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고성 속 명예훼손 규정 개정안 입안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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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반대 여론에도 정보심의 개정안 의결…“권력자 비판 차단하는 개악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가 결국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명예훼손 등과 관련된 정보 심의에 대한 규정 개정안을 입안예고했다. 해당 안건이 상정된 전체회의에서는 의사발언을 요구한 방청객과 방심위 사무처 직원 사이 실랑가 벌어지는 등 충돌이 일어나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방심위는 24일 오후 3시 전체회의를 열고 명예훼손 등과 관련된 정보 심의에 대한 신청 대상자를 기존의 당사자에서 방심위 직권 내지 제3자도 심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일부개정규칙안 입안예고에 관한 사항을 처리했다.

▲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언론·시민단체가 24일 오후 2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금번 심의규정 개정은 지지세력, 비호단체가 있는 대통령, 정치인 등의 공인, 즉 사회적 강자들의 명예 구제 가능성만 확대하는 것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며 해당 개정안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언론노조

해당 개정안은 지난 2014년 1월 신설된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0조(심의의 개시 등)제2항을 삭제하고, 시정 요구 시 피해 당사자의 요구에 반하여 할 수 없도록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5조(시정요구)제1항에 ‘다만 다른 법률에서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정보의 경우에는 피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시정요구를 할 수 없다’는 단서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방심위는 오는 10월 2일부터 22일까지 20일 동안 입안예고를 거친 후 10월 중 개정안을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고 11월 전체회의 심의·의결 후 개정안을 확정하고 공포할 예정이다.

당초 개정안에 대한 입안예고안은 지난 7월 9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장낙인 상임위원이 개정 반대 의사를 밝히며 퇴장하는 등 여야 간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난 바 있다. 이후 전문가들과 언론·시민사회에서 반대 의사를 밝히며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등 반대 여론이 거세 수차례 회의가 연기됐다.

이날 회의에서도 야당 추천 위원들은 심의규정 개정으로 인한 우려를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야당 추천 위원 3인을 대표해 장낙인 상임위원은 입안예고 절차에 합의하게 됐지만 △통신심의는 사법행위와 다른 행정행위 성격을 띤다는 점 △제3자 신고 허용 시 피해자 의사에 반해 피해 정보 등이 공개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반의사불벌죄 형식으로 개정한다 하더라도 시정요구를 위해서는 피해자 의사 확인 절차가 필요한 만큼 친고죄 형식과 다를 바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해당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임을 명확히 밝혔다.

이어 장 상임위원은 박효종 위원장에게 심의규정 개정이 오히려 당사자의 정보를 당사자 의사와 상관없이 공론화 시킬 수 있음은 물론 정부 혹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는 검열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법전문가나 언론·시민단체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 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출신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대학)가 방청 중 발언권을 요청하자 방심위 사무처 직원이 박 교수를 저지하고 있다. ⓒNCCK 언론위원회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박 위원장은 개정안의 취지는 상위법과의 충돌하는 현행 규정을 정비하고 사회적 약자가 직접 심의신청을 못하거나 어떠한 사정에 의해 심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해 방심위가 직권으로 나서 명예훼손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확대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지난 8월 17일 외부 의견 청취를 위해 마련한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밝혔듯이 공인에 대한 심의는 사법부 판단에 따라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개정안에 대해) 비판하는 분들은 위원회의 결정으로 특정 권력층,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다, 심의를 남발해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것이라 우려한다”며 “공인은 일정 수준 비판을 감수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책임이 있다. 개정으로 인한 부당한 혜택을 봐서는 안 된다. 공인에 대해서는 사법부에서 유죄 판단이 내려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시민단체가 개선책을 요구하면 그 의견도 폭넓게 받아들이겠다. 시민단체들이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하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입안예고가 결정됐으나 그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2기 방심위원 출신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대학)가 방청 중 발언권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방심위 사무처 직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휴정하기에 이르렀다.

박 교수가 “위원장께서 심의규정 개정안 관련해 약속한 게 있다. 이를 적용한 후에 입안예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과정에서 방심위 사무처에서 “나가”라고 반말을 하고 박 교수를 강제로 끌어내려 하는 과정에서 반말과 고성이 오가며 충돌이 발생했다.

▲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언론·시민단체가 24일 오후 2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후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1000명의 선언서를 박효종 방심위 위원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방심위 직원들이 “박 위원장이 회의 준비로 바빠 만날 수 없다”라며 거부 의사를 전달하면서 가로막고 있다. ⓒ언론노조

전체회의에 앞서 언론·시민단체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언론·시민단체는 방심위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금번 심의규정 개정은 지지세력, 비호단체가 있는 대통령, 정치인 등의 공인, 즉 사회적 강자들의 명예 구제 가능성만 확대하는 것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며 해당 개정안을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개정안이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개악안’이라는 주장이다.

언론·시민단체는 박 위원장이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게시물은 사법부가 유죄 판단을 내린 경우에 한해 심의를 개시하겠다고 한 약속 역시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위험성이 있다”라며 “개인의 명예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며, 이 개정안은 결국 국민의 명예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유력자, 권력자의 명예를 위해, 그들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도 “방심위의 기능에 최소한의 신뢰와 기대를 가졌던 건 그래도 우리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듣겠다고 하는, 사회적 합의와 명령을 따르겠다는 약속 때문 이었다”라며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봉쇄하려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시민도 동의한바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전하는 바”라고 밝혔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심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누가 공인이고 누가 공인이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공인의 주변사람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면 공인 당사자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인에 대해서도 판결문이 있으면 제3자 심의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본인은 전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뿐”이라며 “결국 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뿐인 그런 제도”라고 규탄했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이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1000명의 선언서를 박 위원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방심위 측에서 전체회의가 열리는 19층 회의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차단하는가 하면, 방심위 직원들이 “박 위원장이 회의 준비로 바빠 만날 수 없다”라며 거부 의사를 전달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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