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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이브리드 라디오’ 인가?

[미디어 리포트] 스마트폰 FM수신칩 활성화, 필요성과 배경 최영주 기자l승인2015.10.12 07: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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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국가재난방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재난방송 의무수신 매체로 FM라디오와 DMB를 추가로 지정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거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발생하면 이동통신 서비스 등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스마트폰은 속수무책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스마트폰 내부에 비활성화 된 채로 잠들어 있는 FM수신칩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스턴 폭탄 테러 사태의 교훈

▲ 지난 2013년 4월 15일 오후 2시50분경(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점 근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 폭발이 일어나 최소 2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현장에 있던 시민이 트위터를 통해 알린 폭발 당시 현장의 모습.(트위터 캡쳐) ⓒ뉴스1

지난 2013년 4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개최된 ‘2013 보스턴 마라톤’ 당시 결승선 직전에서 폭탄이 터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사고 당시 네트워크 서비스는 마비됐고 휴대전화는 불통이 됐다. 언론사에서 보도했듯이 이동통신사들이 원격 기폭으로 인한 추가 폭탄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네트워크 차단 조치를 취한 것이든, 통신사들의 말마따나 현장에 있던 다수의 시민이 동시에 네트워크에 접속하면서 발생한 트래픽 과부하 문제이든,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사고 현장과 외부와의 통신은 단절됐고 정보를 전달할 수단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기에 미국 방송사와 유관 단체들이 공동으로 운영 중인 ‘프리 라디오 온 마이 폰(Free Radio on my Phone)’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들며 FM수신칩의 활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1. (스트리밍과 달리) 데이터 부담이 없다.
2. 배터리를 오래 쓸 수 있다.(스트리밍 대비 3~7배)
3. 유용한 재난 대처 매체다.
4. 해당 부품에 대한 가격을 이미 지불했다.

그러나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에 따르면 애플, 삼성, LG 등에서 제조해 유통하는 미국 스마트폰 대다수에 FM 라디오가 내장됐지만 FM수신칩이 비활성화 된 채로 출고되기 때문에 이 중 3분의 2는 라디오가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스트리밍을 이용한 라디오 청취에 익숙해진 상황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고, 삼성전자, KT 등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도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 ‘밀크’, 구글이 뽑은 ‘2014년 최고의 앱 베스트 30’에 선정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무료 스트리밍 라디오앱 ‘비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스트리밍 기반의 라디오 서비스는 데이터 소모량이 크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회장 장동현, 이하 KAIT)가 지난 8월 발표한 ‘주요 앱 서비스별 데이터 소모량 측정결과’에 따르면 무선인터넷 접속을 통한 스마트폰 데이터 소모량은 동영상 스트리밍이 가장 많았고 웹툰, 라디오 스트리밍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지상파 라디오 스트리밍(KBS 마이K·MBC미니·SBS고릴라) 이용 시 평균 데이터 소모량은 17MB(20분 사용기준)로 조사됐다.

또한 앞서 보스턴 마라톤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재난이 발생하면 네트워크 서비스 자체가 마비될 가능성이 높다. 최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10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영국의 사례처럼 스마트폰에 내장된 FM수신기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데이터 비용 문제는 물론 재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영국은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를 통해 스마트폰에 내장된 FM수신기를 이용해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게끔 해 스트리밍을 통한 데이터 사용량 증가 문제, 배터리 소모 문제, 수신대역의 한계 등을 극복했다. 또한 해당 프로젝트는 단순히 FM수신칩을 활성화시켜 라디오를 듣는, 즉 단순히 기존 아날로그 라디오를 스마트폰으로 옮겨오는 게 아니라 방송 정보 등을 무선인터넷을 통해 수신할 수 있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라디오’ 방식이다.

영국·미국, 하이브리드 라디오 추진

▲ 미국의 스프린트(Sprint) 폰에 깔려있는 하이브리드 라디오앱(nextradio app) 실행 화면. ⓒnextradioapp.com

하이브리드 라디오는 적은 비용으로 동시전송이 가능한 방송(Broadcast)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며 빅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인터넷(Internet)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다. 즉 실시간 오디오는 FM 등 지상파를 통해 수신하고 나머지 방송 정보 전달, 피드백, 외부 음원서비스와의 연동 등은 기존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영국 뿐 아니라 미국도 점차 FM수신칩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방송사나 방송 관련 협회들은 FM 수신을 통한 라디오 청취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했고, 이에 미국 내 3~4위를 지키고 있는 이동통신사인 스프린트는 FM수신칩 활성화를 약속했다. 올 여름에는 AT&T 등 다수의 이동통신사도 FM수신칩 활성화에 동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9월 PD연합회 주최 넥스트 라디오 포럼에서 임재윤 MBC 라디오 PD(MBC 미래방송연구소 소속)는 ‘스마트라디오 5000만대 보급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긴급 제안을 하며 국내에서도 FM수신칩 활성화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PD에 따르면 청취자, 콘텐츠 사업자, 이동통신사 및 제조사 모두 만족할 만한 장점을 지닌 것이 하이브리드 라디오다. 하이브리드 라디오의 경우 청취자의 청취 경험이 진화될 뿐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의 경우 청취율・청취행태에 대한 전수 조사가 가능하고 이 같은 빅데이터를 활용함으로서 청취율 조사의 고도화도 꾀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미디어’로의 진화를 통해 라디오도 올드미디어라는 기존 이미지를 탈피할 수도 있다.

