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PD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국민에게 송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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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969일차 최승호 PD, MBC노조 170일 파업 손배소 2심 증인 출석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이다.”

“(<PD수첩> PD로서 계속된 아이템 검열에 자괴감을 느꼈다는 김동희 PD에 대해) 내가 참 미안한 마음이었다.”

▲ 지난 2012년 6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해고자 정영하 MBC노조위원장,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서관 제308호 법정. 2012년 170일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그해 6월 20일 MBC로부터 해고를 당한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앵커 겸 PD)는 MBC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95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국민과 후배 PD에게 송구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 계속된 아이템 검열과 구성원들에 대한 탄압으로 제대로 된 방송, ‘시대의 목격자’를 자처한 <PD수첩> PD로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못한 점.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후배 PD가 겪게 한 점. 최 PD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 날은 최 PD가 MBC에서 쫓겨난 지 969일째 되던 날이다. 이날 원고(MBC) 측 변호사는 최 PD에게 “지나치게 잔인했다는 생각은 안 드나”라고 물었다. 파업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이 김 전 사장을 비판한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난해 1월 1심 재판부는 “(MBC노조) 파업의 위법성에 대한 증명 책임은 원고(MBC)에게 있는데 제출한 자료로는 파업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지만, MBC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날 공판에는 피고(노조) 측 증인으로 최승호 PD가 출석해 MBC 구성원들에게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서은 추상적 구호가 아닌 가장 중요한 근로 조건이며, 2012년 MBC는 마치 1987년 6월 항쟁의 상황과 닮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서관 제308호 법정에서는 MBC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95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공판이 진행됐다. ⓒPD저널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국민에게 송구하다”

1986년 입사한 이래 26년가량을 MBC PD로 살았던 최 PD는 26년 근무 경험에 비추어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은 다름 아닌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근로조건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이후다. 정권과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긴 아이템은 자취를 감추거나, 불방이 되는 일이 잦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 PD가 2010년 연출한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2010년 8월 24일 방송)이다.

‘4대강’ 편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운하를 닮은 대형 보 건설 위주의 마스터플랜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해양부 관계자가 참여한 ‘비밀팀’이 개입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해당 방송을 두고 서울남부지법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기각 당했다. 이를 MBC 경영진이 방송 2시간여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보류를 결정한 것이다. 최 PD는 마무리 편집 과정 중 외부 언론사 기자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한참 방송을 녹화하는 중 <한겨레> 기자가 전화 와서 국토해양부 대변인이 오늘 방송을 안 한다고 출입 기자에게 말했다고 했다. 녹화를 다 끝마치고 테이프를 들고 올라가려 하는데 그때서야 임원회의에서 불방 결정이 됐다고 전해 들었다.”

‘4대강’ 편은 불방 끝에 방송됐지만 일부 수정하고 보완해 어렵사리 방송됐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을 비롯해 남북경협, 제주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의혹,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한미 FTA, 한진중공업 사태 등 정권에 민감한 이슈를 다루려는 방송이 빈번하게 무산됐다는 것이 최 PD의 증언이다.

최 PD가 파헤친 ‘4대강’ 사업만 해도 이후 ‘녹조라떼’, ‘큰빗이끼벌레’, ‘물고기떼죽음’ 등 눈으로 피해를 목격할 수 있었으며, 2013년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최 PD는 “만약 자유롭게 취재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면 사업 초기 (정부가 밝힌 사업 목표와 달리) 대운하 사업을 강행하려 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후속 보도가 있었다면) 정부가 사업을 제고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 최승호 PD가 2010년 연출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2010년 8월 24일 방송). ⓒ화면캡처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의 MBC “1987년 6월 항쟁 재현, 많은 자괴감 느껴”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기자들은 현장에서 시민들로부터 욕을 먹거나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한 예로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비공개 날치기 처리 이후 시위현장을 취재하던 MBC 기자들은 “보도안 할 거면 나가라”, “취재해도 안 나갈 텐데 뭐하러 왔느냐” 등의 냉대를 받았고, MBC 로고가 붙어 있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카메라를 막기도 했다. 이에 MBC 로고가 붙은 ENG 카메라 대신 로고가 없는 6mm 소형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막내 카메라 기자는 “도대체 MBC가 왜 이렇게 됐냐”면서 사내 게시판에 울분을 표시했다.

