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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억울하지만 ‘칼라바’ 내보낼 순 없었다”

[인터뷰] 독립PD 인터뷰 사례집 엮은 최선영·김수영 독립PD 김연지 기자l승인2015.09.10 06: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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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5일 오전 한국독립PD협회가 MBN의 독립PD 폭행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D저널

쌍욕을 들었다. 따귀를 맞았다. 무릎을 꿇고 하이힐에 따라준 술을 받아서 마셨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일을 잘렸다. 모두 독립PD들의 입에서 나온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다.

부당한 처우에도 침묵해야 했던 독립PD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사례집이 나왔다. 독립PD 폭행사건에 대한 MBN의 사과를 받아낸 데 이어 10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간된 이번 사례집에는 독립PD들이 그간 겪어온 수모와 눈물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갖가지 방식의 인권 침해부터 불공정 계약, 부당한 제작 침해까지···. 어떠한 법적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 독립PD들이 겪은 방대한 피해 사례를 모은 이 자료집은 10일 우상호 의원실을 통해 배포될 예정이다.

이번 사례집 원고를 작성한 최선영 독립PD, 사례집에 수록된 인터뷰를 도맡아 진행한 김수영 독립PD와 지난 9일 밤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운 작업이었을텐데 두 분이 총대를 맸다. 이번 사례집을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 계기는.

김수영 PD: 독립PD들은 다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해서 불만이 있어도 못 싸우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난 7월말까지 하던 프로그램을 끝내고 잠시 좀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마음 먹고 있던 차였다. 마침 이런 일이 생겨서 동참하게 됐다. “운명적으로 쉬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최선영 PD: 나도 마찬가지다. 다들 글 쓸 여력이 되지 않다보니 종편 제작관행과 관련된 논문을 쓴 내가 겸사겸사 하게 되었을 뿐이다. 난 정리와 논리를 제공했을 뿐 수고로운 일은 김수영 PD, 김영미 PD가 다 했다. 김수영 PD는 사례자들 만나 인터뷰를 하고, 김영미 PD는 우상호 의원실을 뚫고. 나는 늘 입으로만 싸움의 방향을 전달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다 못 쓴 얘기가 많다. 국정감사가 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없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언론노조와 함께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간단히 자유의견을 쓰는 항목이 있었다. 거기 정말 절절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왔다.

▲ 독립PD에 대한 인권침해, 불공정 계약, 부당한 제작 침해 사례 인터뷰 등을 모아 발간한 <종편 및 방송사 독립제작 관행 실태조사> 자료집. ⓒPD저널

-설문조사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의견이 들어 왔다는게 놀랍다.

최선영 PD: 설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의견은 공정 계약 문제였다. 제작비 정상화와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에 대한 이야기다.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되니 인격적으로도 무시당하고 인권 침해 사례들도 발생하는거라고 생각한다. 다 얽혀있는 문제라고 본다.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에서 제작비도 터무니없이 삭감하는 것이고. 이번에는 공개하지 않은 나머지 설문조사 결과도 추후 협회에서 취합·분석해 보완할 예정이다.

-말한대로 이건 누적되어온 문제인데, MBN 사태가 있고나서야 공론화된 이유는?

최선영 PD: 나는 2006년 독립PD협회가 처음 생길 당시부터 창립 회원이었다. 나 또한 이런 불공정한 관행의 피해자로서 협회 결성에 힘을 쏟았다. 당시엔 그 동안 참았던 걸 다 이야기하자는 움직임이 대세였지만, 사실상 쉽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PD는 촬영현장을 다녀야하기 때문에 물리적 시간이 없고, 계약 관계가 워낙 복잡하다. 개인사업자 형태, 제작사 고용형태, 소규모 제작사 사장, 바우처 PD 등 다양하다.

▲ 지난 7월 31일 MBN 사옥 앞에서 최선영 PD가 폭행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독립PD협회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는 말인가?

