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언론, 비극적 코미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김연지 기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코미디는 코미디이되, 비극적 코미디다. 메르스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을 두고 언론이 “뇌사 상태”, “사망했다”고 연이어 오보를 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다. 오보를 낸 언론사는 공식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단독’을 달았다. 젊고 건강했던 사람이 뇌사 상태, 사망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던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일대 파란이 일어나 SNS는 난리가 났고 전화기에도 불이 났다. 그런데 이 오보가 그리 놀랍지도 낯설지도 않다.

그렇지 않아도 불과 하루 전에도 우스운 사건이 있었다. ‘천재 한인 소녀’ 보도 사건. 미국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을 동시에 합격했다는 이 영특한 소녀의 이야기에 언론은 열광했다. 미주중앙일보가 최초 보도했고, 이를 국내 언론사가 ‘받아쓰기’ 했다. ‘천재 소녀’는 방송에서 인터뷰까지 했다. 그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고, 기사 댓글에는 찬양 일색이었다.

▲ 오보로 드러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캡쳐

그런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나마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도 언론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오보를 낸 대부분의 언론은 ‘단순 해프닝’이었던 것처럼 사안을 마무리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 한 마디로 ‘퉁’ 쳤다. 하지만 이게 과연 단순 해프닝인가? 원래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일을 크게 만든 건 언론이었다. 기본적인 사실 검증 절차도 한 번 거치지 않고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쓰기’해서 보도한 언론. 이번 오보 사건에는 언론의 게으름, 직무 태만,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함이 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언론인들은 세월호 분향소를 찾았다. 그 곳에서 그들은 “부끄럽습니다. 참담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날 그들이 말한 것처럼 작년 봄, ‘세월호 참사’보다 더 큰 재앙은 ‘보도 참사’였다. 사실 확인 없는 받아쓰기, 속보 경쟁에 매몰된 엉터리 기사들은 한국의 기자들을 ‘기레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전 반성의 목소리는 무색하기만 하다. 기레기 소리를 듣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언론은 여전히 오보를 양산하고 있다.

▲ 지난 10일 JTBC ‘뉴스룸’ 한인 천재소녀, 스탠퍼드·하버드대 동시입학 허위 관련 보도 ⓒJTBC 캡쳐

‘대형 오보’로 기레기 소리를 들은 지 고작 1년, 분향소를 찾아 참회한 지 고작 두 달이다. 그럼에도 이번 오보 사태에 대해 언론은 크게 반성하는 것 같지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몇 몇 언론이 공식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 사과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진정성 있는 사과인지는 의심스럽다. 면피성 보도만 냈을 뿐, 아예 사과 한 마디 없는 언론도 있었다.

세월호의 대형오보에 비하면 이 정도쯤 오보는 오보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련의 오보들은 단순 오보가 아니라 그 동안의 ‘반성 없음’과 ‘변화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니라 진심어린 반성에서 나온 변화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자기 자신에게 너무 관대한 언론. 그런 관대함과 자기비판 없음, 뻔뻔함이 ‘기레기’ 소리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다. 이 어이없는 코미디가 무척 비극스럽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