“그 당시 제가 봤을 때 이건 뭐 1987년도 6월 항쟁 상황이 또 MBC에 왔구나 생각했다. 1987년 똑같은 상황이었다. 수십 만 명의 시민이 시위하는 상황을 MBC는 많이 모이지 않은 것처럼 보도했고, 기자들은 결국 시민들에게 쫓겨나 분개하고 울었다.

그 이후 그런 부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방송민주화 운동이 시작됐고, 노조도 만들고 20여 년 동안 열심히 시스템을 만들어서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또 이런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나 뿐 아니라 당시 선배 그룹이 많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 이전에 많은 상황들이 쌓이고 쌓인 상황이었다.

막내 카메라 기자의 글도 원래 보도국 기자게시판에 올라왔는데 보도국 간부들이 글을 지우라고 해서 결국 회사 전체에 공개된 자유발언대에 올리게 됐다. 그 이전에는 사실 MBC야말로 내부의 언론자유가 거의 완벽하게 보장됐는데, 보도국 안에서 그런 말을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 남북경협 문제를 취재하다 징계 압박을 받았던 김동희 PD가 당시 상황을 <파워업 PD수첩> 제작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화면캡처
1990년 김재철 기자 “다시 생각해도 부러운 영국 BBC”

이날 공판에서는 김재철 전 사장이 보도제작국 보도제작1부 소속 기자 시절이던 1990년 9월 13일 노보에 쓸 글 한 편이 증거로 제출됐다. 제목은 ‘다시 생각해도 부러운…영국 BBC’다.

“자유와 책임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BBC 자체의 오랜 노력과 방송의 자율성, 독립성을 바라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불간섭 원칙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시청률을 올린다는 이유로 심층보도 프로그램까지 암흑 시간대로 옮긴 MBC의 현실을 생각 할 때 그저 마음만 답답할 뿐이다.”

원고(MBC) 측 변호인이 해당 글을 가리키며 “김재철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면 기자로서 괜찮은 철학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거 같다. MBC에서 오랫동안 일도 했고, 아주 다양한 경력도 거쳤다. 그런데 왜 노조에서 김재철 사장을 반대했나”라고 물었다.

이에 최 PD는 “김재철 사장이 물론 MBC에서 여러 가지 많은 보직을 거쳤다. 거쳤지만 평판이나 능력을 봤을 때 그렇다고 해서 사장이 될 만한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며 “또한 김재철 사장 부임 이전에도 외압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라 알려진 김 사장이 부임할 경우 외압을 그대로 조직 내부로 전달할 사람 아닌가 우려됐고 그래서 반대했다”고 밝혔다.

최 PD는 앞서 증언한 바와 같이 김 사장 취임 이후 이 같은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고, 내부 구성원들은 예전의 MBC로 돌아가기 위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김 전 사장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을 제출하지 않은 혐의(업무상 배임 및 감사원법 위반)로 약식기소됐다. ⓒ뉴스1
“김재철 사장이 MBC 구성원에게 저질렀던 행위, 수십 년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원고 측 변호인은 내부 구성원들이 경영진에 의해 난독증을 겪는 등 심적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하지만 파업 과정에서 김재철 전 사장과 윤길용 국장 등 경영진 역시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변호인은 증거로 김 전 사장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책 <바람아 또 오데 가노: 김재철 전 사장이 말하는 나와 MBC>를 제출했다. 책에는 김 전 사장의 고향인 사천까지 노조 조합원들이 내려와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변호인은 “사장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적은 걸 보면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이에 최 PD는 김재철 전 사장으로 인해 아픔을 겪은 수천 명에 대해 언급했다.

“김재철 사장이 MBC 본사와 지방에 이르는 수천 명의 구성원에게 저질렀던 행위는 아마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개인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거 같은데 그러나 김재철 사장이 MBC에 저지른 일이야말로 저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편 공판이 이뤄진 이 날 지난 2012년 MBC 파업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재철 전 MBC 사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 11단독(판사 신중권)은 판결문에서 “피고인(김재철)은 공영방송인 MBC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처신이 곧 회사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직위에 있다”며 “혹시라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는 공인으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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