최선영 PD: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라고, 우리끼리는 얘기해도 막상 누군가가 용기를 내면 낙인이 찍히지 않나. 최근에만 해도 종편 PPL 관련한 문제가 보도된 후에 그 얘기를 유출한 사람을 색출하느라 난리가 났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들이 증언대회나 사례집에도 나왔다. 워낙 바닥이 좁으니 금방 도드라진다. 어느 방송사인지 어떤 프로그램인지. 그래서 나서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컸다.

-제작구조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나서기 어려웠다는 얘기로 들린다.

최선영 PD: 그렇다. 그래서 그 동안은 싸움보다는 우리 안의 동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진모영 PD가 성과를 이루기도 했고.

김수영 PD: 실제로 세계적인 다큐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등 선배PD들의 활동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들의 위상이 높아졌고, 그것도 이번 싸움에서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최선영 PD: 실력을 갖춰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는 움직임을 독립PD협회에서 잘 만들어 낸 거다. 하지만 이번 MBN 사태처럼 인권과 관련된 문제는 또 다른 맥락이니 싸움이 필요한 일이다. 그 동안 독립PD협회가 여러 큰 공을 많이 세웠지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작비가 삭감되면 독립PD협회차원에서 나서서 방송사와 협상하거나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조직화되지 못했고, 종편 개국도 아무 준비없이 속수무책으로 맞이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MBN 사태로 내부에도 큰 변화가 생긴 셈인가.

최선영 PD: 김영미, 복진오 PD를 비롯한 독립PD들이 독립PD협회 산하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국회를 문턱이 닳도록 다니면서 호소하고 전방위로 압박하는 등 정말 큰일을 했다.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고 싶다. 한편으로는, 설문조사를 하면서 깜짝 놀랐는데, 자유의견에 정말 진지하고 긴 글들을 많이 내주셨다.

-이렇게 발언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했나?

최선영 PD: 설득과정이 있었다. 나처럼 이제 방송 연출을 안 해서 자유롭지 않으면 정말 힘든 일이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떄문이다. 만약 나도 방송연출을 하고 있었다면 이런 자료집을 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김수영 PD: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평균 15년차 이상의 PD들로 구성된 것도 그런 이유다. 개인정보 보호를 절대적으로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연차가 있다보니 각오하고 나온 거다. 정말 열 받아서 말하고 싶어한 분도 있었지만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를 재차 강조한 분들도 있었다. ‘갑’이 무섭다며...

▲ 지난 8월 7일 MBN 사옥 앞에서 김수영 PD가 폭행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독립PD협회

그래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제보는 들어와도 막상 인터뷰 요청을 하면 피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쉽지 막상 하려고 하면 겁나지 않겠나. 그 분들 덕분에 아마 더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최선영 PD: 정말 어렵게 용기를 낸 분들이다. 혹시라도 방송사에서 이 분들을 색출하려 하거나 불이익을 주려고 하는 움직임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없기를 희망한다.

-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MBN 사태가 일어나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까?

최선영 PD: 정말 씁쓸했던 게, 인터뷰에 보면 오래된 이야기부터 아주 최근의 이야기들이 두루 나온다. 예를 들면 하이힐 사건은 꽤 오래전 이야기인데, 쌍욕사건은 올해 3월에 있었던 일이다. 그 기간 동안 바뀐 게 없다. 그래서 일단 독립PD의 법적 지위보장, 노동관련 인권보장 같은 것들이 명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충격적인 일들이 많다. 취재 과정에서 PD가 위험한 일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어도 방송사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고. 인터뷰에 보면 '길들여진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참 아픈 이야기다. 그러려니, 하고 으레 순응하는 것.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김수영 PD눈물을 흘리시는 남자 PD들도 있었다. 그걸 모른척하고 담담히 인터뷰를 이어가려니 힘들더라.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깨달았던 게 있었다. '아... 나도 갑을관계가 체화돼서 갑질인지도 몰랐던 게 많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졌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이 일을 했어야 했나 의문도 들었다.

-사례집에도 나온 ‘길들여진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나?

