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고된 4년차 예능 PD를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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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를 지칭하는 말은 다양하다. 물론 공식적인 용어는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서울방송, 교육방송 등과 같은 것이지만 실생활에서 다르게 불리는 경우가 흔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K사, M사 이렇게 부르고, 인터넷 게시판에선 크브스(KBS), 스브스(SBS)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각 방송사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고봉순(KBS), 마봉춘(MBC), 윤택남(YTN)과 같이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 MBC의 4년 차 PD가 해고됐다. 해고의 이유는 자신의 인사발령을 ‘유배’로 표현한 내용의 웹툰을 제작한 것이지만 애초 발단은 ‘엠병신’이란 표현이었다. 작년 해당 PD는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으로 ‘엠병신 PD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고 그로 인해 6개월 정직이란 중징계를 당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표현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누가 가장 처음 사용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작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MBC의 보도로 인해 이 말이 광범위하게(?) 인터넷에서 회자된 건 분명해 보인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MBC의 보도 행태에 불만을 느낀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서 이 표현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 권성민 PD의 예능 이야기 웹툰
실제로 올해 초 세월호 유가족들은 MBC의 세월호 관련 보도에 불만을 제기하며 MBC를 항의 방문했다. 유가족이 마치 단원고 학생들의 특별전형을 요구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유가족의 울분은 단지 이 건만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MBC는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뉘앙스의 보도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냈다. 민간 잠수사의 죽음을 ‘조급증과 압박’이라 하고, 장기간 단식한 유민 아빠의 사생활을 캐고, 세월호 농성장에 대해서는 ’불법’이나 ‘난장판’과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엠병신’이란 표현은 MBC의 세월호 보도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이 담긴 피드백인 셈이다. 분명한 맥락을 지닌 시청자의 의사 표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표현을 가지고 시비를 걸 게 아니라 MBC의 세월호 관련 보도가 ‘공정했다’라고 반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나라의 공영방송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올 초 유가족이 MBC를 방문했을 때 유가족들은 보도 책임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이후 MBC가 이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설명을 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겨우 입사 4년 차 된 한 명의 PD는 엠병신이란 말이 어떠한 맥락을 지녔는지 파악을 했다. 세월호 보도와 관련한 시청자들의 불만에 대해 공감하고 소통한 셈이다. 그게 단순히 MBC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었거나 네티즌들의 말장난이었다면 굳이 인터넷 게시판에 어떠한 반응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보도에 대한 불만이었기에 나름 해명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엠병신’을 차용한 것이지 단지 회사를 모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회사를 모욕하려면 사내 게시판에 잔뜩 욕지거리를 늘어놓으면 되지 굳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굳이 실명으로 말이다.

▲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무엇보다 그러한 해명을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락으로 떨어진 MBC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보도 마음에 안 드신 것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이런 이유인 것이지 정말 회사 명예가 실추되길 바랐다면 키득 거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애사심 강한 4년 차 PD다. 그리고 그처럼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직원을 둔 MBC는 복 받은 방송사다. 부디 피상적 표현 몇 마디로 인해 회사를 많이 사랑하는 직원을 영원히 내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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