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이니까 바보 흉내나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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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니까 바보 흉내나 내라고?”
[리뷰] KBS ‘개그콘서트-민상토론’
  • 김연지 기자
  • 승인 2015.07.03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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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물 부족 문제,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난상토론을 벌이는 자리. 예상과 다르게 정치 이슈가 터져 나오자 토론자로 참여한 두 개그맨은 어쩔 줄을 모른다. ‘4대강’, ‘이명박 전 대통령’, ‘세금 22조’ 등의 단어 앞에서 입 한 번 떼기 어려워하는 두 사람.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1.
“우리가 물부족 해결책을 뭐 어떻게 얘기해?”(김대성)
“아 몰라, 그냥 대강 얘기해.”(유민상)
“대강? 4대강! 지금 유민상 씨 4대강 사업 말씀하신 겁니까?”(박영진)
“(어이없어하며)야, 너 진짜 대단하다.”
“아, 4대강 사업 진짜 대단하다? 역사에 남을 만한 사업이었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2.
“아, (토론) 망했다..”
“아, 4대강 사업 망했다?”
“어머,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어!”
“아, 4대강 사업 쓸데없다?”
“너 (제발) 쫌!”
“너쪼? 녹조? 아, 녹조현상! 4대강 사업 때문에 환경이 파괴됐다, 이 얘깁니까?”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시비조야?”
“말이십이조? 아,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세금 22조가 아깝다, 이 얘깁니까?”
“(한숨)”
“아, 지금 김대성씨 세금 22조 다 어디로 갔냐며 아까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십니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3.
“유민상 씨, 가만히 보면 MBC는 출연 잘 안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묻고 싶은데요, MB가 그렇게 싫습니까?”(토론 방청객)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4.
“아, 나는 MB가 싫다, 이 말씀이십니까, 김대성 씨?”
“아, 나는 MB 얘기한 적도 없는데! 지 맘대로 막 (말을) 지어내고, 만들어내고! 아주 멋대로야!”
“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막 만들어내고 막 짓고, 아주 멋대로다, 그래서 싫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5.
“아, 이제 제발 좀 끝내자.”
“아, 네 임기 끝났습니다.”
“아니, 얘기를 끝내자고.”
“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으니까 4대강 얘기도 끝내자?”
“아오, 진짜 끝까지.”
“아, 끝까지? 끝까지 잘잘못을 가려내서 4대강 사업이 잘된 사업인지 아니면 세금 낭비인지 확실히 평가하자?”
“어우, 이 형 이제 정치를 아는 몸이 되었네.”
“넌 또 뭔 소리야.”

지난 달 28일 방영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장면들이다. ‘민상토론’은 가벼운 토크쇼인 줄 알고 왔다가 시사토론에 참여하게 된 두 개그맨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다룬 코너다. 정치적 발언, 정치적 입장 표명에 겁을 내는 두 개그맨은 시종일관 당황스러워하며 허둥지둥한다. 부담스러운 주제를 다루는 부담스러운 자리. 그 곳에서 몸을 사리려고 애쓰는 두 개그맨의 모습과 토론 진행자 역 박영진의 언어유희, 그 속에 담긴 시사현안 풍자가 웃음을 만든다. 한마디로 비틀고 지적하고 풍자하는 개그다.

정치풍자에는 늘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뒤따르는 법. ‘민상토론’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보수논객 변희재씨가 대표로 있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민상토론’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후 방심위는 지난 달 24일 행정지도인 ‘의견제시’ 제재를 결정했다.

방심위의 제재는 가벼운 징계였지만 논란은 컸다. 제재가 결정되기 전 6월 21일 방송에서는 ‘민상토론’이 결방되면서 외압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의 징계가 논란이 되면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제기됐는데, 사실 ‘민상토론’이 보여 준 정치풍자는 ‘표현의 자유’를 논할 만큼 선정적이지도 비판적이지도 않다. 이번 제재는 그 동안 정치 풍자가 부재했다는 사실, 정치풍자를 금기시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6.
“아우, 이거(박영진)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
“아, 낙타 무섭다? 낙타 조심해라?”
“(분한 표정으로)아유!”
“우유? 낙타유 마시지 마라?”
“아, 뭔소리야. 헛소리하지마.”
“아, 낙타 얘긴 또 뭔 소리냐? 헛소리하지 마라? 잠깐만요, 유민상 씨. 지금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예방지침, 이거 지금 무시하시는 겁니까?”
“아니, 무시가 아니고. 근데 이거 낙타고기 이런 걸 어디서 먹으란 얘기야.”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7.
“아우, 둘이(김대성, 박영진) 케미 돋는구만?”
“개미? 아, 개미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던 보건복지부를 지금 비꼬시는겁니까?”
“비꼬다니요. 왜 이상한 얘기 퍼뜨리고 그래.”
“아, 이상한 얘기를 퍼뜨린다? 아, 괴담? 지금 메르스보다 괴담이 더 문제다? 그러니 괴담 유포자부터 잡아라?”
“아이, 내가 언제 또 그런 말을 했어요.”
“아, 아니다? 괴담 유포자 잡을 정신 있으면 메르스부터 잡아라?”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8.
“제가 퀴즈를 준비했습니다. 자, 다음 중 컨트롤 타워는 어떤 것입니까?”

1. 중앙 메르스 관리 대책 본부
2. 민관 합동 종합 대응 태스크 포스
3.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 본부
4. 중앙 안전 관리 위원회

“이게 다 뭐야? 아 몰라!”
“아몰라? 아, 아몰랑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답답하다?”

‘문제의 장면’. 방심위 징계를 받은 편의 방송 내용이다. 지난 달 14일 방송에서 ‘민상토론’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과연 이 날 방송이 징계를 받을 만한 내용이었을까? ‘민상토론’은 심지어 격렬하게 비꼬거나 희화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있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9.
“이런 걸 얘기했다간 나중에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아,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얘기할 가치가 없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알겠습니다.”

#10.
“제가 어느 한 쪽을 얘기를 하면 다른 쪽에서 뭐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소송을 거네 뭐 이러면서 시끄러워 지는 걸 전 원치 않습니다.”
“아, 그러니까 의견은 있는데 개그맨이니까 그냥 바보 흉내나 내면서 살이나 뒤룩뒤룩 찌겠다? 알겠습니다.”

유민상과 박영진의 대사처럼, 개그맨은 시끄러워질 소지가 있는 ‘정치’라는 소재는 무조건 배제해야 하는 것일까?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KBS

#11.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 두 사람의 의견은 개그콘서트 조준희PD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 개인적인 의견임을 강조드리는 바입니다. 녹화방송이라 여과 없이 방송에 나가는 점 양해말씀 드립니다.”

박영진의 단골 대사처럼, 정치 얘기에는 늘 이렇게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소재에 제한과 금기가 있는 코미디를 보며 시청자는 제대로 웃을 수 있을까?

지난 4월 5일, 홍준표 무상급식 논란을 주제로 다룬 ‘민상토론’ 첫 방송은 유민상이 “나 이 코너 안해!”라며 도망을 치는 모습으로 끝났다. 정치풍자가 금기시된 현실에서, 어쩌면 유민상은 그 때 정말로 도망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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