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림책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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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책] '나의 아름다운 바다', '미스 럼피우스', '파도야 놀자'

아이가 있어 좋은 많은 일들 중 하나는 그림책에 자연스럽게 입문할 수 있던 일이다. 혼자였다면 굳이 일부러 그림책까지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와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 한정되다 보니 아이가 조금 크면서 우리는 만만한 동네 도서관을 다니면서 연령별 추천 목록을 살피며 그림책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내딛었다.

막상 그림책의 세계에 들어서자 그곳이 꽤 넓은 바다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어느 그림책들은 미술관을 통째로 빌려온 것 같은 감흥을 주었다.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강렬한 색감의 그림책 속 그림들은 여느 미술 작품들 못지않은 시각적인 자극이 되었다. 또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흐름을 주고받는 그림책 텍스트라는 특징은 새로운 읽는 맛을 선사해 주었다.

어떤 작품이 인상 깊어 자연스레 그 작가의 작품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린이책 작가의 독자적인 세계가 결코 만만치 않음도 알게 된다. 태어남, 사랑, 가족, 나이듦, 행복과 같은 생애 본질적인 얘기를 마치 이야기 봇짐을 풀듯 나긋나긋 풀어놓는 그림책을 만나기라도 하면 책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그림책 한 권에 가슴 한쪽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가는 걸 느끼기도 했다.

어린 아들과 함께 누워 책을 들고 낄낄 깔깔 거리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동시에 어떤 그림책을 만나는 것은 내게도 설렘과 온전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요즘은 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볼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가늠하다 부쩍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읽기의 재미를 떠나 아이가 어느 순간 문자의 세계로 빠져나가버리지는 않을까 싶어 혼자 조마조마한다. 요새 부쩍 따라하는 개그콘서트나 TV 광고의 유행어가 그림책의 반복하고 일탈하는 말놀이의 재미를 얕잡게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 혼자 씁쓸해하기도 한다.

아이가 더 크면 나까지 그림책에서 멀어질까 싶어 아예 내 취향 위주로 그림책들을 찾아보기도 하며 그렇게 안달거리며 지내고 있다.

그냥 여름하고 어울리는 그림책들을 몇 가지 내 마음대로 골라보고 싶었다. 휴가 계획을 세우든가 아니면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한적한 카페에라도 도망 가야할 것 같은 여름, 가벼운 여행 같은 그림책의 바다로 풍덩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의 아름다운 바다>(클레어 A. 니볼라 지음 / 이선오 옮김 /봄나무)

▲ 클레어 A. 니볼라 '나의 아름다운 바다' ⓒ봄나무

시원한 바다색을 배경으로 작은 다이버의 모습이 담긴 표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바다 밑 7000시간!’ 이라는 부제가 달린 <나의 아름다운 바다>는 여성 해양학자 실비아 얼의 이야기다.

많은 책이 그렇듯 책은 실비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실비아는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좋아했고 하루 종일 연못이나 바다에서 ‘조사’라는 걸 하며 놀았다.

다섯 살 때 처음으로 경비행기를 탔는데 혼자 조종사 뒤에 앉아 여유롭게 들판을 내다보았다. “물고기에 대해 알고 싶으면 물고기가 사는 곳으로 가야한다”라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여성으로 유일하게 인도양 탐사선에 올랐다.

책은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해양학자로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과정들을 어떤 겉치레나 과장된 의미부여 없이 덤덤히 그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용기를 내며 발을 내딛는 순간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준다.

그녀가 혹등고래와 마주치는 장면은 특히 매혹적이다. 12미터 길이, 36톤 무게의 혹등고래를 마주하며 그녀는 마치 수염이 달린 화물기차가 마구 달려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녀는 “고래는 자기가 얼마나 크고 내가 얼마나 작은지 잘 알고 있었다”며 “내 생애 가장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한다.

은하수와 같은 심해의 장면에 감탄하고 성격이 각기 다른 다섯 마리의 에인젤피시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온 생애에 걸쳐 바다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던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그림‧글 /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바버러 쿠니 '미스 럼피우스' ⓒ시공주니어

이 책도 여성의 이야기다. 미스 럼피우스라는 가상의 주인공이지만.

어린 시절 할아버지 옆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어 생은 돌고 돌아 반복되고, 이 책은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미스 럼피우스는 여행을 하는 여성이다. 나이가 들면 여기 바닷가 집에 와서 살리라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제 바닷가 고향집엘 돌아간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씀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런데 얘야,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그게 뭔데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미스 럼피우스는 바닷가 고향집에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 그렇지만 어떻게? 미스 럼피우스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은 벌써 아주 멋진 걸”

미스 럼피우스를 따라 지금 인생의 길 가운데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남았는지 중간점검을 해보는 거다. 책 속의 화자인 아이처럼, 아직은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를 가능성이 크겠지만,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향해 주위를 둘러보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미스 럼피우스처럼 진짜 꽃씨를 뿌리고 다니겠다고 결심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소설이나 대중매체에서 재현되는 것보다 멋진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도 내겐 매력적이다.

■<파도야 놀자> (이수지 저/ 비룡소)

▲ 이수지 '파도야 놀자' ⓒ비룡소

이수지 작가의 책이다. 바닷가에 놀러간 아이가 파도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글이 따로 없다. 오직 그림만 있는데, 그림만으로 기승전결이 표현된다. 글이 아닌 이미지가 어떻게 이야기를 걸어올 수 있는지 몸소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바닷가에서 놀아 본 경험이 있는 아이라면 책장을 넘기면서 파도의 간지럼을 진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읽다보면 슬쩍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 최문주는 전직 기자로, 지금은 책읽는 엄마, 때때로 잡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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