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 소수자, ‘변태’, 성폭력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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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두 명의 검찰 수뇌부가 ‘사적인 일’로 물러났다. 주지하다시피 검찰총장과 지역 지검장이다. 유능하고 청렴해서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운 검찰 지도자가 있다고 치자. 그가 정권의 치부나 부패를 수사하려고 할 때 최고 권력자의 쉬운 선택은 사생활을 문제 삼아 도덕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는 일는 흔한 일상사다.

문제는 그 약점이, 진정한 잘못인가 아니면 편견의 산물인가라는 점이다. 우중(愚衆)의 정치는 권력자의 무분별한 의도가 현실화될 수 있는 토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 때문이다. 선거로 뽑은 권력의 행사는 합법적이지만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념이라는 권력은 공정성 여부를 분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즉, 문제는 시민의식이다.

▲ ⓒpixabay

특히 우리 사회의 성문화(性文化)는 가장 계몽이 절실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제대로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검장의 경우는 성폭력범(‘바바리 맨’)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특정한 성적 성향을 가진 성적 소수자이다. 범죄로서 성기노출은 공중(公衆) 앞에서 행위일 때만 성립한다. 이를 영어로 ‘flashing’이라고 하는데, 표현 그대로 손전등처럼 비추는 것이다. 자기 신체 부위를 타인이 보기를 강요함으로서 공포감과 혐오감을 조성하는 경우다. 반드시 관중이 있어야 한다. 해임된 지검장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연히 타인에게 노출된 것이다. 결국 개인적 상황이 범죄로 둔갑, 희생자가 되었다. [관련기사: ‘음란행위’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기소유예]

가족과 성(sexuality)에 대한 규범은 사람들의 실제 행동과는 불일치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사법 처리보다 도덕적 낙인과 시선의 형벌이 더 크다. 가족과 사랑은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성문법, 관습법의 적용을 받는 사회제도다. 따라서 개인이 원하는 친밀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천 불가능한 규범이기 때문에 일탈이 있고, 또 그럴수록 강력한 규범이 필요한 악순환이다.

범죄와 일탈은 다르다. 개인의 타고난 혹은 선택한 성적 실천은 타인의 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한,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에 대해 무지하고 구분도 희미하다. 성 소수자, ‘변태’, 성폭력범은 완전히 다른 범주다. 성폭력 범죄자만 처벌 대상이다. 성적 소수자 = 동성애자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LGBT, 즉 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 젠더를 총칭하여 성적 소수자라고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인식은 아니다. 동성애나 양성애는 성적 행동과 관련된 이슈고, 트랜스 젠더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남자냐, 여자냐)과 사회적 규범이 갈등하는 경우다. 굳이 표현한다면, LGB/T가 맞다. 무성애자(無性, asexual), 범성애자(汎性, pan-sexual)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성적 활동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며 유동적이다.

간성(間性, inter-sex), 자웅동체(雌雄同體)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동성애자가 아니고 숫적으로도 소수가 아니다. 인간은 양성(兩性)으로 태어나지도,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자연과학은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이성애 제도의 왜곡된 지식일 뿐이다.

위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사회처럼 음란과 폭력의 개념이 혼재된 사회도 드물 것이다. 음란은 범죄가 아니라 문화 현상이다. 폭력이 범죄다. 그러나 사회는 음란을 더 부정적으로 본다. 폭력은 차별의 문제고, 음란은 보수적이냐 리버럴하냐는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다. 문제는 진짜 범죄 행위인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보수주의 문화로 정당화되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는 미국과 달리, 음란에 대한 통제는 강력하지만 폭력에 대해서는 대단히 허용적이다.

▲ 정희진 평화학연구자

‘비정상’이 범법은 아니다. 앞서 말한 두 사람은 범죄자도 파렴치범도 아니다. 성문화 권력을 이용한 현실정치의 희생자다. 성에 대한 무지를 이용한 권력은 법적 근거 없이도 위력을 발휘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권력이 구성원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일상적인 통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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