김수영 PD: 학습효과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작건 크건 갑질의 예는 너무나도 많다. 막상 물어보면 난 그런 경험 없다고 한다. 그러다 누군가 한 명이 난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말을 시작하면 너도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잊고들 싶었을 것이다. 하이힐 사례나 쌍욕 CP 사례는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다들 한 번씩은 당했을 것이다.

-이번 사례집과 국감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김수영 PD: 변화다. 스스로의 변화. 독립PD들이 맞는 걸, 부당한 걸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방송사 내부에 있는 분들도 스스로 내가 갑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보게 되는 것. 크게는 언론구조의 개혁일테고.

최선영 PD: 2008년에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도 프리랜서 방송인 노동실태에 대한 사례집을 낸 적이 있다. 중요한 연구였지만, 당시에는 추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이번 사례집을 통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동력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번에는 사례 조사를 너무 급히 실시했는데, 해보고 나니까 앞으로 차근히 준비하고 철저하게 익명을 보장하면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국감으로는 최소한 방송사 내부에 독립제작사 및 독립PD들이 불공정한 거래나 인권침해를 신고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강제하길 원한다. 외부 인사를 포함한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독립제작사 및 독립PD들과의 계약 매뉴얼(표준계약서)을 공개할 것.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사과정에 대한 본사의 기준, 그러니까 시사는 몇 시에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하겠다는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 지난 7월 23일 김영미 분쟁전문 독립PD가 MBN 사옥 앞에서 독립PD 폭행사건을 규탄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PD저널

-그런데 방송사 내부적으로 그런 자정 기능을 갖추려면 제도적 문제와 함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최선영 PD: 그렇다. 이게 결국 제작비 문제로 귀결되는데, 예컨대 한 편을 2~3주에 한 번씩 여유롭게 제 임금을 받으면서 일한다고 하면 밤샘작업을 할 일도 시사과정에 쫓길 일도 없다. 그런데 제작비가 쪼그라드니까 1주에 한 편씩 무리해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장비도 제대로 투입하지 못하고, 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사례집이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수영 PD: 일단 기록화 한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귀중한 자료다. 하지만 앞으로 갑질이 사라지느냐, 구조가 개선되느냐, 아니면 더 악랄해지느냐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조연출 시절 비정규직 문제로 싸웠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땐 너무 힘이 없었고 독립PD협회도 없었고, 우리끼리 소리 없는 외침으로 묻혔다. 힘없이 무참히 무너졌다. 그래서 이번 일도, 과연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후배들이 억울할 때 기댈 선배들과 협회가 있고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도 큰 업이라고 생각한다.

-싸움에서 실패하면서 상처도 많았겠다.

김수영 PD: 아팠다. 우린 그랬다. 하지만 아프고 억울해도 방송을 멈추지 못하고, 진흙탕인걸 알면서도 돌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그거였다. “칼라바를 내보낼 순 없잖니..” 책임감.

-오랜 기간 쌓여왔지만 해결의 기미가 없었던 문제가 폭력사건으로 이슈화가 된게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MBN사태로 변화의 단초 같은 게 생긴 셈이다.

김수영 PD: 그래서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이번 일로 이슈화가 되었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부끄럽기도 하고.. 우리가 그동안 잘못 살아와서 이런 일이 답습되고 있는 것이니까. 조연출로 싸웠던 시절엔 관심 갖는 언론도 적었고 힘이 되어 준 외부인들도 적었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주니 더 희망적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김수영 PD: 여러모로 갈 길이 멀지만.. 희망적인 건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면서 오늘의 이 싸움을 기억할거라는 것이다. 이번 일이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최선영 PD: 앞서 말한 것처럼 최소한 방송사 내부에 독립제작사 및 독립PD들이 불공정한 거래나 인권침해를 신고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강제하길 원한다. 외부 인사를 포함한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독립제작사 및 독립PD들과의 계약 매뉴얼(표준계약서)을 공개할 것.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김연지 기자  onmymind@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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