. 강 전 사무처장은 긴장한 듯 눈을 꼭 감고 손은 깍지를 끼고 있었다. 이들 앞으로 사측(피고) 증인으로 채택된 이진숙 보도본부장이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초 시간보다 20분 늦어진 오후 3시 20분,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외 43명 해고 및 징계무효확인 2심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이날 공판의 쟁점은 170일간의 노조 파업 목적이 정당하냐 여부다. 김재철 전 사장으로 인해 훼손된 MBC 방송의 ‘공정성’을 되찾기 위한 파업이었냐는 것이다.

조용한 법정. 증인석에 나란히 선 이진숙 본부장과 김환균 PD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했다. 각각 MBC 사측과 노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은 각자 몸을 담아온 부서는 다르지만 MBC라는 지붕 아래에서 지낸 1년 선후배 사이다. 그런 그들이 법정에서 한 자리에 섰다.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170일 파업 당시 홍보부장과 기획홍보본부장을 지낸 이진숙 현 보도본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의 ‘입’이라 불릴 정도로 측근이었으며, 김 전 사장 해임 이후 신임 사장 후보에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노조 측 증인인 김환균 PD는 <PD수첩> 등 1987년 MBC 입사 이래 대부분을 시사교양국에서 보냈다. 김 PD는 2012년 파업과 관련해 MBC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 형사사건 재판에서도 노조 측 증인으로 출석했고, 그 이후인 지난 10월 31일 <다큐스페셜>을 제작하다 사업부서인 경인지사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김환균 PD는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 내부의 제작 자율성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PD수첩>을 예로 설명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심층취재, 이른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무릎기도’ 사건 취재, 남북경협 중단, 고엽제 취재 등 정부에 비판적인 아이템은 사전 취재 도중 모두 중단됐다.

김 PD는 계속되는 취재 중단 지시와 사측의 감시로 심적 고통이 컸다고 한다. 이는 자신만이 아닌 시사교양국 PD들 상당수가 겪는 문제였다. 어느 PD는 난독증 증상까지 보이는가 하면, 우울증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 PD도 있었다. 법정에 앉아 있던 동료들은 낮은 신음을 내뱉기도 했다.

원고 측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방송종사자들에게 방송공정성은 어떤 의미”냐고 묻자 김 PD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다”라고 말했다. 다른 자유 역시 훼손된다는 의미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언론인의 책무이며 2012년 170일간의 파업은 바로 이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김 PD의 답변은 2010년 3월 30일 <PD수첩>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가 시청자에게 전한 마지막 멘트이기도 하다. 그는 김재철 전 사장 부임 이후 <PD수첩> 담당 부장 겸 진행자 자리에서 보직해임 됐다.

이진숙 보도본부장 “김재철 사장님은 공정방송 최선 다하셨다”

오후 4시 31분, 약 한 시간가량의 원고 측 증인신문이 끝나고 이진숙 본부장이 증인석에 앉았다. 이 본부장은 피고(MBC) 측 변호인의 질문에 내내 정면만을 응시했다. “네”, “그렇습니다” 등의 단답형 답변을 할 때조차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지 않았다. 신문 내내 시선은 움직임이 없던 이 본부장. 두 손만큼은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면서 한시도 쉬지 않았다.

이 본부장의 증언은 MBC본부가 속한 언론노조의 ‘정치적 편향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조가 내건 ‘공정방송’은 파업 때마다 나오는 ‘형식적’ 용어라고 강조했다. “노조가 명예훼손 등 지능적으로 괴롭힌 것 아닌가”, “노조가 어떤 불법 행위를 했나”, “회사와 경영진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등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 본부장은 한 순간도 막힘없이 답변을 했다. 기자 출신답게 발음도 또박또박 전달력도 좋았다.

그러나 원고(노조) 측 변호인인 신인수 변호사의 신문이 시작되자 이 본부장의 태도는 달라졌다. 막힘없이 답변했던 이 본부장은 “언론노조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인가”라는 신 변호사의 질문에 약 3초간 말문이 막혔다. 이후 이 본부장의 시선은 신인수 변호사를 향했고, “파업으로 인해 해고·정직 등 중징계를 받거나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전보가 몇 명쯤 되는지 아는가”,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외에 제작진의 거부에서 경영진이 사전시사를 요청한 일이 있는가”라는 말에 이 본부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등의 답변을 하면서도 사측의 피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했다.

특히 이진숙 본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의 방송은 공정했다며, 노조의 파업이 적법하게 임명된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키는 것임을 주장했다. 2010년 3월 노조의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김재철 전 사장은 “제가 그(공정방송)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사원들이 한강에 저를 매달아서 버리세요”라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이 본부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가 아는 김재철 사장은 공정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걸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3시간에 걸친 공판이 끝났다.  오는 5일에는 두 번째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이날 공판에서는 파업 과정의 불법적 행위를 입증하려는 사측이 제출한 동영상과 MBC 방송의 공정성이 얼마나 훼손됐는가를 보여주는 노조 측이 제출한 동영상이 재판부의 검증을 받게 된다. 치열한 법리 공방의 결말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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