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승만 정부 망명 보도, 이번엔 ‘중징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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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On Air] 굴욕적 반론 지적에 이사회 보도 개입 논란 이어 방심위 제재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12일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를 열어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초기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고 보도한 KBS <뉴스9>(6월 24일 방송)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KBS <뉴스9>는 이날 방송에서 한국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한국 정부가 6만 명 규모의 망명 정권을 세우고 싶은데 가능한지 일본 야마구치현 지사에게 문의했으며, 야마구치현이 한국 피난민 캠프를 세울 계획을 미군정에 제출하고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KBS는 이 같은 내용이 적힌 야마구치현의 역사 기록 문서를 KBS 취재진이 처음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KBS <뉴스9>의 이 보도를 두고 사실 입증이 되지 않은 일본의 사료를 근거로 왜곡된 내용을 방송한 것이며, 야마구치현의 기록에선 망명정부 요청이 전쟁 초기 상황으로 묘사돼 있음에도 ‘1950년 6월 27일’로 표기했고, 1996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이 일본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을 각각 인용해 해당 내용을 전달한 바 있음에도 KBS에서 최초보도라고 방송을 한 만큼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과 제14조(객관성) 위반이란 민원이 제기됐다. 이에 방심위는 KBS <뉴스9>의 해당 보도가 일련의 심의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살폈다.

■ 일시: 2015년 8월 13일 오후 3시 20분
■ 참석자: 방송심의소위원회 소속 위원 5인 전원 (김성묵 부위원장(소위원장), 장낙인 상임위원, 고대석·박신서·함귀용 위원) / KBS 보도국 한재호 국제부장, 김태선 기자(해당 보도 당시 국제부 데스크)

■ 관전 포인트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인 6월 27일 이승만 정부가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고 사료에 분명하게 날짜가 적혀 있는 게 아니었던 만큼 오류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는 KBS도 인정했다. 그런데 날짜에 있어 오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일본 야마구치현의 현사와 이를 뒷받침 하는 미군정 기록을 인용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자료를 보도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까. 보도 자체가 잘못된 일인 것일까.

■ 예상 위반 조항
제9조(공정성) ②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제14조(객관성)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 된다.

■ 참고
KBS <뉴스9>는 해당 보도 직후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등의 항의를 받았다. 이에 KBS 보도국 간부들은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측 인사를 만나 해명을 하고 7월 3일 기념사업회 측의 반론을 고스란히 담은 반론 보도를 내보냈다. 이를 두고 언론노조 KBS본부 등은 “굴욕적 반론”이라며 반발했지만, 이런 가운데 뉴라이트 역사학자인 이인호 KBS 이사장은 7월 6일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타진 관련 KBS 보도의 경위를 파악하겠다며 관련 안건의 상정을 위해 긴급하게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렇게 소집한 이사회는 보도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이라는 야당 추천 이사들의 반발 때문에 해당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7월 15일 KBS에서 단행된 급작스런 인사발령에서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추진 관련 보도에 책임이 있는 간부들이 무더기로 보직이 바뀌면서 KBS 내부에선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6월 24일 KBS <뉴스9>

■ 심의 On Air

- 제작진 의견진술 및 질의응답

김태선 기자: 해당 보도의 핵심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 이승만 정부가 일본 정부에 망명 타진을 위해 야마구치현 지사에게 문의했다는 게 현사에 남아있다는 걸 특파원이 찾아 보도를 했다는 점이다. 보도 이후 이승만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팩트(사실)와 관련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1950년 6월 27일이라는 부분이 현사엔 없었다는 사실을 추후 확인했다. 그래서 이승만 기념사업회 등과의 내부 협의를 거쳐 반론성 보도를 했다.
전반적인 내용에서 팩트와 관련해 큰 문제는 없지만 (보도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1950년 6월 27일이라는 부분이 잘못된 건 사실이기에 반론성 보도를 했다. 특파원이 확인 과정에서 정우종 박사(일본 교토 오타니 대학)의 도움을 받았고, 개전 당시 상황과 관련해 여러 자료와 관련한 얘기를 들었다. 이때 정 박사에게 들은 날짜가 6월 27일이었고, 이를 현사와 착각했다는 게 해당 기자의 소명이다.

함귀용 위원: 이런 내용을 보도하겠다고 한 때가 언제인가.

김태선 기자: 방송 사나흘 전의 일이다. 방송 전날 보도 개요 등을 확인했고 당일 오후 1보 원고를 받았다.

함귀용 위원: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망명을 타진했다는 부분에 대해 어떤 (사실) 검증 과정을 거쳤나. 전쟁 초기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보도라면 과연 이게 사실인지, 이전에 보도된 사실이 있었는지 등을 검증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공영방송 KBS라면 더더욱 기사 내용에 대해 객관적 검증 절차를 갖춰 보도해야 하는 만큼, 그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거다.

김태선 기자: 기존에 관련 보도가 있었는지는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으나 (보도 당시엔) 발견하지 못했다. 추후(방송 이후) 탐사보도의 기법 등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1996년에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서 단신 보도가 두 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당시 두 신문의 보도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야마구치현 지사의 회고록을 인용해 일본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에서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 것인 반면, 이번 (KBS의) 보도는 일본에서 (관련 내용이 담긴) 현사가 발견됐다는 걸 특파원이 보도한 것이다.

