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 띄우기에만 바쁜 지상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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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지상파 방송 남북협상타결 보도, 원칙·43시간·유감에 초점

군사적 충돌 위기가 고조됐던 남북 간 긴장이 지난 25일 새벽 양측이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며 해소됐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결과 북한이 지뢰폭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준전시상태를 해지하고 남측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이례적인 유감 표명, 그리고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이번 국면에서 정부는 합의 외의 성과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지난 6월 메르스 여파로 30%대로 하락한 이후 석 달만에 40%대로 진입했다.

반면 ‘도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과 공동보도문에서 보인 북한의 모호한 유감 표시, 재발방지책의 부재는 아쉽다는 평가다. 정부는 북한이 이례적으로 ‘사과’를 했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상파 뉴스, 특히 KBS와 MBC 메인 뉴스는 긍정적 평가에는 적극적이나 미흡한 지점에 대에서는 소극적 보도태도를 취하고 있다.

▲ 남북 공동보도문 전문.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 6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사고로 우리 측 부사관 2명이 다리 절단 부상을 당하면서다. 합동참모본부는 해당 사고가 북한군의 목함지뢰 매설로 인한 도발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지난 10일부터믐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하고 대응에 나섰다.

이에 북한은 국방위원회 정책국 담화 통해 지뢰 도발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부인하며 지난 20일 DMZ 내 경기도 연천군 야산과 DMZ 군사분계선 남쪽에 포격을 시도했다. 이후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긴장국면이 조성됐으나 지난 22일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며 25일 협상이 타결,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총 6개 항목으로 구성된 공동보도문 내용 중 정부가 실질적으로 북한의 ‘사과’라고 말하는 2번째 항을 보면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라고 나와 있다.

유감을 표명한 주체가 북측이기는 하나 이번 사태를 ‘지뢰 도발’이 아니라 ‘지뢰 폭발’이라고 명시했으며,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이라고 했을 뿐 이에 대한 지뢰매설에 대한 북측의 책임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26일 <경향신문> 3면 <‘유감’ 표현 이례적이나 ‘확실한 사과’와는 거리> 기사에서 박성진 안보전문기자는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는 표현은 당초 남측에서 요구한 ‘사과’, 특히 ‘책임자 처벌’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측지뢰’로 남측 군인이 부상을 당했다는 표현도 아니기 때문”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온 ‘확실한 사과’를 충족시켰느냐에 대해선 논란과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합의문에 재발방지라는 명시적인 문구는 없지만 어떤 표현보다 더 중요하게 재발방지의 장치를 우리가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했으나 공동보도문 전문에는 남북 간 재발방지에 합의나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도 과연 무엇을 비정상적인 사태이며 어디까지 비정상적 사태로 규정할 것인지 등 표현자체가 모호해 향후 분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은 26일자 2면 <남, 유감 이끌어 냈지만 재발 확약 못 받아> 기사에서 “정부도 북한의 유감 표명으로 초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재발 방지에 대한 확약이 없어 절반의 성과라는 지적을 받는다”며 “일각에서는 북한의 남측 비난과 도발, 유감 표명으로 이어지는 반복적 패턴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 KBS <9뉴스> "북, 13년 만에 유감 표명…첫 합의문 명기" 리포트. ⓒ화면캡처

이에 반해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지난 25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는 대대적으로 해당 소식을 다루며 북한의 ‘유감’ 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 고수’, 그리고 43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협상 등 정부의 성과와 노력에 중점을 둔 보도태도를 보였다. KBS의 경우 특집으로 <뉴스9>를 마련했다. 그러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공동보도문을 직접 낭독한 뒤 “북한이 지뢰 도발에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해 ‘합의문 과장 논란’까지 나왔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관련 리포트를 살펴보면 마라톤 협상과 관련해 △KBS <뉴스9> “43시간 마라톤 협상…남북 6개항 합의”(1번째 리포트) △MBC <뉴스데스크> “기싸움 계속된 ‘무박 4일’ 43시간의 피말린 협상”(9번째 리포트) △SBS <8뉴스> “‘무박 4일’ 길고 긴 산고…‘전쟁’ 운운 고성도”(14번째 리포트)·“토막잠에 배달음식 끼니…힘겨웠던 밤샘 회담”(15번째 리포트), 박근혜 정부의 원칙과 관련해 △KBS “대북정책 ‘원칙 고수’ 통했다…“국민 단합 큰 역할””(8번째 리포트) △MBC “박 대통령 “도발 악순환 끊기 위해 원칙 지킨 결과””(6번째 리포트) △SBS “박 대통령 “원칙 지킨 결과”…승부수 통했다”(8번째 리포트) 등 3사가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 MBC <뉴스데스크> "사과 아닌 유감? 정부 “외교문서에서 유감은 사과 의미”" 리포트. ⓒ화면캡처

