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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은 PD의 뽕짝이 내게로 온 날]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긴 머리카락을 보니 머리끝이 갈라져 푸석푸석해 보인다. 여름내 묶고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는데 모처럼 풀어 내린 긴 머리에서 유독 그 부분만 눈에 밟힌다. 머리를 손질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하고 보니 좀 실없다. 나는 누군가의 머리칼에 대해 조언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지금 대머리다.

▲ DJ DOC 4집 앨범.

이렇게 뒤통수가 예뻐야만 빡빡 미나요
나는 뒤통수가 안 예뻐도 빡빡 밀어요
그러나 주위사람 내 머리를 보며 한마디씩 하죠 너 사회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 반짝 대머리 옆머리로 속알머리 감추려고 애써요
억지로 빗어 넘긴 머리 약한 모습이에요
감추지 마요 빡빡 밀어 요요요
(DJ DOC 노래 / <DOC와 춤을> 가사 일부)

1차 항암 후 부작용으로 인한 구토와 어지럼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면서 삭발을 단행했다. 후유증이 너무 심해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감상 따윈 챙길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이 보통 작업이 아니었을 터, 차라리 산뜻하게 밀어버린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종양내과 담당교수는 첫 진료부터 “이번 항암은 반드시 머리가 빠진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많은 환자들이 항암을 시작하면서 머리가 빠지는지 수없이 질문했을 것이고, 외모의 변화에서 오는 상실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종양내과 담당의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탈모의 당연 성부터 강조했다. 암과 맞서 생사의 계곡을 여러 번 넘나든 암환자들에게, 까짓 탈모쯤이야 뭐 대수인가 싶지만 그래도 여성들의 입장에서 대머리는 유방암 절제에 이어 두 번째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나보다 앞서 유방암 수술을 했던 후배에게 ‘굳이 머리를 밀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항암 후 머리카락이 뭉텅 뭉텅 빠져서 머리카락이 집안에 나뒹군다’고 설명하던 것이 생각난다. 머리를 빗을 때마다 한 움큼씩 머리가 빠지는 것도, 집 구석구석에서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것도 난감할 것 같았다.

▲ 영화 <50/50> 중.

그렇게 시작된 대머리 생활은 제법 편리함이 있었다. 우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가볍게 해방되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세수하는 것처럼 비누칠을 하고 몇 번 헹구면 그만이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걸림이 없고 한결 정신이 맑고 가볍다. 수행자들이 삭발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게다. 게다가 나는 민머리가 제법 어울리는 모양이다. 두상이 예쁘다는 말을 꽤나 듣는다. 어머니께서 공들어 만들어놓은 머리가 제대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예술가나 출가한 비구니로 보이는지, 환자에 대한 연민이나 걱정보다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머리를 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원 실상사에 갔더니 한 스님께서 “예술인이냐?”고 물어보셨다. 웃으면서 “항암 하는 중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매우 미안해하셨다. 생각해보니 예술도 항암처럼 고통스럽고, 항암과정을 거치면 예술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꽃피울 수 있으니 예술이나 항암이나 개그콘서트 버전으로 ‘도긴개긴’ 아니겠는가! 지리산 신록이 아름답던 그날, 스님께서 올해 첫 매화라며 내주신 매화차가 참 달았다. 이 말을 들으신 도법스님께서는 “그러게, 머리를 밀려면 우리 허락을 받아야지”라고 말씀하셔서 함께 웃을 수 있었다.

▲ 조용필 1집 앨범.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날을 생각하고
그 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음~음 음~음
(조용필 노래 / <단발머리> 가사)

중학교 때는 전교생이 단발머리였다. 귀 아래 2~3 센티미터를 넘기지 못하는 규정에 따라 선생님께서는 자주 30 센티미터 자를 가지고 머리 길이를 재곤 하셨다. 지금도 귀밑에서 찰랑거리던 단발머리의 감촉이 느껴진다. 뭔가에 집중할 때 면 귀 뒤로 단발머리를 넘기고 허리를 곧추세우던 10대의 내가 눈에 그려진다. 어릴 때는 주로 긴 머리에 양 갈래로 땋아 내렸다. 학교에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어찌나 ‘깡깡하게’ 머리를 땋아주셨는지 뒤통수가 벌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새끼 꼬듯이 손바닥을 비벼가며 손녀딸의 머리를 땋아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립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위적으로 머리를 빡빡 밀 기회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항암 이전까지, 내 머리카락은 나와 함께 50년 이상을 긴 머리였다가, 단발머리였다가 어느 때는 짧은 커트머리로 다시 파마머리를 반복하며 이미지의 중요한 부분을 좌우해 왔다. 한편으로 내 머리는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학대(?)를 받은 부위인지도 모른다. 한 번도 머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으니까.

머리를 깎고 나니 머리카락 속에 감춰진 역사가 드러난다. 오른쪽 이마 위쪽으로 생긴 상처는 고등학교 시절, 유리창에 찧어서 생긴 상처다. 당시 공공건물의 유리창은 미는 형태가 아니라 위에서 제치는 삼각형의 구조로, 학생들이 자주 모서리에 찧어서 상처를 입곤 했다. 여고시절에는 소위 두발 자율화에 따라 단발머리나 땋은 머리, 커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꽤나 혁신적이었는데 나는 3년 내내 머리를 땋고 다녔다. 그냥 긴 머리를 빗을 때 찰랑거리는 머리칼의 감촉, 땋아 내려갈 때 단정한 느낌이 좋았다. 대학시절에는 긴 머리를 선호했던 것 같다. 생머리에 청바지는 젊음의 표상과도 같은 것, 꼭 끼는 청바지에 생머리를 휘날리고 다니던 그 시절도 그립다.

▲ 둘다섯 앨범.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이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 머리 소녀야
눈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던
개울 건너 작은집의 긴 머리 소녀야
눈감고 두 손 모아 널 위해 기도하리라
(둘다섯 노래 / <긴 머리 소녀> 가사 일부)

 

나는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항암이 끝나고 머리카락이 자라나면, 어떤 형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할지 사뭇 설렌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다시 긴 생머리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아냐 머리숱이 적으면 생머리는 초라할 수 있으니까 볼륨 있는 파마가 낫지 않을까? 아냐 아냐. 더 젊어 보일 수 있도록 커트도 괜찮을 것 같지? 뭐, 이런 식이다.

아직도 나는 달덩이처럼 훤한 대머리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남편에게 한마디 건네 본다. “근데 여보, 나는 머리를 밀었어도 예쁜 거 같지 않아? 거 뭐야~ 미이라에 나오는 이모텝, 아놀드 보슬루란 배우있잖아.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생긴 거 같아!” 안방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웃음소리가 가을 공기처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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