함귀용 위원: 현사엔 6월 27일이라는 기록이 한 마디도 안 나오는데 자막에까지 날짜를 넣어, 이 보도를 본 국민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일본에 망명가려 했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재밌는 건 (KBS가) 이 보도를 하면서 마지막에 “사실이라면, 6‧25 초기 정부의 상황이 어땠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한 부분이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 역대를 통틀어 가장 (관계가) 안 좋은 상황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발발 이틀만인) 6월 27일에 일본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내용을 6‧25 하루 전날 보도하려면 ‘사실이라면’이라는 표현을 쓸 게 아니라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관련 사료를 다 찾아보고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태도 아닌가.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상황임에도) 특파원이 기사를 써서 (6‧25 전날인) 6월 24일에 기사를 보내면 데스크에서 검증 없이 보도하는 게 KBS 체계인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성묵 부위원장: 미 국무부 자료를 보면 신성모 당시 국방장관이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대통령과 내각을 망명 정부로 일본에 세울 수 있는지 물었지만 무치오 대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일본에 이승만 정부의 망명을 타진한 건) 신 장관 개인의 의견일 뿐, 정부의 공식문서나 글로 볼 수 없다. (6월 27일이라는) 날짜의 오류 문제도 중요하지만 한 나라의 정부가 망명을 하려 한다는 건 매우 민감한 역사 문제다. 그런데 (장관 한 명의) 개인 의견이 미 국무부 자료에 남겨졌다는 걸 사실로 보는 우를 KBS에선 범했다.

김태선 기자: 리포트에서 (해당 내용을) 팩트로 확정하지 않았다.

함귀용 위원: 그러니 더 황당한 보도다. ‘사실이라면’이라는 말은 사실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런 거 아닌가. 객관성 위반에 대한 심의규정을 피하기 위한 멘트인 건가. 공영방송 KBS에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문제를 보도하면서 ‘사실이라면’이라는 말을 넣다니, 코미디도 아니고 말이다.

김성묵 부위원장: 의도성이 없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KBS이고, 일반 사건사고가 아닌 역사적 문제다. 역사적인 문제를 다룰 땐 절대적으로 검증을 해야 하고 사실에 기반 해야 한다.

김태선 기자: 그렇다. 하지만 현사를 갖고 보도를 하냐 마냐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김성묵 부위원장: 역사적 문제이니 검증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국방장관이 개인 생각으로 논의했을 순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 끌어올리는 건 위험하다.

함귀용 위원: 6·25 동란을 전공한 역사학자 90% 이상이 반(反) 이승만 시각을 갖고 연구도 많이 했는데, 이들에게 조금만 물었어도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 타진을 했다는) 다나카 야마구치현 지사의 말에 대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종에 쫓기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역사적 사실을 검증해 보도할 땐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김태선 기자: 1996년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보도는 다나카 지사의 회고록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이 보도(KBS 보도)는 현사를 확인해 찾아서 한 것이다.

장낙인 상임위원: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KBS의 해당 보도는 야마구치현의 현사를 확인했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김태선 기자: 그렇다.

장낙인 상임위원: 보도 말미 “사실이라면”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도 진위를 판명할 순 없지만 현사에서 자료를 찾아냈다고 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본 고지도에서 독도를 한국명으로 표기한 걸 발견하면 보도를 할까.

김태선 기자: 해야 하지 않을까.

장낙인 상임위원: 사실관계와 별개로 언론이 사료가 될 만한 어떤 자료가 나오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보도하는 게 일반적 관례다. 이 보도는 그런 의미에서 한 게 아닐까.

함귀용 위원: 현사를 확인했으면 현사에 적힌 내용만 보도했어야 한다.

장낙인 상임위원: 이미 그 부분은 (여러 차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나.

김성묵 부위원장: KBS 뉴스의 시청률은 다른 회사(방송사) 뉴스 시청률의 몇 배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KBS에 거는 신뢰가 크다는 거다. 그런 만큼 확인을 하고 또 해야 하며, 특히 역사 문제는 정확히 짚어야 한다.

▲ 6월 24일 KBS <뉴스9>

-심의 의견

박신서 위원: 기자가 의욕이 넘쳐 보도한 건 인정하지만 예민한 사항에 대해, 특히 전쟁 발발 이틀 뒤라는 건 잘못이다. ‘권고’(행정지도) 의견이다.

함귀용 위원: 공영방송 KBS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정부의 대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는 건 좋지만 역사를 왜곡해 이승만 정부를 폄하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객관적 사실과 너무 틀린 보도를 해 실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관계자 징계’(벌점 4점) 의견을 내고 싶었지만 후속으로 (반론) 보도를 했다는 점을 감안해 ‘경고’(벌점 2점) 의견이다.

장낙인 상임위원: 사실 관계가 맞는가에 대한 부분을 떠나 일본 현사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날짜와 관련한 부분은 분명한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현사에 그렇게 나와 있는 것처럼 보도한 건 문제인 만큼 ‘권고’ 의견이다.

고대석 위원: 기자가 어떤 자료를 발굴하면 처음 확인하는 게 사실 여부와 다른 데서 보도를 했는지 여부이다. 보도에선 (KBS) 취재진이 처음 확인했다며 보도를 했는데 이미 1996년에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서 보도를 했다. 확인을 게을리 한 보도로 문제가 있는 만큼 ‘경고’ 의견이다.

김성묵 부위원장: 의도성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역사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본 미숙함에 경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KBS이기 때문에 조금 더 추궁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저도 ‘경고’ 의견이다. 다만 제안하고 싶은 건 각자 제재 수위를 조금씩 올리고 내려서 합의를 도출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의) 통일된 의견이 경각심을 주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모두 동의) 그럼 ‘주의’(벌점 1점) 5인으로 합의하겠다.

■ 심의 결론: ‘주의’ 5인(김성묵 부위원장, 장낙인 상임위원, 고대석‧박신서‧함귀용 위원) ∴ ‘주의’ 5인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회부하면 전체회의에서 방송심의소위원회 의견을 존중해 결론을 낸다.

■ 적용 위반조항: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 제14조(객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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