다만 논란이 되고 있는 ‘유감’의 의미, 그리고 재발방지책의 부재에 대해서는 KBS·MBC와 SBS의 보도 태도가 다른 모습을 보였다.

KBS <뉴스9>는 4번째 리포트인 <북, 13년 만에 유감 표명…첫 합의문 명기>에서, MBC는 톱리포트인 <남북 ‘6개 항’ 합의, 北 지뢰폭발 유감 표명>에서, SBS는 2번째 리포트인 <사과 대신 ‘유감’ 썼지만…의미있는 한걸음>에서 각각 북한의 이례적인 유감 표명을 조명했다.

KBS는 “이후 13년 만에 이뤄진 유감 표명은, 방식에서도 전과는 크게 달랐다”며 “주체를 ①북한으로 명시해서, ②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남북이 함께 작성한 ③합의문 형식으로 유감을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얘기다”라고 보도했다.

MBC는 유감 표명에 대해 “그동안 지뢰도발 사실 자체를 공개적으로 부인했던 북한의 유감 표명은 사실상의 사과로 받아들여진다”며 북한의 유감이 ‘사과’를 뜻한다고 보도했다. 또한 14번째 <사과 아닌 유감? 정부 “외교문서에서 유감은 사과 의미”> 리포트에서는 “사실상 사과를 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는 외교 문서에서 ‘유감’ 표명은 사과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북한이 사과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유감 표명은 사실상 지뢰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가 분명하다며 이론을 일축했다”고 보도하며 다시 한 번 ‘사과’라는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유감 표명 부분에 관련해 SBS는 KBS와 MBC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 SBS는 “사과 대신 유감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유감 표명의 주체는 북한이 분명했지만, 지뢰 도발이 아닌 폭발로 표현됐고, 지뢰 폭발의 주체는 명시되지 않았다. 지뢰 도발에 이어 지난 20일 발생한 포격 도발은 공동보도문에 언급되지 않았다”며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해왔던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것 자체가 사과의 뜻인 동시에 지뢰도발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재발방지가 미흡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지상파는 외면했다. 오히려 정부의 발표와 맥을 같이 했다.

KBS는 4번째 리포트 <북, 13년 만에 유감 표명…첫 합의문 명기>에서 “우리 정부는 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할 경우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를 통해 재발 방지책도 확보했다는 평가다”라고 보도하는가 하면, MBC도 6번째 리포트 <박 대통령 “도발 악순환 끊기 위해 원칙 지킨 결과”>에서 “또 북한이 도발에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이번 일이 향후 남북 간 신뢰 형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 SBS <8뉴스> "사과 대신 ‘유감’ 썼지만…의미있는 한걸음" 리포트. ⓒ화면캡처

SBS의 경우 3번째 리포트 <대북 방송 조건부 중단…도발 방지 장치 될까>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표현이 모호하고 남북 간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 같은 지상파의 보도 태도에 대해 KBS 기자 출신의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26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희생과 안보불안을 담보로 겨우 제자리로 가는 게 원칙론의 승리라면, 그것이 무엇을 위한 원칙론인가”라고 비판했다.

최 기자는 이어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칼로 선을 긋듯이 누가 이기고 지고 말하기도 힘들고, 그렇게 따지기보다는 타협하고 합의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남북평화에 주효하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며 “왜 지금까지 아무 것도 안한 정부에 대해 기자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지, 그런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 먼저 대답하는 보도나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 기자는 “지금 이런 보도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빙자해서 정부의 정책적 과실, 허송세월한 시간, 국민들의 불안과 다친 사람들의 희생을 다 덮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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