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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3 07:57
  • 수정 2015.09.30 12:44

‘에필로그’, 그가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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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 이성규 독립PD의 마지막 모습 담은 영화 ‘에필로그’

▲ 영화 <에필로그>. ⓒ창작집단917

나는 그를 모른다. 단 한 번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 하지만 어쩐지 그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작품을 보았고, 그가 관객들에게 남긴 메시지를 영상으로 접했지만,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그 사람이.

그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그의 이름은 어디에나 남아있다. 독립PD가 국제무대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독립PD들이 폭행사건에 대한 방송국의 사과를 받아냈을 때도, 늘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성규형”, 혹은 “성규 선배”. 그의 이름이었다. 내가 만난 독립PD들은 모두 그의 이야기를 했고 그를 그리워했다. 그가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작품을 할 수 있었다는, 그래서 PD가 될 수 있었다는 무수한 증언들. 대체 어떤 존재였기에 모두가 그를 이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할까.

고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나흘을 담은 <에필로그>를 보고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에필로그>는 2013년 12월 13일 간암으로 숨을 거둔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이자,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 남겨진 자들의 해석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남겨진 자들이 기억하는 이성규 감독’을 다룬 영화인 셈이다.

한국독립PD협회를 만들어 거대한 방송 권력에 맞섰고, 척박한 다큐멘터리의 땅에 길을 닦았던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감독이길 원했다. 늘 다른 이를 찍어온 그가 스스로 피사체가 되기로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 마지막이 담긴 영상을 나는 보지 못하겠지만, 나의 죽음을 기록해 내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싶다.”

▲ 이성규 감독과 인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이 인도 갠지스 강에서 그를 위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영화 <에필로그>. ⓒ창작집단917

자신의 인생과 죽음, 마지막 순간조차도 아낌없이 던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남겨진 후배들에게 그는 등불 같은 큰 선배인 동시에 그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열린 DMZ 국제다큐영화제 GV에서 <에필로그>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이성규 감독은 다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자 겨울산 눈을 밀어 처음으로 길을 만든 사람”이라며 “‘우리가 우리를 사랑해주자’는 취지에서, 우리가 우리는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에필로그>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성규 감독의 후배이자 <에필로그> 프로듀서인 진모영 감독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해 줄 수 있겠느냐”라며 “우리가 우리를, 다큐인이 다큐인을 존중하고 예우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자.’ 그들에게 이성규 감독은 ‘다큐인’의 화신, 결국 자기 자신이기도 한 셈이다.

관객이 가득한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떠나기 전 생의 마지막에 그 꿈을 이뤘다. 후배들이 마련한 상영회 자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보며 그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 생애 잊지 못할 영화 스타트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저한테 닥친 문제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의 관객들이 외국의 예술영화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예술 영화도 사랑해서 이런 영화들이 계속 순바퀴를 돌 수 있는, 그 힘과 구조를 만들어주었으면···.”

▲ 지난 20일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에필로그>의 이창재 감독과 진모영 프로듀서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DMZ 국제다큐영화제

진모영 감독은 독립·예술영화관 대표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가장 많이 봐 준 관객이 이성규 감독이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다큐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을 그렇게 실천했던 사람.

“한국의 독립PD가 세계 최강”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는 많은 유산을 남겼다.

나는 이성규 감독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것들을 통해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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