이동통신사나 제조사 입장에서도 FM수신칩을 활성화할 경우 재난 매체 기본 탑재에 따른 공익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정부 역시 가성비가 높은 재난 대용 매체를 보급할 수 있고 스마트라디오의 IT융합에 따른 산업 생태계 활성화도 가능하다. 라디오 디지털 전환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별도 단말기 공급 역시 기존 스마트폰의 FM수신칩 활성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같이 스마트폰 내 FM수신칩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이와 함께 정부의 제도적 지원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선 라디오 PD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같은 부분이다. 한 라디오 PD는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은 메가를 기가로, 기가를 테라로 바꾸며 데이터 사업에 열심인데 과연 이들이 FM수신칩을 위해 나서줄까”라며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의 부재”라고 지적했다.

▲ 라디오를 스트리밍을 통해 청취할 때 소모되는 데이터 사용량.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이동통신사나 제조사 입장에서는 FM수신칩 활성화에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다. ‘FM’에 대한 이미지, 즉 ‘올드한 매체’라는 이미지 때문에 FM수신칩 활성화를 업계에서 꺼려할 것이라는 임 PD의 예측이다. 실제로 임 PD가 만난 업계 관계자들도 FM라디오 기능이 있는 기기는 ‘효도폰’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FM수신칩 활성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통위 역시 제조사의 협력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고낙준 방통위 지상파정책과장은 지난 7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라디오의 미래, 라디오 특별법 제정과 수시확대의 필요성’ 세미나에서 “제조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디자인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안테나가 들어가면 점점 얇아지는 휴대전화에 또 하나의 회로가 구성되기 때문에 부담이 간다는 것”이라며 “솔직히 이 부분은 강제할 수 없다. 강제라면 법에 집어넣는 방법밖에 없지만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게 가장 낫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상품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기에 그것과 같이 공익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제조사가 디자인 때문에 FM수신칩 활성화를 꺼려한다고 했지만 실제 시판되고 또 사용되고 있는 일본 소니사의 스마트폰의 경우 외부 안테나가 없으며 두께가 7.3㎜에 불과하다. 실제로 세미나에서는 한 교수가 자신이 소유한 소니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디자인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즉, 스마트폰이 두꺼워진다는 부분은 FM수신칩 활성화 반대 이유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기본적으로 FM 수신칩이 내장되어 있다. 사진 왼쪽은 FM 수신칩이 활성화 된 스마트폰에서 FM라디오를 수신하는 장면이고, 사진 오른쪽은 FM수신칩이 활성화된 스마트폰의 모습. 외부안테나가 보이거나 스마트폰이 두께가 두꺼워지지 않았다.

제조사의 결단이 관건

국내 기업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영국, 미국 등지에서는 FM수신칩 활성화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국내에서는 이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는 “국민의 보편적인 공익을 추구해야 함에도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나”라고 지적하며 “이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스마트폰 내 FM수신칩 활성화 여부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것이 있다. 단순히 개별 라디오 PD, 라디오 방송사가 나서서는 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영국 BBC의 편성 책임자인 마크 프렌드(Mark Friend)는 “BBC 라디오가 아무리 크고 경쟁력이 있어도 애플이나 삼성에 비하면 정말 작은 회사에 불과하다, BBC 혼자서 그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전 국민의 90%가 함께 하는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나서면 그 누구와도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 프렌드 편성 책임자의 말은 FM수신칩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조사 및 이동통신사 설득에 우선할 것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업을 설득하려면 미국과 영국 사례에서 보듯이 ‘전체’가 나서야 한다. 미국은 라디오 방송사와 유관 단체가 힘을 모았고, 영국은 여론, 즉 ‘청취자’의 힘을 이용했다. 미국은 수많은 라디오 방송사가 존재한다. 영국의 경우 라디오가 90%가 넘는 청취율을 기록하면서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용자들이 라디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 같은 공조가 가능했고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 스마트폰 내 FM수신칩 활성화를 통한 하이브리드라디오앱이 현실화 될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및 장점. ⓒ임재윤 MBC PD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미국과 영국의 사례는 낙관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TV는 물론이고 팟캐스트와 인터넷, 소셜TV, SNS에 밀려 라디오는 이미 ‘위기’다. 현재 라디오 생태계를 두고 ‘무주공산’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정책자, 학자 심지어 청취자까지 떠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FM수신칩 활성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제조사지만 근본적으로는 라디오를 이용하는 청취자가 FM라디오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분들이 스스로 라디오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정의가 안 되어 있어요. 예로 불과 7~8년 전만 해도 MP3 플레이어에 FM수신칩이 다 들어있었어요. 그때 라디오가 활성화 됐나요? 아닙니다. FM수신칩이 활성화되어도 결국 그 안에 어떤 콘텐츠가 실릴 것인지, 라디오를 떠나간 소비자를 어떻게 다시 데려올 지는 라디오 PD들의 노력이 있어야 해요. 콘텐츠 경쟁력을 확실하게 갖춰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뒷받침 안 되면 소비자를 잡을 수 없어요. 먼저 사람을 찾아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정병진 코리아닷컴 커뮤니케이션즈 본부장)

FM수신칩 활성화 여부는 결국 청취자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는 데 답이 있다. 비록 TV에 밀리고 SNS에 밀리고 있지만, TV가 등장하면서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란 말도 나왔지만 여전히 라디오는 살아 있다. 운동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이동을 하면서도 불편함 없이 들을 수 있는, 보이지 않지만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매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매체인 라디오는 어찌 보면 스마트폰에 가장 적합한 매체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라디오가 매력적인 매체일 뿐더러 스마트폰과 라디오가 결합하면 얼마나 더 매력적이게 변신할지 알리면서 청취자를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한 때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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