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안주식 29대 한국PD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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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은 한국 중국 러시아 세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각 신문은 모두 일색으로 한국 외교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진에서 희망과 기대보다는 ‘사라진 언론 자유의 시대’라는 우려가 떠올랐습니다. 세 지도자는 다른 여러 공통점도 있지만 모두 그 나라에서 자유로운 정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지도자들입니다. 이 분들이 21세기의 글로벌 정치를 앞장서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언론인으로서는 암울하다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언론을 보장하지 않는 이 세 국가가 20세기 초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이란 망령으로 빠져 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과연 있을까요? 비록 설익고 과장된 걱정과 우려일 수는 있어도 그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듯 자유언론의 부재는 파시즘의 프롤로그이니까요.

▲ 한국PD연합회 제29대 회장으로 안주식 KBS PD협회장이 취임했다. ⓒPD저널

결국 이 세 지도자의 사진은 상징적으로 한국의 언론인이 가져야할 자유언론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한중러가 새로이 펼칠 외교의 새 판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넓은 국토? 많은 자원? 제조업 기술력?

PD연합회장으로 취임해서 하는 공치사가 아니라, 저는 단연코 ‘언론 자유를 아직까지 생명처럼 여기고 있는 강력한 언론인 단체가 있다’는 사실이 세 나라 사이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나라의 어느 단체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내셔널리즘의 창궐이나 군사대결주의라는 파국의 견제장치가 될 수 있을까요? 독재나 어둠의 리더십, 신비주의 통치방식이 아니라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치구조를 갈망하고 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언론인 단체는 변화하고 있는 세계사의 정치지형을 고려해서도 우리가 견지해야 할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더욱더 필요한 기치입니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처럼 저는 PD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협회의 일을 하면서 언론 자유, 특히 프로그램 제작자율성에 대한 명분과 가치, 그 ‘가오’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그 ‘가오’가 떨어지는 시기도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탄압은 점점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영방송에 대한 간섭과 탄압은 그 심각성이 매해 더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이사회 선임과정에서도 기존 이사진 중 제작자율성을 성공적으로 가로막은 이사들이 장학생으로 선발돼 2연임,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공영방송사의 사장들은 철지난 국가주의 방송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시대에 뒤떨어진 언론관에 아부를 하거나 편향적인 정치보도를 통해 정부여당에 유리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일부 종편들의 선정주의적 보수 편향 보도까지 더하면 보수여당의 영구집권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라는 것이 우리 앞의 현실입니다.

긴 싸움에서 작년 KBS의 사장 퇴진투쟁의 성과가 있기도 했지만 PD연합회를 비롯한 언론단체들이 조금씩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PD연합회는 보다 효과적인 제작자율성 수호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협회원들과 여러 언론시민단체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폐지운동을 제안합니다. 국가기관이 직접 검열기구를 두고 방송사를 관리하는 이 후진적인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되어선 안 됩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최근에는 일부 인사들에 의해 자신들만의 반헌법적인 극우사관의 기치아래 프로그램을 재단하는 이데올로기 전투의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PD연합회는 방송통신심의위의 폐지를 위해 자발적 불복종운동, 자율적 심의기구의 설립추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 이를테면 방송대상 출품거부와 같은 실질적 행동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와 학계, 여러 언론단체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야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야당부터 정권획득 이후 방송사를 정치권의 휘하에 둘 수도 있다는 탐욕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방송사에 ‘국장책임제’와 같은 제작자율성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운동 또한 펼치겠습니다. 지난 언론탄압 사례를 살펴보면 사문화되거나 형식주의적인 사규나 내규를 동원해 제작 현업 피디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 라는 등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사규의 적용이 권성민 PD의 해고 등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저희들은 저희들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특히 국장직선제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국장책임제’는 부당한 경영진의 간섭을 막고 현업 피디들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우리 PD연합회 내부로 잠깐 돌려볼까 합니다. PD연합회 조직은 87년 자유언론 수호의 기치를 들고 출범한 이래로 몇 번의 조직적 확장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지역민방의 참여, 독립PD들의 가입 등이 그 사례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조직을 대폭 확장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PD연합회가 아직까지 가입시키고 있지 않은 PD들은 바로 케이블과 종편 PD들입니다.

이제 이들에게도 연합회의 문을 적극적으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의 가입이 PD연합회의 창립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우려보다 변화된 방송 환경을 받아안아야 할 때입니다. 더 큰 조직의 확장을 통해서 더욱 힘 있는 PD연합회가 될 때에만 우리 협회의 창립정신도 더 온전히 보존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연합회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그 세부적 지침을 마련하고 빠르면 이번 달부터 협회장인 저부터 종편과 케이블 등에 종사하는 PD들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조직 확장과 관련 물론 독립PD협회를 통해 많이 가입돼있긴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가입하지 않고 있는 여러 기획사, 제작사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방송제작 PD들이 또 있습니다. 이들 가입에도 힘쓰겠습니다. 특히 이번 MBN사태에서 보듯이 방송사 내 PD들 간의 갑을 관계는 여전히 후진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리강력의 제정, 제재조항 마련 등을 통해 우리 협회 내에서 이러한 사건을 막기 위한 제도 설립에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독립PD들이 우리 협회원으로 안심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독립피디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PD연합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내부 과제는 PD교육원의 전면적 개혁문제입니다. 현재까지 많은 성과를 낳기도 했지만 많은 비판도 받고 있는 해외방송인 연수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연합회와 교육원의 통합 계획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통합 작업 완료 목표는 내년 말로 하고 제 임기기간 중 그 세부계획을 세우고 단계별로 추진하겠습니다. 일단계로 올해 안에 사무실 통합부터 추진할 계획입니다.

1년 동안 박건식 연합회장님을 옆에서 지켜봐오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한중포럼, 한중일포럼, 넥스트라디오 포럼 등 여러 PD들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키면서 PD들의 결속력과 미래 비전에 대한 고민의 장을 잘 꾸려오신 점은 박 회장님이 아니셨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PD연합회의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이를 잘 가꾸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PD저널의 전면적인 온라인화와 대대적인 개편도 정말 커다란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묵묵히 이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 저였더라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박 회장님이 이루신 성과 잘 계승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리도 권력인지 무지막지하게 긴 취임사를 제 맘대로 길고 긴 시간 동안 들려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무자비한 권력남용을 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2015년과 2016년 언론 자유도 수호하고 우리 PD들의 위상도 한 단계 높이는 PD연합회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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