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피디 촌기자의 행복한 시사 ‘말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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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MBC강원영동 ‘말쌈’

▲ MBC강원영동 ‘말쌈’ ⓒMBC강원영동

<피자의 아침>을 기억하는가. 15년 이상 근무한 PD들에겐 제법 강렬한 기억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모르는 젊은 신입 PD들에겐 종편 방송을 연상케 하는 제목일 수도 있겠다. 지금 다시 되뇌어 봐도 파격적인 제목인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쯤 등장했다면 내외부의 적지 않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시사정보프로그램이겠지만, 그 때는 재앙 같은 5개월의 방송을 끝으로 수명을 다한 저주받은(?) 뉴스 프로그램으로 잊혀져갔다.

이쯤에서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피자의 아침’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한다. 위키백과사전에 오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피자의 아침>(PD & Report's Morning)은 문화방송에서 방송했던 아침 뉴스 프로그램으로, 유일하게 아침 뉴스와 아침 교양 프로그램을 통합한 프로그램이다. 2000년 5월, <MBC 아침뉴스 2000>과 아침 교양 프로그램을 통합하여 <피자의 아침>을 신설하였지만 PD와 기자의 의견 차이, 시청률 문제 등으로 인해 5개월 만인 2000년 10월 28일부로 종영되었으며, 이후 <MBC 아침뉴스>와 <생방송 아주 특별한 아침>으로 분리되었다.” 기획의 핵심과 생멸의 역사를 담백하고 시니컬하게 잘 요약한 내용이다. PD와 기자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데 방점을 찍기 위해 ‘피자’라는 파격적인 제목을 도입했지만, 당시로서는 PD와 기자의 협업이 무척 생소하고 어려운 시도일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로 읽히기도 한다.

견원지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과 기름처럼 판이한 성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PD와 기자는 자연스럽게 섞이기 힘든 사이임은 분명해 보인다. 애매한 경쟁관계 혹은 물밑으로 흐르는 긴장관계에 있다고 얘기하면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힘들다는 PD와 기자의 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사프로그램을 여러분에게 지금 소개하고자 한다. MBC강원영동에서 제작하는 <말쌈>이 바로 그것이다. 강릉MBC와 삼척MBC가 통합해서 출범한 MBC강원영동이 올해 봄개편을 맞아서 야심차게 준비한 시사 프로그램이 <뉴스토크쇼 말쌈>이다.

▲ MBC강원영동 ‘말쌈’ ⓒMBC강원영동

PD 두 명과 기자 두 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들고 있는 주간 시사물인 <말쌈>은 타이틀에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먼저 ‘뉴스 토크쇼’라는 수식어는 이 프로그램이 제작물이라기보다는 뉴스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보도 시사물에 가깝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그러하다. 보도제작국과 보도부의 데스킹이 프로그램의 큰 틀을 좌지우지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보도팀에 소속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다.

허나 이는 PD와 기자의 협업 과정에서, 어느 한 쪽 부서에 프로그램이 배정되어야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주변부 요인일 뿐이다. 오히려 소속의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협업의 과정 그 자체에 주목해야 프로그램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출연하는 기자가 뉴스에서 취재했던 기사를 프로그램에 나와서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PD는 세부적인 추가 촬영과 취재 그리고 전체 구성을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업무분장이 이뤄지고 있다. 두 직종이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는 바람직한 시스템이 돋보인다고 평하고 싶다.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황지웅 PD의 이야기는 이런 의미에서 솔직하고도 용기 있다.
“개인적으론 기자와 PD가 협업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 더 나아가서는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봅니다. 모든 지역 방송사가 그렇듯이 점점 지역방송의 설자리가 축소되어가는 지역MBC의 현실에서, 시사제작 프로그램이 기자저널리즘이냐, PD저널리즘이냐 따지고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 MBC강원영동 ‘말쌈’ ⓒMBC강원영동

찬밥 더운밥 가리는 것이 사치라는 이야기로 들리고,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말도 떠오른다. 좋은 결과물의 콘텐츠만 확보할 수 있다면 과정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결연하고도 처연한 지역방송 PD의 비애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들었다면 나의 감정이입이 과한 것일 수도 있겠다.

‘말쌈’이라는 단어도 프로그램을 뜯어볼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로 작용한다. ‘말’은 훈민정음에서 가져온 고어이다. 여기에 시청자의 말씀과 건강한 토론을 기대하는 말싸움 그리고 지역사회의 통합을 바라는 ‘쌈’까지 버무렸다는 제작진의 네이밍 전략이 유쾌하게 와 닿는다. ‘말쌈’에 내포된 이런 이미지들은 자연스럽게 토크와 논쟁으로 이어지는데, 이쯤에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바로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들이다. 취재와 팩트는 없고 말과 구호만 난무하는 토크의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종편의 시사토크프로그램들이 한국 방송계에 끼친 폐해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임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언뜻 들으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기 위한 종편의 선정적인 제목처럼 들리는 ‘말쌈’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지한 취재와 절제된 토크가 잘 버무려진 전혀 새로운 형태의 시사 프로그램이 온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여 종편스러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말쌈>을 채우는 코너도 풍성하다. 말 그대로 쌈을 한 입에 털어 넣는 그런 맛이다. 한 주간 뉴스 중 주목할 만한 이슈를 정리해 보는 ‘주간 뉴스 브리핑’, 기자들이 심층 분석하는 핫 이슈를 다루는 ‘뉴스 돋보기 한발 더’ 그리고 지역의 가장 궁금한 인물과 나누는 대담 ‘말쌈 이슈’로 55분이 꽉 채워진다. 시사에 매거진의 성격을 더한 알찬 프로그램이 <말쌈>인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풍성해질수록 제작진의 땀방울이 더 굵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지역PD의 운명이다. 하현제 PD의 이야기는 열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소탈하게 전해준다.
“그나마 살인적인 밤샘은 줄어들었지만, 가편집뿐만 아니라 화면 후반 작업도 피디 혼자 비선형편집기에 매달려 해결해야 하다 보니 퀄리티가 많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출연 기자가 주도적으로 원고를 작성하고 출연까지 해내야하니 데일리 뉴스를 커버해야하는 기자들에게 업무 가중이 심한 편입니다.”

▲ MBC강원영동 ‘말쌈’ 코너 뉴스돋보기 한발 더 ⓒMBC강원영동

지역PD의 애환이야 이 지면을 통해서 수없이 반복됐던 이야기여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지역기자의 고충까지 듣는 것은 처음이어서 색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없이 잇몸으로 버티는 그 노력이 눈에 선하다. 또한 동료 기자의 아픔까지 고민하는 피디의 마음 씀씀이도 애틋하다. 아마도 그만큼 PD와 기자의 팀워크가 뛰어나다는 방증이 이런 인터뷰 답변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종편의 시사는 넘쳐나지만 지역의 시사는 빈곤 하한선 부근을 헤매고 있다. 지역 시사 프로그램의 아사 상태가 이어지는 이유는 인력과 제작비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겠지만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태생적 원인이 있다. 바로 아이템의 부족이다. 청와대도 국회도 재벌도 연예인도 없는 척박한 지역에서 시사 아이템을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서 선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말쌈>은 지역과 중앙의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묶어내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역이라고 지역에 국한된 아이템만 다루어야 한다는 막연한 선입관에서 벗어나 중앙과 지역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들을 과감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원전’ ‘메르스’ ‘평창동계올림픽’ 이런 아이템들은 중앙의 시사 프로가 다룰법한 전국적 이슈이다. 하지만 지역의 관점에서 이 주제들에 접근하고 분석하다보면 전국적인 이슈가 지역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틀과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과감한 아이템 선정이 <말쌈>의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 지점이다. 덧붙여서 이런 굵직한 아이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지는지도 하현제PD의 입을 빌어 소개한다.
“보도국장, 보도기획담당, 보도1․2부장과 담당PD가 회의를 거쳐 아이템을 선정합니다. 담당CP와 보도국장이 해당 기자와 논의해서 정하거나 담당 피디가 역으로 건의해서 정하기도 합니다. 뉴스로 나간 아이템 중 더 알릴 사연과 필요성과 시의성이 있는 아이템인가라고 늘 고민하면서 선정하고 있습니다.”

▲ MBC강원영동 ‘말쌈’의 코너 이슈 피플 ⓒMBC강원영동

이제 첫 발을 디딘 <말쌈>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척박한 지역시사의 한계를 뚫고 강원 영동의 구석구석까지 깊게 뿌리 내리기를 기원해 볼뿐이다. 지상파의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시사 프로그램도 그 명맥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요즘이다. 더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종편의 시사가 온 종일 채널을 도배하는 수준에 이른 한국 방송계의 현실 앞에서 <말쌈>이 부여받은 건강한 지역시사의 존립 가능성의 성공 여부는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는 책무일 것이다. 분투와 건승을 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끝으로 황지웅 PD의 꿈을 여러분과 공유한다.

“모처럼 학예회에 나온 유치원생 마냥 열심히 일 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뉴스가 의미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저녁에 집에서 보는 뉴스는 모두가 이미 낮에 회사 컴퓨터나 식당 TV에서 혹은 출퇴근길 스마트폰에서 본 것들입니다. 이런 미디어 세상에서 약간은 촌스럽지만 깊은 성실함으로 좀 더 다가가는 방송이 되고 싶습니다.”

▲ 김욱한 포항MBC PD

*필자 김욱한 PD는 포항MBC 편성제작센터장이면서 PD연합회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변방에서 낮게 나는 부엉이'라는 황당한 닉네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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